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만료로 인한 폐기 앞둔 민생법안들

어음. ‘손톱 밑 가시’처럼 중소기업을 괴롭히는 대표 구악舊惡이다. 어음의 폐해가 공론화된 게 1980년대이니까, 중소기업을 참 오래도 괴롭혔다. 여야 정치인들이 선거철만 되면 ‘어음법 개정’을 운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도 이 어음은 연명에 성공해 중소기업을 달달 볶고 있다.

어찌된 영문일까. 답은 간단하다. 국회의원, 이른바 ‘금배지’의 직무유기 때문이다. 1998년 5월 8일 국회의원 41명이 어음법 개정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어음법 개정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하물며 소관 상임위조차 열리지 않았으니, 말 다하지 않았는가. 이 개정안은 2000년 5월 29일 은근슬쩍 폐기됐다. ‘임기만료로 인한 폐기’가 그 이유였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8년 9월 국회의원 11명이 어음법 개정안을 제안했다. 이런 내용이었다. “… 어음만기를 60일 이내로 정한다. 어음이 부도났을 때 발행인과 인수인은 민사책임과 더불어 형사책임까지 부담하도록 한다.…” 하지만 이 개정안도 2012년 5월 29일 폐기됐다. 사유는 이전과 똑같았다. “임기만료에 따른 폐기.”

민생이 사선死線을 넘나든다. 청년을 위한 ‘취업문’은 갈수록 좁아지고, 중장년층은 구조조정을 걱정하느라 밤을 지새운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직장을 구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세월이다. ‘부전자전 실업’ 탓에 속이 썩은 주부는 치솟은 ‘장바구니 물가’ 때문에 또다시 가슴을 친다. 힘없는 자들은 갑질에 시달리고, 자영업자는 꽁꽁 얼어붙은 내수에 눈물을 훔친다.

그런데도 국회는 한가하다. 얼음장 같은 서민경제에 온기溫氣를 불어넣은 민생법안이 30개나 되는데도 정쟁政爭에만 매달린다. 이들 30개 민생법안이 발의되고 흐른 시간은 평균 444일. 정치싸움에 골몰하느라 민생법안을 1년 넘게 뒷방에 처박아 놨다는 얘기다. 19대 정기국회 안에 처리되지 않으면 이 법안은 자동폐기된다.

지금까지 살아남아 중소기업을 괴롭히는 어음처럼 ‘임기만료로 인한 폐기’가 민생법안의 사망 원인이 될 지 모른다는 거다. 19대 국회의 금배지들이여! 당신들은 지금 무엇을 좇는가. 권력인가, 민생인가. 아쉽지만 민생법안의 사망선고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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