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하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대한민국 보통 남자들이 꾸는 고약한 꿈 중 하나가 군대에 다시 불려가는 것이다. 연말 송년회나 회식 자리에서 군 복무 시절 겪은 일을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이들도 다시 입대하거나 훈련을 받는 꿈에선 대부분 가위 눌리거나 식은땀을 흘리며 악몽을 꾼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지난 10일 출입기자들과의 송년 저녁자리에서 “제대를 앞둔 말년 병장 같은 심정”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 1년 반 재임기간이 10년 같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대내외 경제환경도 녹록지 않았지만 지난해 세월호 사고, 올해 메르스 사태 등 미약한 내수를 더욱 냉각시키는 돌발변수가 나타났으니 그런 생각이 들만도 하겠다.

그러나 어디 편안한 보직에서 예고된 상황에 따라 주어진 일만 매뉴얼에 따라 하고 군대 생활을 마칠 수 있는가. 각개전투와 혹한기 극기 및 유격훈련은 기본이고 각종 숱한 돌발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하고 움직여야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고 몸성히 제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최 장관의 ‘경제부총리직’ 복무 점수는 어떤가. 경제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은 제대로 했나. 대내외 경제여건 변화 및 돌발 상황에 선제적으로 적절하게 대응했는가. 본인으로선 전임 현오석 부총리 대타로 징집돼 악조건에서도 선방했다지만, 후한 점수를 받긴 어렵다.

부총리 내정 직후 “한겨울에 여름 옷(규제) 입고 있으면 감기 걸려 죽는다”고 말한 그는 취임하자 곧 주택담보대출 규제부터 완화했다. 그러나 빚 내 집 사라는 부동산 경기 부양책은 1년여 만에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형국이다. 아파트 분양이 활기를 띠고 주택거래 건수가 늘었지만, 전ㆍ월세난이 가중되고 셋집 구하기는 더 힘들어졌다. 줄던 미분양아파트가 올가을부터 다시 늘었고, 11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취임사에서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고 선언하더니만, 정작 꺼내 든 칼은 부동산대출 규제 완화와 재정지출 확대 등 낡고 후유증이 우려되는 단기 부양책 일색이었다. 추경예산을 편성해 재정지출을 늘리면서도 ‘증세는 없다’는 대통령 뜻에 맞춰 세제를 손대는 대신 손쉬운 국채발행을 선택해 국가채무를 키웠다. 자동차 개별소비세를 한시적으로 낮춰 미래 소비를 앞당기는 과거 정부의 단골 소비촉진책도 동원했다. 그러면서 나라경제의 긴 장래를 내다본 공공 부문과 산업ㆍ기업의 구조조정은커녕 잠재성장률을 갉아먹는 저출산 고령화 대비책에도 소홀했다.

행정고시 출신으로 경제부처에서 일했고 언론사 논설위원도 지낸 ‘최 병장’이 왜 그리 뻔한 단기 처방에 급급했을까. 2002년 정치 판에 들어가 대통령후보 보좌관, 장관, 여당 원내대표 등을 역임한 3선 국회의원으로 다음 총선거를 의식했으리라. 더구나 그는 ‘원조 친박親朴’으로 불리는 실세 정치인이다. 그렇다고 자꾸 여의도를 향해 슛을 날리고 보는 식의 뻥축구로는 골은커녕 다음 경제팀과 차기 정부, 나아가 미래세대에 엄청난 부담만 안겨줄 뿐이다.

취임 초기 근로자 임금을 중심으로 가계소득을 증대시킴으로써 민간소비를 늘려 경제성장을 꾀하겠다는 ‘소득주도 성장론’을 제기해 주목받았던 ‘초이노닉스’는 결국 가계부채와 국가채무만 부풀리는 ‘부채주도 성장’에 그쳤다. 반짝 효과를 노린 단기 처방을 잇달아 쏟아냈는데도 올해 성장률은 지난해(3.3%)보다 뒷걸음쳐 2%대로 주저앉을 판이다. 이를 지켜보는 최 병장의 꿈도 뒤숭숭하리라.

경제부총리는 1963년 12월 박정희 정부가 탄생시킨 경제정책 컨트롤타워다. 역대 정부가 유지해온 이 자리를 직전 이명박 정부는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며 없앴는데 박근혜 정부가 부활시켰다. 그러나 그곳에 정치인 출신을 앉힌 선택은 결과적으로 잘못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에는 어떤 용병술을 보여줄까? 자리에 걸맞은 역량과 비전, 책임감을 갖춘 경제사령탑이 절실하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