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서 낮잠 자는 민생법안

▲ 19대 국회 회기가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민생법안의 처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헬조선’ ‘금수저’ ‘N포세대’…. 요즘 세상을 뜨겁게 달구는 신조어들이다. 의미는 각자 다르지만 이 신조어가 탄생한 원인은 똑같다. 바로 민생이다. 하지만 민생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서민을 위해’라는 꼬리표를 달고 국회에 제출된 수많은 민생법안은 낮잠만 자고 있다. 우리의 금배지들은 또 ‘직무유기’ 중이다.

“솔직히 19대에서 민생법안이 통과될 거라는 기대는 접었습니다. 여당 의원의 반대는 그렇다 쳐도, 야당 의원이 지역구 눈치를 보면서 싸움을 걸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논란이 되는 법이라면 의원들끼리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다듬어야 하는데, 아예 논의조차 없어요. 20대 국회에는 좀 나아질까요.” 익명을 요구한 시민단체 관계자의 말이다. 그가 한숨을 쉬며 성토한 이유는 19대 정기국회 마지막 날(12월 9일)이 한달밖에 남지 않아서다. 정기국회가 끝나고 임시국회가 열릴 수도 있지만 총선을 앞두고 있어 법안 논의가 쉽지 않다. 이번 정기국회가 법안 처리를 위한 실질적 마지노선이라는 얘기다.

지난 16일 여야 원내 지도부는 ‘각 당의 중요 법안을 조속히 합의해 26일 본회의에서 처리하도록 한다’는 조항에 합의했다. 그러나 쟁점 사항을 조율하지 않고 처리시한만 확정했다. 이견이 큰 현안들의 국회통과가 불투명한 이유다. 공을 넘겨받은 상임위원회에서 논란만 반복하다 또다시 파행될 공산이 크다. 더구나 19대 국회에서는 의원 발의 1만5172건, 정부 제출 1008건 등 총 1만7994건의 법안이 발의됐음에도 가결된 법안은 2630건에 불과하다. 제헌 국회 이후 가장 낮은 14.6%의 가결률이다.

그사이 민생법안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19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 이 많은 법안이 자동 폐기되기 때문이다.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서민을 위한 법은 무엇이 있을까. 아직 상임위에서 잠자고 있는 1만1186개의 법안 가운데 더스쿠프(The SCOOP)가 30개의 민생법안을 추려봤다[※참고 : 파트4 민생법안 그래픽].

대표적인 민생법안은 ‘갑甲의 횡포’를 막기 위한 ‘남양유업 방지법’이다. 2013년 5월 전국은 대기업의 갑질 논란으로 뜨거웠다. 남양유업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폭언을 하며 ‘물량 떠넘기기’를 한 녹취파일이 인터넷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국회는 즉각 남양유업 방지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가맹사업자 본사가 대리점에 강제로 밀어내기를 할 경우 손해의 3배까지 배상토록 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하지만 2년이 넘도록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남양유업 방지법이 국회에…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법안도 낮잠을 자고 있다. 특히 신세계ㆍ롯데 등 대기업들이 확대하고 있는 대형 아웃렛과 복합쇼핑몰은 지역 중소상인들의 생존권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도 특별한 규제가 없는 상황이다. 국회는 기존 상권이 형성된 지역에는 1만㎡(약 3000평)를 초과하는 대규모 점포를 건축할 수 없도록 하는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통과 여부는 미지수다. 이동주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정책기획실장은 “실제로 영등포 타임스퀘어와 여주ㆍ파주 프리미엄 아웃렛은 대규모 쇼핑몰이 들어서면서 주변 상권의 매출이 46.5% 감소했다”며 “최소한 영세상인들이 대기업과 상생할 수 있는 틀은 필요하지 않나”라고 꼬집었다.

민생법안의 시작점으로 여겨지는 가계부담 완화 법안의 통과 여부도 감감무소식이다. 서민의 주거대책 관련 법안도 지지부진하다. 전셋값 고공행진으로 ‘전세 난민’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관련 법 논의는 파행을 반복하고 있다. 전ㆍ월세 상한제를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2013년 9월에 발의됐지만 지난해 4월 상임위에서 한차례 논의됐을 뿐이다.

통신비도 마찬가지다. 분리공시제 도입, 지원금 상한제 폐지 등을 골자로 한 ‘단말기유통개선법(단통법)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기 어려울 듯하다.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서다. 시민단체와 일부 정치권은 단통법이 지원금을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취지의 법인만큼 분리공시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와 일부 여당 의원은 단통법이 시행 1년을 지나면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법을 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맞받아친다. 휴대전화 제조사 측도 글로벌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고 난색을 표했다. 가계 통신요금에 숨어 있는 1만1000원의 기본료를 폐지하자는 법안 역시 부처간 입장이 엇갈리면서 본회의 상정이 어렵게 됐다.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청년 실업’ ‘비정규직 처우’ 문제도 19대 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정부가 2016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며 첫째 목표로 ‘일자리를 늘려 청년에게 희망을 주는 것’을 꼽았음에도 청년고용촉진특별법 개정안은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의 청년고용의무할당을 현 3%에서 5%로 올리고 민간 대기업에도 청년고용의무할당을 적용하겠다는 것이 이 개정안의 골자다.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들

▲ 2013년 남양유업 사태로 불거진 '갑의 횡포'를 방지하기 위한 '남양유업 방지법'은 2년 넘게 국회에 묶여 있다.[사진=뉴시스]
비정규직의 차별적인 처우를 금지하는 기간제 노동자 보호법도 반대 논리에 막혀 있다. 하루 2~3시간만 일하는 초단시간근로자 역시 법의 사각지대에 그대로 놓여 있다. 지난해 10월 고용보험 가입, 유급휴일 및 연차유급휴가 부여, 퇴직금 지급 등을 보장하는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환노위 상임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물론 이 법안은 갑론을박의 여지가 있다. 일부의 우려처럼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법안을 조율해 입법화하는 건 국회의 책무다. 국민이 금배지들에게 세비를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권오인 경실련(경제정책팀) 팀장은 “막판 스퍼트를 내 민생법안을 통과해야 할 시점에 의원들이 총선 생각만 하고 있다”며 “스퍼트를 낸다고 해도 원칙 없이 통과된 법들이 민생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19대 금배지들은 지금 직무유기 중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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