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병 보증금 갑론을박

▲ 최근 빈병 보증금 인상안을 두고 환경부와 업계가 입장차를 보이는 가운데 소주가격마저 오르기 시작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가 ‘빈병 보증금 인상’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환경부가 제시한 ‘빈병 보증금 인상안’을 사실상 철회했기 때문이다. ‘빈병 보증금을 올리면 술값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주류업계의 입장을 많이 반영했다. 하지만 빈병 보증금과 무관하게 소주 가격은 올랐다. ‘빈병 싸움’에 소비자는 없었다.

환경부가 ‘빈병 재사용률’을 높이기 위해 지난 9월 입법 예고한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빈병 보증금 인상안 등)’이 일정대로 시행되기 어려워졌다. 11월 27일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가 심사를 벌인 결과 환경부가 제시한 빈병 보증금의 인상안을 철회하고, 취급 수수료도 업계 스스로 결정하도록 의결했기 때문이다.

빈병 보증금은 국산 소주나 맥주 등 제품가격에 포함해 놨다가 빈병을 반환하면 돌려받는 돈이다. 취급수수료는 업체가 빈병을 대신 수거해 주는 대가로 주류 도·소매상에게 주는 비용이다.  당초 환경부는 내년 1월 21일부터 빈병 재사용률을 높이기 위해 소주와 맥주의 빈병 보증금을 각각 40원에서 100원, 50원에서 130원으로 올릴 계획이었다.

기존 16~19원이던 취급수수료도 33원으로 인상키로 했었다.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사 결과로 이 계획이 물거품 된 셈이다. 환경부는 재심사를 요청한다는 방침이다. 환경부 측은 “빈병의 재사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빈병 보증금을 높이는 방안 외에 실질적인 대안이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취급수수료의 자율 결정은 수용할 수 있지만 빈병 보증금 인상안 철회는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거다.

 
환경부가 빈병 보조금의 인상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현재 빈병 보증금은 소주병(36mL) 40원, 맥주병(640mL) 50원, 1000mL 이상은 100원 이상으로 정해져 있다. 무려 21년 동안 가격이 변하지 않았다. ‘빈병 보증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 이유다.  당연히 주류업계가 반발했다. ‘빈병 보증금을 올린다고 회수율이 높아질 가능성이 없다’는 논리를 폈다.

이유는 간단했다. 빈병 보증금을 올리면 술값이 인상될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환경부도 주류업계의 이 주장엔 동의했지만 ‘빈병 보증금 인상이 반드시 술값 인상을 유인하는 건 아니다’고 맞받아쳤다. 빈병을 반납하면 전액 환불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주류업계가 다시 ‘빈병을 반환하지 않고 그냥 버리는 소비자가 많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환경부는 “빈병 보조금은 소비자들이 되돌려 받아야 하는 돈인 만큼 보조금을 올리면 그만큼 되돌려 받으려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라고 꼬집었다. 양쪽 주장 모두 설득력이 있었지만 규제개혁위원회는 주류업계의 입장과 가까운 판단을 했다. 빈병 보증금을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만장일치로 의결한 것이다. 한계치에 다다른 빈병 회수율을 보증금 인상으로 더 끌어올리기엔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대신 규제개혁위는 빈병이 깨지거나 흠이 생기지 않도록 수거·운송·보관 방식 등을 개선하고 더 단단한 병을 만들어 현재 8회에 불과한 재사용 횟수를 높이는 방안을 대안으로 내놨다. 액면만 보면 주류업계의 완승이다. 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이번 논쟁에서 환경부와 주류업계는 소비자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논지를 펼쳤다.

 
환경부는 ‘빈병 보조금 인상분은 결국 소비자 몫’이라고 주장했다. 주류업계는 ‘소비자의 부담을 높인다’며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주류업계는 환경부의 빈병 보조금 인상이 불발된 것과 무관하게 소주가격을 인상했다. 하이트진로는 11월 30일 참이슬 후레쉬와 참이슬 클래식(360mL) 출고가를 병당 54원 올려 1015.70원으로 변경했다.

소주 출고가가 1000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이를 계기로 다른 주류업체의 술 가격이 인상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업계 안팎에선 환경부의 빈병 보증금 인상안이 빌미를 제공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환경부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빈병 보조금은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비용이지만 제품가격 인상은 기업이 이윤추구를 위해 이뤄지는 것으로 엄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하지만 환경부도 비판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내년부터 빈병 보증금을 취급하는 ‘한국순환자원 유통지원센터(유통지원센터)’가 환경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유통지원센터는 폐자원의 회수율을 높이고 재활용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2013년 설립된 공익법인이다. 그런데 이 센터의 직원 70여명 가운데 상당수가 환경부 퇴직자다.

환경부 국장, 환경산업기술원장 등을 지낸 인사가 이사장을 맡은 적도 있다. 이번 빈병 보증금을 둘러싼 싸움에서 승자가 있기는 한 걸까. 국민들이 소주를 삼키면서 쓴 표정을 짓는 건 소주의 쓴맛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김은경 더스쿠프 기자 kekisa@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