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시장 찾아가보니…

▲ 공항시장의 입구를 알리는 간판.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녹이 슬어 있다.[사진=지정훈 기자]
“그때는 몰랐어요. 대형마트 하나에 시장이 무너질 줄은….” 한때 서울 강서구 최고의 상권이던 공항시장. 지금은 직선거리 300m 떨어진 곳에 들어선 대형마트에 손님을 다 뺏긴 채 초라한 신세가 됐다. 폐허가 된 공항시장, 이곳 상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공항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12월 2일 오후 2시, 지하철 9호선 공항시장역. 2009년 7월에야 운행을 시작한 역답게 내부는 깔끔했다. 역명驛名도 흥미롭게 ‘공항시장’이다. 이유가 궁금했다. 역 관계자는 “동네 이름인 공항동이라 처음엔 공항역으로 하려고 했다”며 “그런데 ‘공항’을 역명으로 하기는 곤란해 인근 공항시장의 이름을 따왔다”고 말했다. 재밌는 역명 때문인지 에피소드도 많다. 그는 “영어 이름이 ‘Airport Market’라서 공항면세점인 줄 알고 내리는 외국인도 가끔 있다”며 껄껄 웃었다.

역사 출구에는 지도가 배치돼 있다. 역 이름을 대표하는 공항시장은 1번 출구 바로 앞에 있다. 출구로 나왔다. 오전에 한바탕 내린 비가 적셔 놓은 길을 50m쯤 걷자 ‘공항시장’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녹이 슬어 있었지만 어쨌든 여기가 공항시장의 입구였다. 그곳에선 반찬가게가 영업을 하고 있었다. 말을 걸었다. “여기 무생채 하나만 주시겠어요.” “1500원이요” “김장철인데 손님이 안 보이네요.” “여기 처음 오셨어요? 우리 장사 안 되기 시작한 지 꽤 오래됐는데….” 반찬가게 상인은 단골이 아닌 손님으로는 기자가 처음이라는 말도 덤덤하게 털어놨다.

시장 내부로 들어갔다. 첫 느낌은 ‘폐허’다. 좁은 골목 옆으로 문을 연 가게는 한군데도 없었다. 대신 과거 지붕을 덮고 있던 천막들이 찢어진 채 흉물처럼 남아 있었다. 바닥에는 담배꽁초와 온갖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서울의 한복판, 그것도 김포국제공항 인근에 이런 곳이 남아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조금 더 걸으니 백발의 할머니가 기성복을 판매하고 있다. “상인들이 다 어디로 갔습니까?”라고 물었다. “다들 손님이 없으니까 접고 나갔지 뭐…”라는 건조한 답이 돌아왔다. “왜 함께 옮기지 않으셨어요?”라고 되물었다. 눈물을 빼놓을 만한 답이 가슴을 파고든다. “난 늙고 몸도 많이 아파서 옮길 수가 없어. 자식들 다 공부시켜 길러낸 고마운 곳이라 쉽게 떠날 수 없지.” 혹시 ‘재건축’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강서구에 따르면 내년 초 재건축 사업시행인가를 받을 예정이다. 인가를 받으면 시장은 허물어지고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선다. 할머니는 이런 정보를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런 얘기 들어본 적 없는데….”

시장을 한 바퀴 빙 돌았다. 가게 불이 켜져 있는 곳이 군데군데 보였지만 내부에 사람은 없었다. 가게 주인들은 대낮부터 가게 문을 열어두고 어디로 간 걸까. 의문은 금방 풀렸다. 상인들은 옷가게에 모여 있었다. 남은 점포가 별로 없자 이 옷가게가 상인들의 ‘사랑방’이 된 셈이다. 기자도 사랑방에 자리를 잡고 대화를 시작했다. 33년째 이곳에서 옷 장사를 하고 있다는 박명자(가명)씨는 번성했던 시절의 한 토막을 들려줬다.

찬란했던 공항시장의 과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공항시장의 위상은 대단했어요. 서울 서쪽지역에서 이보다 큰 시장은 없었으니까요. 서울 사람뿐만 아니라 일산ㆍ부천ㆍ인천ㆍ강화에서 사람이 다 몰렸어요. 그때는 없는 것 빼놓고는 모든 게 다 있다는 만물백화점이란 얘기를 들을 정도였으니까요. 옛날에는 인근에 여자 승무원이 많이 살아서 우리 가게 장사도 참 잘됐었지요.”

그렇게 번성했던 시장이 폐허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김포공항에 이마트가 입점하면서 시장 환경이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그나마 이마트 입점은 버틸 만한 수준이라고 했다. 2009년 공항시장역 개통으로 다시 시장을 찾는 손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하철 개통의 호재는 잠시뿐이었다. 2012년에 들어선 롯데몰 김포공항점은 시장에 치명타가 됐다. 요즘에는 인근 주민들마저 찬거리를 사기 위해 롯데몰로 간다고 했다.

▲ ①공항시장 내부. 각종 잡화가 길에 버려져 있다. ②반찬 가게가 있는 시장의 초입길. 내부로 들어서면 문을 연 가게를 찾기 어렵다.[사진=지정훈 기자]

박씨는 “그때만 해도 공항에 대형마트가 들어선다고 설마 이 큰 시장이 죽을까 싶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시장 상인들은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기에는 찾아오는 손님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식간에 무너지는 상권에 상인들은 목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남은 상인은 나이가 많고 몸이 불편하거나 금전적 형편이 어려워 점포를 옮길 엄두도 못 낸다.

사랑방을 나섰다. 이번에는 기자가 기억하는 골목을 찾아가기로 했다. 과거 공항시장의 명물로 알려졌던 순댓국 골목이다. 2004~2005년 순댓국 골목은 자정이 가까워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찾아오는 손님들로 불야성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10여년 만에 다시 찾은 골목은 조용했다. 과거 술에 취한 손님의 노랫소리가 들렸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서너집 정도가 문을 열었지만 가게 내부에는 손님이 없었다.

공항시장에 들어선 지 2시간째. 활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공항시장을 벗어났다. 인근에 있는 방신재래시장은 어떤지 가보고 싶었다. 걸어서 15분 거리, 방신시장은 가까웠다. 이곳에서 순댓국집을 운영하는 김혜원(가명)씨를 만났다. 공항시장에서 13년 동안 순댓국을 팔았다고 한다. “제가 10년 전만 해도 순댓국으로 한달에 300만원을 벌던 사람이었어요.”

김씨는 1999년 공항시장에 터를 잡고 순댓국을 팔았다. 가게 문을 열면 다시 닫을 때까지 하늘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하지만 인근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손님이 줄기 시작했고 임대료도 내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결국 김씨는 2012년 공항시장을 털고 나와 방신시장에 둥지를 틀었다.

대형마트에 무너진 공항시장

그나마 이곳은 대형마트의 영향을 덜 받는 지역이기 때문에 먹고살 만했다. 김포공항에 이마트가 들어서면서 손님이 확 줄었던 걸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난다는 김씨는 “방신시장 인근에 또 대형마트가 들어선다는 얘기가 있다”며 “이번에는 공항시장 때처럼 그냥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가 다 질 무렵 다시 공항시장을 들렀다.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시장에는 오싹한 기운이 감돌았다. 문득 옷 장사를 하던 할머니의 말이 기억났다. “재개발이 되면 이곳을 나가야겠지, 오피스텔이라고 했나? 거기에는 우리가 있을 자리는 없을 테니까….”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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