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이 세일 같지 않은 이유

▲ 민간 주도 행사라는 ‘K-Sale Day(K-세일데이)’에는 40억원에 달하는 정부의 입김이 섞여 있다.[사진=뉴시스]
또 세일이다. 이번엔 ‘K-세일데이’다. 행사를 주도한 유통산업연합회는 얼마전 끝난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와의 ‘차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세일에 활력을 불어넣는 제조업체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문제는 무엇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K-세일데이의 그림자를 쫓아가 봤다.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10월 1~14일)’의 2탄 격인 ‘K-Sale Day(K-세일데이)’가 11월 20일 막을 열었다. 행사를 주최한 유통산업연합회는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기존 세일행사와 차별화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와 유통업체가 주도한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와는 다르게 세일을 진행하겠다는 포부다.

그런데 ‘차별화 포인트’가 분명하지 않다. 무엇보다 주축이 민간(유통산업연합회)이라지만 정부의 입김이 완전히 빠진 건 아니다. 정부가 투입한 마케팅 비용이 40억원에 달한다. 제조업체가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도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와 비슷하다. 그뿐만 아니라 품목은 다양하지 않고 할인폭은 크지 않다.

유통업체만 배불리는 한국형 세일

이런 이유로 K-세일데이에서도 유통업체의 배만 부를 공산이 크다.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처럼 말이다. 실제로 지난번 평균 24%의 매출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 기준)을 기록했던 백화점은 11월 27~28일에도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였다. 롯데백화점의 매출은 23.5%, 현대백화점은 20.3%, 신세계백화점은 23.8% 늘어났다.

 
K-세일데이에서 만난 한 소비자는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별 볼일 없던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며 “이름만 바꾼 세일이 연이어 나오면서 감흥도 별로 없다”고 푸념을 늘어놨다. 소비자의 피로감만 높여놨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대규모 세일 행사가 미국 블랙프라이데이의 발끝조차 못 쫓아가는 이유는 뭘까. 해답은 유통업체와 제조업체의 ‘이상한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의 예를 들어보자. 미국의 유통업체는 제조업체로부터 직접 상품을 사들여 판매한다. 이를테면 ‘직매입’ 구조다. 때문에 유통업체들은 재고를 남기지 않기 위해 연말에 큰 폭으로 세일행사를 한다. 미국 연간 소비의 20%가 발생하는 블랙프라이데이가 대표 사례다.

반면 우리나라의 유통업체는 매장을 빌려주고 매출 대비 수수료로 이득을 얻는다. ‘특정매입’ 구조다. 이에 따라 재고 부담은 유통업체가 아닌 제조업체가 져야 한다. 더구나 할인율을 아무리 높여도 유통업체에 줘야 하는 수수료는 변동이 거의 없는 탓에 제조업체는 세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한 중소 제조업체 대표는 “제조업체들이 유통업체를 거치지 않고 특정 공간을 임시로 빌려서 ‘창고 대개방’ 등과 같은 덤핑 판매로 제고를 털어내는 건 그만큼 마진을 많이 남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제조업체의 현실을 이렇게 분석했다. “원가가 4만원인 물건을 백화점에서 10만원에 판다고 가정해보자. 백화점 수수료를 40%라고 했을 때 납품업체가 원가와 수수료를 제외하고 나면 2만원을 손에 쥘 수 있다. 그런데 이 물건을 30% 할인하면 7만원에 팔아야 한다. 원가 4만원과 백화점 수수료 2만8000원을 빼면 제조업체의 수익은 2000원 남는다. 제조업체가 세일행사에 뛰어들지 않는 이유다.”

 
익명을 원한 중소 제조업체의 한 관계자도 “우리도 세일을 통해 소비심리를 살려야 한다는 취지는 공감한다”면서도 “하지만 수익이 나는 세일행사가 돼야 하는데 지금의 구조로는 우리 같은 납품업체가 오래 버티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우리의 대규모 세일이 ‘세일 같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제조업체가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없으니 품목이 다양할 리 없다. 유통업체가 수수료를 내려주지 않으니, 세일 할인폭이 적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제조업체가 유통업체에 무언가를 요구하기도 어렵다. 유통업체가 ‘우리 매장에서 방 빼라’고 말하면 어쩔 도리가 없어서다. 유통업체와 제조업체의 ‘갑을관계’를 해소하지 않으면 ‘세일다운 세일’을 만끽하기 어렵다는 거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한 정부는 최근 납품업체들을 위한 간담회를 마련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유통업체의 눈치를 봐야 하는 납품업체들이 불참의사를 밝히면서 이 간담회는 무산됐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지금 같은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세일 행사의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판매 전략보다 구조 개선이 우선

한상린 한양대(경영학) 교수는 “내수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정부의 압박에 기업들이 강제로 떠밀려 세일 행사를 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그 결과, 소비자들의 ‘세일 체감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나 유통업체가 아니라 제조업체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세일을 할 수 있는 생태계가 조성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일을 하면 할수록 납품업체의 부담만 가중된다는 지적에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꼼꼼히 모니터링해 유통업체뿐만 아니라 중소 제조업체도 함께 ‘세일효과’를 누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김미란 더스쿠프 객원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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