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의 비만 Exit | 살과 사랑 이야기

▲ 채식은 능사가 아니다. 절제된 식습관이 훨씬 중요하다. [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인간처럼 사회생활을 하는 영장류 가운데 오랑우탄은 30마리, 침팬지는 60마리 정도가 군집을 이루어 생활한다고 한다. 이런 맥락으로 인간을 살피면 알고 지내는 사람의 숫자가 146명이 적합하다는 통계가 있다. 146명은커녕 필자는 식사를 하면서 담소할 친구가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땅거미가 깔린 후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아 본 기억이 없다. 어쩌다 마련된 자리에서 누군가 필자의 인생을 비판적으로 논하면 역시 돈 몇 푼 던지고 일어선다. 어둑어둑한 길을 걸어 집으로 향하면서 혼자 이런 생각을 한다. 백설이 만건곤할제 독야청청하리라.

하지만 독야청청을 꿈꾸는 필자는 홀로 뚱뚱한 할아버지 동상이 서 있는 패스트푸드점으로 들어간다. 거기에 가면 닭을 도륙한 후 튀겨 낸 다리들을 앳된 처녀, 총각들이 팔고 있다. A4 용지만한 케이지에서 부리가 잘린 채 모이를 쪼던 닭들의 살은 연하디연하다.

쓰라린 마음을 갓 튀겨 내 김이 오르는 치킨 조각으로 달래면 마음이 다 기름지다. 평생을 서서 살다가 튀겨지기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 외출을 한 닭들은 흔들리는 철창 속에서 다리가 부러져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그 다리에서 부드럽게 흐르는 기름이 그 순간 사람들의 윤활유가 되는 것이다.

주위와 동화되지 못하고 인간 군집의 주위를 위성처럼 맴돌듯 살아가는 필자의 삶은 다른 사람들과 확연히 다르다. 필자는 도시락을 직접 싸서 늘 지참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항상 현미밥이라도 챙겨서 다닌다. 몸 관리는 되겠지만 이 방식은 다른 이와의 밀착을 어렵게 하므로 쉽지 않다.

한때 인기를 끈 나구모 요시노리의 1일 1식 역시 도시 속의 작은 섬에 갇혀 사는 듯 별나게 살아가는 모습을 지키기 힘들다는 이유로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필자는 채식주의자도 아니고 단식을 옹호하지도 않는다. 채식주의자가 증가한다지만 그것은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그들의 주장에 동의하지도 않는다. 윤리적이지 않은 동물의 사육 방식과 도축을 비난하며 일체의 육식을 거부한다고 치자. 그럼 화학비료나 농약 등으로 토양을 오염시키고 생태의 다양성을 훼손한 농업은 어찌 설명할텐가.  환경과 생존이라는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제한된 공간에서 많은 인구가 살아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의 사고에 기인해서 채식을 옹호하고 동시에 육식을 병행하는 대다수 사람들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것도 적절치 않다. 육식을 지나치게 선호해 건강을 잃은 자가 적절한 채식 등 절제된 식습관을 통해 건강을 찾을 순 있지만 채식만으로 구성된 식단이 건강을 담보하는 것으로 착각해선 안 된다. 주위와 어울리며 건강하게 살아갈 방도를 찾아야 한다. 
박창희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hankookjo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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