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89)

이순신은 가등청정과 소서행장이 반목할 리 없다는 의견을 냈다. 황신은 순신의 설명에 절절이 옳다고 무릎을 치며 탄복했다. 하지만 조선의 서인과 북인들은 이순신을 다르게 봤다. 황신이 보고를 하기도 전에 들고 일어나 순신 체포 명령을 내렸다. 마음이 약하고 주장이 없는 선조는 황신의 보고를 듣기도 전에 나라의 만리장성을 스스로 헐어 버렸다.

▲ 이순신은 권율을 보낸 뒤에 시사를 탄식하며 조정을 근심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황신은 이순신에게 물었다. “가등청정을 잡아 주면 수십만 원정군을 데리고 일본으로 돌아가겠다”는 소서행장의 말을 믿을 수 있는지를 말이다. 순신은 그 부당不當 불가不可 불연不然한 뜻으로 다섯 가지 조목을 들어 진술하였다. 첫째, 가등청정과 소서행장이 비록 반목한다고 하나 적국인 우리에게, 우리나라에 군사상 비밀을 누설할 리 있겠는가?

만일에 군기의 비밀을 누설한다면 역적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가등청정과 소서행장이 철없는 어린아이도 아니고, 풍신수길의 휘하에서 신임을 받는 백전의 명장이다. 그럴 리가 없다. 둘째, 설사 소서행장이 말한 날에 가등청정의 병선이 온다 하더라도 음흉한 계책을 사용하였을 것이 뻔하다.

만일 우리가 병선을 많이 끌고 간다면 적이 모를 리가 없고, 그렇다고 적게 끌고 간다면 도리어 적에게 반격을 당할 것이다. 내가 알고도 함정을 찾아가는 셈이니 어찌 적의 지휘를 받아 적을 친단 말인가. 비유컨대 나방이 불을 찾아 드는 꼴이다. 셋째, 수길이 수전에 연패한 분을 풀려고 병선을 많이 지었다고 한다.

적은 전국의 힘을 기울여 조선으로 건너왔을 것이다. 우리는 지리의 선점, 조수의 순역, 해양도서의 깊고 얕음을 잘 이용하여 응변치 아니하면 안된다. 넷째, 적이 아무리 많은 병선을 끌고 와서 부산 부근 일대에 자리를 잡더라도 이 한산도 요새를 깨뜨리지 못하고 전라·충청의 연해를 점령하지 못하면 조선의 제해권은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니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는 요해지처를 지키고 있다가 기회를 보아 적을 치면 된다. 다섯째, 설사 망망대해에서 서로 싸워 적을 이긴다 하더라도 적은 저희 본국 방향으로 달아날 것이니 우리는 추격한다 하여도 일본까지 따를 수 없은즉 아무 소득이 없다. 만일에 우리 편이 불리하다 하면 앞에는 적의 함대가 가로막아 싸울 것이요, 뒤에선 부산에 있는 적들이 협공할 것이니 진퇴유곡이 되고 말 것이다.

황신은 순신의 설명에 절절이 옳다고 무릎을 치며 탄복하였다. 하지만 서인과 북인들은 이순신을 다르게 봤다. 황신이 보고를 하기도 전에 들고 일어나 순신 체포 명령을 내렸다. 마음이 약하고 주장이 없는 선조는 황신의 보고를 듣기도 전에 나라의 만리장성을 스스로 헐어 버렸다.

1597년 1월 21일 도원수 권율이 한산도 진중에 들어왔다. 순신은 도원수를 맞는 환영을 성대하게 했다. 권율은 순신의 군례를 보고 난 다음 이렇게 말했다. “적장 가등청정이 근일에 또 나온다 하오. 순신공은 좋은 기회를 잃지 마오. 부디 요시라가 알려 주는 가등청정을 사로잡게 하오.” 권율은 순신이 그 내막을 말할 시간도 주지 않고 군무가 바쁘다는 핑계로 한산도를 떠났다.

도원수 권율마저 상황 판단 못해

▲ 황신은 일본의 계략을 잘 아는 순신의 설명을 듣고 무릎을 치며 탄복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순신은 권율을 보낸 뒤에 시사를 탄식하며 조정을 근심하였다. 소서행장과 요시라의 술책에 온 세상이 속임을 당하니 분이 나서 밥도 먹을 수 없었다. 시 두 수를 지어 밤을 지새우고 수루에서 칼을 만지며 홀로 앉았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또다시 시 한수를 읊었다.

문정공文正公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말했다. 余每讀岳武穆詩 未嘗不擊節而三復 其忠毅雄勇固其所也 至於文詞 亦何其奇且新也 李忠武閑山之作 可謂千載而同符者也 我孝宗大王嘗欲北伐中原 讀忠武李公詩 極有漢帝鉅鹿意
내가 매양 무목 악비의 시를 읽을 때 무릎을 치며 세 번 되풀이하여 읽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 굳센 충성과 장한 용맹은 본디 당연한 것이지만 그 글에 이르러서까지 또한 어찌 그리 기이하고 참신한가. 충무공이 한산도에서 지은 시는 1000년 이후에도 서로 부합하는 것이라 하도다. 우리 효종대왕이 항상 중원을 북벌하고자 하셨는데 충무공의 시를 읽으시니 한나라 황제가 거록을 생각하던 것과 같은 뜻이 있으셨다.

문충공文忠公 좌의정 외재畏齋 이단하李端夏가 말했다. 嗚呼 公之勳烈蓋國家 貞忠貫日月 我國人之思詠者 垂宇宙而將不泯矣 惟此咳唾之遺 卽其精神所寓 其曰 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 可見其壯志精忠矣
아아, 충무공의 공훈과 의열은 국가를 덮고 절개와 충성은 일월을 꿰뚫었도다. (그 사적은 역사서에 실리고 금석문으로 새겨져) 우리나라의 사모하고 노래하는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우주에 드리워져 장차 없어지지 않을 것이로다. 생각하건대 공이 읊어 남긴 이 구절에 그 정신이 머물러 있다. 말하였으되 ‘바다에 맹세하니 어룡이 꿈틀대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아네’ 한 데서 장한 뜻과 지극한 충성을 볼 수 있다.

제장들도 순신의 답답한 마음을 위하여 비분강개함을 금치 못하고 순신의 시에 화답하였으나 여기에는 기록하지 아니한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발행인 겸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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