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따뜻한 경제학

▲ 노인복지 비중은 늘리면서 아이들 복지 비중은 줄이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사진=뉴시스]
무상급식ㆍ무상보육의 수혜자는 반드시 빈곤계층만이 아니다. 아이를 양육함에 따라 일생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하는 ‘젊은 부모’를 지원하는 정책이다. ‘무상급식ㆍ보육은 보편적 복지’라는 비판이 적절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상급식ㆍ보육은 그 자체로 ‘선별적 복지’이기 때문이다.

야당, 진보성향 학자, 시민단체는 전면 무상급식을 지지한다. 무상급식을 통해 아이들이 신체적ㆍ정신적으로 건강한 시민으로 키우겠다는 게 이유다. 반면 정부와 여당은 무상급식을 전형적인 ‘공짜복지’로 여겨 반대한다. 중요한 건 이념적ㆍ정략적 차원에서 전개된 이런 논쟁을 모든 국민이 공감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실리 차원에서 무상급식을 바라봐야 한다는 얘기다.

무상급식은 부모의 소득수준과는 무관하게 모든 아이들에게 혜택을 주는 국가 정책이다. 이 때문에 무상급식은 선심성ㆍ낭비성 복지,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복지시책의 대표 사례로 비판받는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대상자 선별 방식의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오해다. 사실 아이를 부양하고 있다는 사실은 빈곤 또는 경제적 어려움과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다.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부모들은 대개 나이가 젊고, 지출요인은 많은 반면에 수입이나 재산은 상대적으로 적다.

생애주기의 관점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궁핍한 시기일 확률도 높다. 게다가 부부 가운데 한 사람(대개 여성)은 출산과 양육으로 인해 직장을 그만두거나 양육의무를 대신해 줄 만한 대체인력을 채용해야 할 수도 있다.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통상 아이를 양육하는 시기에 해당하는 가정은 소비수요가 매우 높은데도 실제 가구소득이 상대적으로 낮다.

이에 따라 무상급식ㆍ무상보육은 반드시 빈곤계층이 아니더라도 일생에 있어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의 젊은 부모를 지원해준다는 차원에서 정당성과 효과성을 확보할 수 있다. 특히 정부가 인구정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출산장려정책’을 고려하면 무상급식ㆍ무상보육은 매우 당연하다. 젊은 부부의 출산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는 ‘가난이나 빈곤’이 아니라 주로 ‘경제적 어려움’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양육한다는 사실’은 정책 대상자를 식별할 수 있는 일종의 지표다. 그런 가정에 무상급식ㆍ무상보육을 제공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선별적 복지다. 그런데 그중에서 또다시 대상자를 선별한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더구나 무상급식ㆍ무상보육은 서비스 형태로 제공되는 일종의 현물급여다. 종종 현금급여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목적 이외의 용도에 활용’되는 사례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어 효율성도 매우 높다.

세대 간 형평성 차원에서도 타당하다. 정부는 예산이 모자라도 노인에게는 공적연금, 기초연금, 건강보험 특별지원, 각종 경로우대 등 광범위한 혜택을 제공한다. 반면에 아이들에게는 그다지 인상적인 혜택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있는 무상급식ㆍ무상보육마저 폐지하거나 그 기능을 대폭 축소한다는 건 세대간 형평의 원리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지지표를 얻기 위한 노인세대 편중 지원은 중장기적으로 국가의 존립이나 생산성을 저해하는 불합리한 정치적 선택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 문제는 젊은 세대의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출산과 양육의 책임과 비용을 사회가 함께 분담해 주지 않아 포기한 것이다. 당연히 임신~출산~양육~교육 등 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 과제에 대해서는 선별ㆍ보편의 담론을 뛰어넘어 포괄적이고 통 큰 복지제도로 대응해야 한다. 정부와 여당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걱정만 할 게 아니다. 양육 부모를 위한 정책이나 제도의 도입ㆍ개선을 위해 나서야 한다.  
이정우 인제대 사회복지학 교수 socwjwl@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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