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괴물 ❶

▲ 영화 ‘괴물’에서 의미하는 괴물이 대형 물고기인지 국가인지 구분하기 어렵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 ‘괴물’은 2006년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다. 봉 감독 자신의 학창 시절, 잠실대교 교각을 오르는 괴물체를 본 적이 있다는 ‘믿거나 말거나’식의 개인 경험과 2000년 미군 영안실에서 발생한 독극물 한강방류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했다고 한다.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사소하고 불확실한 개인적 기억과 커다란 사회 사건을 엮어 스토리를 창조하는 봉 감독의 재주가 놀랍다. 영화 ‘괴물’은 개봉 38일 만에 1200만여명의 관객을 동원, 역대 흥행 1위에 올랐다(당시 기준).

2000년 어느 날, 한미연합사가 운영하는 영안실에서 미군은 100병 넘는 독극물 포름알데히드를 한강으로 방류한다. 이를 지시한 미군 책임자에게는 포름알데히드 ‘고작 100’이겠지만, 방류 지시를 받은 한국 실무자에게는 ‘100병이나’ 되는 양이다. 같은 100병이지만 내 땅에 뿌리는 100병과 남의 땅에 뿌리는 100병의 인식 차이는 극명하다.

한미행정법상 평시든 전시든 작전통제권은 미국에 있어서일까. 한국 실무자는 망설이지만  결국 미군의 ‘포름알데히드 폐기 작전 통제권’에 따라 100병이나 되는 포름알데히드를 얌전히 하수구에 쏟아 붓는다. 포름알데히드와 생명체 돌연변이의 상관관계가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생김새로 짐작하건대 포름알데히드에 오염된 메기가 돌연변이를 일으킨 것으로 보이는 거대 괴怪물고기가 출현한다. 고래는 다리가 퇴화해 바다로 들어갔다는데, 포름알데히드를 먹은 물고기는 거꾸로 다리가 생겨 땅으로 올라와 평화로운 토요일 오후 한강둔치를 덮친다.

한강둔치에서 매점을 운영하다 땅으로 올라온 괴물고기에게 막내딸(고아성)을 납치당한 소시민 박강두(송강호)의 가족은 황당하다. 난데없는 괴물의 출현은 분명 국가의 책임이다. 괴물의 탄생도 국가의 책임이며 괴물의 테러를 막지 못한 것도 국가의 책임이다. 국가의 무능 혹은 직무유기로 발생한 괴물에게 가족을 잃었지만, 국가는 가족에게 사죄하거나 보상을 하기는커녕 격리하고 핍박을 가할 뿐이다. 국가의 배신이다.

이쯤 되면 영화 속 ‘괴물’이 대형 괴물고기인지 국가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박강두의 가족은 한강의 괴물고기와 국가라는 두 개의 괴물을 동시에 맞닥뜨리게 된다. 한강의 ‘괴물’을 쫓으면서 국가라는 또 다른 ‘괴물’에게 쫓기는 기묘한 신세다. 17세기 영국의 법학자이자 사회계약론자인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s)는 국가를 바다 속 상상의 괴물 ‘리바이어던(leviathan)’으로 상징화한다. 홉스에 따르면 인간은 이기적이고 공격적이며 탐욕스러워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그는 “개개인이 보유한 폭력 수단을 모두 국가에 신탁信託하는 대신 무력을 독점한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안전을 지켜주는 계약관계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이 ‘믿고 맡긴’ 독점적 무력으로 되레 국민을 억압한다면 이는 곧 국가가 괴물로 둔갑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 국가가 국민이 믿고 맡긴 독점적 무령을 국민 억압용으로 사용하면 국민은 무력을 다시 회수하려 한다.[사진=뉴시스]
괴물로 변한 국가에 배신당한 가족은 자조·근면·협동의 새마을 정신을 발휘한다. 괴물의 꼬리에 감겨 한강 속으로 사라진 가족을 스스로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부지런히 뛴다. 할아버지(변희봉)는 전 재산을 처분해 봉고차 1대와 엽총 1자루를 구한다. 양궁선수 고모(배두나)는 활을 메고 화살을 잡는다. 학창시절 데모꾼이던 삼촌(박해일)은 화염병을 제조하고, 공권력을 따돌리는 기술의 진수를 다시금 선보인다.

국가가 국민을 배신했을 때 국민은 자구책으로 국가에 ‘신탁’했던 폭력수단을 확보하려 들고, 공권력에 대항한다. 소싯적 한약을 잘못 먹어 총기聰氣가 떨어졌다는 강두는 뚜렷한 재주가 없지만, 민초民草의 가장 강력한 무기 ‘맨주먹 붉은피’로 무장한다. 그렇게 박강두 일가족은 국가를 믿고 신탁했던 ‘무력’을 회수해 국가라는 ‘괴물’에 쫓기면서 내 딸, 내 손녀, 내 조카를 앗아간 한강의 괴물을 쫓는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opo.ac.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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