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300 ❸

▲ 스파르타가 300명의 전사들밖에 동원하지 못한 건 귀족만이 전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 ‘300’의 마지막 장면. 테르모필레(Thermopylae) 협곡에서 페르시아 대군에 맞서 싸우던 300명의 스파르타 정예병은 모두 전사한다. 결사항전에서 최후를 예감한 레오니다스(Leonidas) 왕은 300명 가운데 한명인 딜리오스(Dilios)에게 스파르타로 돌아가 시민들에게 전사들의 장렬한 죽음을 알리고, 스파르타 의회에 지원군 파병을 요청하라는 밀명을 내린다.

그로부터 1년 후인 BC 479년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한쪽 눈을 잃은 딜리오스가 그리스 연합군의 최선봉에 서서 페르시아 대군의 진영을 향해 총공격하는 플라타이아(Plataeae) 전투의 개시를 그리며 끝난다. 그리고 플라타이아 전투에 이은 미칼레(Mykale) 전투에서 그리스 연합군은 마침내 크세르크세스(Xerxes) 황제의 페르시아 점령군을 축출해 낸다.

영화 300은 페르시아 전쟁 중 테르모필레 전투를 통해 스파르타의 전설적인 영웅 레오니다스 왕과 그가 이끄는 300명의 최정예 초콜릿 복근 전사를 영웅으로 조명한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스파르타가 주도한 테르모필레 전투는 처절한 패전이었고,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결정적 전투는 살라미스(Salamis) 해전, 플라타이아 전투, 미칼레 전투다. 이 전투들은 아테네가 주도했다. 페르시아 전쟁 이후 그리스 세계의 패권을 아테네가 장악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상무尙武정신과 ‘군국주의軍國主義 체제’의 상징인 스파르타가 미증유의 대전인 페르시아 전쟁에서 보여준 기개는 충분히 드높았다. 하지만 성적표가 그토록 초라한 까닭은 뭘까. 영화 속에서 그 미스터리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테르모필레의 협곡에서 비장한 각오로 크세르크세스의 대군을 맞을 준비를 하던 스파르타 전사들 앞에 그리스의 폴리스 동맹인 아카디아(Arcadia) 병사 1000명이 나타난다. 전투에 합류하겠다는 거였다. 그러나 아카디아 병사들은 초콜릿 복근의 스파르타 병사들과 달리 적당히 뱃살이 있고 보기에도 어수선하다.

시큰둥한 표정의 레오니다스 왕이 아카디아 병사들에게 뜬금없이 직업을 묻는다. 대장장이도 있고 옹기장이도 있다. 대답을 들은 레오니다스 왕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돌아서서 자신의 전사들을 보며 이렇게 묻는다. “너희들의 직업은 뭐냐?” 300명은 일제히 창을 치켜들고 고함을 발사한다. “전사!” 레오니다스 왕의 얼굴은 긍지로 빛난다.

당시 스파르타의 사회구조는 약 15%의 자유시민, 30%의 반半자유민(perioikoi), 그리고 55%의 노예(helot)로 구성돼 있었다. 스파르타에서 군인이 된다는 것은 자유시민만이 누리는 특권이었다. ‘자유시민’이란 곧 ‘귀족’이며 ‘특권계층’이다. 그들만이 무기를 소유할 수 있고 군사조직에 편성될 수 있으며 전투에 참가하는 특권을 누린다. 스파르타가 국가존망의 위기에서 고작 300명의 군사밖에 출전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시민병사(hoplite)’라고 불리는 소수의 최정예 군사밖에 없는 사회이자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귀족사회다.

▲ 스파르타 전사들은 용감히 싸웠지만,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 건 아테네의 시민병사들이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그러나 아테네는 이미 BC 600년께 솔론(Solon)의 개혁으로 많은 반자유민과 노예에게도 시민권을 개방해 민주사회로 이행하고 있었다. 테르모필레의 전투에 부실한 무기를 들고 어수선한 의병의 모습으로 나타난 아카디아 병사들이 바로 그들이다.

영화의 내레이터 격인 딜로이스도 “아카디아 병사들의 전투실력은 보잘것없었지만 용감히 싸웠다”고 증언한다. 결국 페르시아의 대군을 물리친 건 다소 부실하고 어수선한 아테네의 ‘민주 병사’였지 스파르타의 소수 ‘엘리트 병사’가 아니었던 셈이다.

테르모필레 전투는 스파르타 상위 15% ‘금수저’의 전투였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전쟁터에서 죽어간 전사들의 정신은 분명 경이롭다. 그러나 소수의 금수저가 제아무리 일당백의 전투력을 발휘하고 목숨을 던져도 그들만으로는 스파르타를 지킬 수 없었다. 2015년 우리사회에서 ‘양극화’의 경고를 넘어 나타나고 있는 ‘금수저, 흙수저’ 타령은 그래서 당혹스럽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opo.ac.kr  | 더스쿠프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