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자 교수의 探스러운 소비

▲ 한국의 음주 문화가 ‘술을 권하는 문화’에서 ‘술을 즐기는 문화’로 변화하고 있다. [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우리나라의 음주 문화가 변화하고 있다. 권하고 또 억지로 마시던 술을 이제는 원하는 스타일대로 즐기는 이들이 많아졌다. 술의 도수나 종류, 안주, 술을 마시는 장소와 분위기까지 기호에 맞게 선택함에 따라 주류시장에선 다양한 주류와 관련 용품이 탄생하고 있다. 누구에겐 그렇게 괴롭던 술, 이젠 즐기는 시대다.

여럿이 어울려 취하기 위해 마시던 음주 패턴이 바뀌고 있다. 가볍게 맥주 몇잔, 와인 한두 잔을 마시며 혼자 또는 몇명이서 담소를 나누는 패턴으로 말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996년 15세 이상 한국인의 1인당 연간 주류 소비량은 14.4L로 30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였다.

특히 소주를 포함한 독주 소비량은 1996년 이후 몇 년간 선두자리를 지켰다. 그러다 2013년 발표된 1인당 연간 소비량(순수 알코올·2011년 기준)은 8.9L로 줄었다. OECD 평균인 9.4L보다 낮아진 거다. 과거 한국의 음주 문화는 ‘술을 즐기는 문화’라기보다 ‘술을 권하는 문화’여서 개인의 취향이나 주량과 무관하게 술을 마셔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회식에 이어 2차로 이어지는 술자리에 끼지 못하면 직장 생활에 유리한 비공식 정보를 접할 기회를 잃는다고 생각했다. 상사나 동료와 개인적으로 친밀해질 기회도 놓칠 수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여성에게 필요한 적정량의 주량을 뜻하는 ‘사회적 주량’이 소맥(소주+맥주) 서너 잔으로 통용됐을 정도다. 잦은 술자리 문화는 대리운전 사업을 탄생시켰고 ‘치맥(치킨+맥주)’이라는 세계적인 단어도 만들어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음주 문화에도 새바람이 불고 있다. 꾸준한 음주 문화 개선 캠페인과 자가 운전자의 증가가 이런 변화를 이끌고 있다. 이제 원하지 않는 음주를 강제로 권하는 사람은 혹시 상사라도 문제 있는 사람으로 낙인 찍히기 십상이다. 젊은 회사원들은 삼겹살과 ‘소맥’의 조합 대신 와인, 뮤지컬 또는 영화 관람을 조합한 회식을 선호한다.

술을 마시더라도 양보다 질! 고유의 향과 맛을 찾아 수입 맥주를 선택하거나 수제 맥줏집을 찾는다. 맛있는 술, 예쁜 술을 찾는 여성 직장인도 많다. 이에 따라 다양한 주류와 관련 용품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과일 주스나 탄산수를 혼합한 술, 아이스 막걸리, 캠핑장에서 필요한 따뜻한 술, 진짜 맥주보다 가슴을 뛰게 만드는 맛있는 무알코올 맥주, 휴대 가능한 작은 술, 휴대용 알코올 농도 측정기 등등.

우리나라의 1인당 음주 소비량이 계속 줄어들고 있지만 세계 각국과 비교하면 그리 낮은 수준은 아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음주에 관대하며 술이 인간관계를 중개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다. 당분간 음주 시장의 변화는 소비 주류의 고급화, ‘혼술(혼자 술을 마시는 것)’의 증가, 술과 결합된 안주, 술 마시는 장소 등의 변화에 그칠 것이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는 물·술·우유·음료를 포함한 ‘마실거리’ 시장이 통합될 것이다. 더 나아가 먹거리와 마실거리가 통합되는 시장이 생길지도 모른다.
김경자 가톨릭대 소비자학과 교수 kimkj@catholic.ac.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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