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 국면 무서운 시나리오

▲ 현재의 저유가 상황은 국내외 경제 환경에 악재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사진=뉴시스]
국제유가가 배럴당 30달러대로 떨어졌다. 하지만 유가반등의 시그널이 거의 없는 탓에 유가가 배럴당 20달러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사상 초유의 ‘저유가 국면’, 세계시장엔 무슨 일이 벌어질까. 1986~2000년 유가급락 후 회복기를 거친 1986~2000년을 복기해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산유국들이 석유생산량을 줄이지 않을 경우 국제유가는 20달러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다.” 지난 9월 골드만삭스가 내놓은 국제유가 전망치다. 씨티증권도 비슷한 전망을 내놨다. 국제유가가 30달러대로 떨어지자 국내에서도 일부 비슷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 이슈도 추가적인 유가 하락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물론 국내 석유시장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20달러 진입의 가능성은 낮다”고 말한다. 다만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는 전제를 달고 있다는 점에서 ‘추가적인 하락 혹은 단기적인 하락 지속’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유가가 어디까지 내려갈지가 아니다. 한국경제, 특히 민생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분석해야 한다. 아쉽게도 전문가들은 유가하락이 호재보다 악재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유가가 떨어지면 소비자의 호주머니가 든든해져 내수에 활력이 감돈다는 게 일반적인데 악재라니, 이유가 뭘까.

조원희 국민대(경제학) 교수는 “석유 공급과잉 외에 석유 수요가 늘지 않고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봐야 한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유가 하락은 공급과잉의 탓도 있지만, 석유 수요가 늘지 않는 걸 보면 경기 침체의 탓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가가 더 하락하면 국제 시장의 큰손이던 오일머니는 투자도 소비도 줄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국내 수출기업들이 타격을 받는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가계부채를 통한 부동산 경기 부양으로 경기를 떠받치고 있다. 유가 하락으로 호주머니가 채워져도 소비가 늘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석유 수요든 소비 수요든 수요가 늘지 않는 유가 하락은 결코 긍정적이라고 볼 수 없다.”

 
이광우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도 “미국의 금리인상 이후 유가가 20달러대까지 하락할 수 있다는 의견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면서도 “여러 측면에서 부정적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추가적인 유가 하락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뿐만 아니라 러시아ㆍ브라질ㆍ베네수엘라 등 경제 체력이 취약한 비OPEC 산유국들의 경기 불안을 가중시킨다. 이들 국가는 정치적인 위기까지 겹쳐 있다. 신흥국에 유입됐던 자금은 빠져나갈 것이고, 국내 기업들의 수출도 줄어들 거다. 불안감이 없는 상태에서 유가가 내려가면 좋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최근 들어 1986~2000년 ‘유가급락 이후 회복기’의 상황이 회자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1986년 유가급락(20달러에서 10달러대까지 하락) 이후 제자리(20달러 후반)를 찾는 데까지 걸린 15년은 국제금융시장에 악몽과도 같다. 그 기간 러시아는 소련 붕괴(1991년)와 모라토리엄(1998년)을 겪었고, 중동에선 쿠웨이트의 증산에 불만을 품은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해 걸프전(1991년)이 발생했다. 우리나라는 외국인의 투자금 이탈로 외환위기(1997년)를 겪었다. 국제 유가가 더 떨어지면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얘기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유가는 충분히 낮아졌고, 더 낮아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면서도 “국내 수출기업, 재정과 수출 여건이 좋지 않은 산유국들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고, 유가와 경기 회복의 동력도 낮다”고 분석했다. 강유진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국제유가가 더 떨어지면 산유국들의 재정적 압박이 더 심해지고, 이에 따라 해외건설이나 조선 등은 직격탄을 맞는 등 악재가 더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유가 국면, 한국경제에 상처 줄까

전문가들의 분석들을 종합해보면 저유가 상황 혹은 추가적인 유가 하락의 여파는 산유국 경기, 국내 경기(산업ㆍ물가ㆍ내수), 미국 셰일 오일 등 3가지로 요약되는데,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무엇보다 유가 하락은 산유국 경제에 타격을 준다. 이익률이 떨어지면서 산유국들의 소비도 투자도 줄어든다.

러시아ㆍ브라질 등 정치적으로 불안한 산유국들이 입을 타격은 더 크다. 세계 경제의 불안한 심리는 경기 위축으로 이어지고, 투자금은 안전 자산으로 이동한다. 그 와중에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세계 자본의 흐름은 빨라진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신흥국에 투자됐던 자금들은 회수된다.

 
산유국들을 비롯한 신흥국의 침체로 세계 소비도 줄어든다. 국내 기업의 수출전선에도 부정적 영향이 미친다. 글로벌 석유기업들의 투자가 줄면서 국내 경제를 견인하는 건설업(해외), 중공업, 조선업은 수주에 타격을 입는다. 유가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정유업은 유가가 안정적으로 떨어지면 정제마진을 크게 남길 수 있지만, 빠르게 떨어지면 재고 손실(원유를 비싸게 사서 싸게 제품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을 본다. 앞날을 알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가계에 당장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저유가가 지속되면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늘어난다. 하지만 국제 유가의 반영은 즉각적이지 않다. 이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저유가 국면을 실감할 수 없다. 더구나 상당수의 가계는 늘어난 소득을 부채를 갚는데 쓸 공산이 크다. 투자를 결정하기도 쉽지 않다. 저유가로 증시가 흔들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국의 셰일 가스 생산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OPEC의 석유생산 한계비용이 배럴당 평균 30달러 후반(사우디는 20달러대)인데 반해, 미국 셰일 가스는 40달러 초반대에 있기 때문이다. OPEC의 감산 합의 불발과는 별개로 셰일 가스의 채산성이 맞지 않는 수준까지 가격대가 내려간다면 감산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다만 ‘죄수의 딜레마(자신의 이익만 고려한 선택이 결국 자신뿐만 아니라 이해당사자 전체에 불리한 결과를 만드는 상황)’가 존재하기 때문에 셰일 오일 생산량이 줄어든다고 해서 다른 산유국들이 감산을 결정할지는 미지수다.

▲ 유가 급락후 회복기에 걸프전과 외환위기가 터졌다.[사진=뉴시스]
원유 수입액 줄어 기회일수도

물론 저유가 국면이 호재라는 주장도 있다. 박영훈 LIG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유가가 올라도 위기, 내려도 위기라면 도대체 기회는 언제냐”며 이렇게 지적했다. “석유 수요 위축이라면 위기지만 공급과잉이라면 오히려 기회다. 미국의 가솔린 소비량은 200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유가 하락으로 한국의 수출액이 감소한 건 석유제품 영향이 큰데, 정유사들이 이로 인해 적자가 나는 상황도 아니다. 에너지 소비 기업들의 실적이 좋다는 걸 떼놓고 봐선 안 된다.”

그의 주장은 우리나라의 원유 수입량과 수입액을 비교해보면 실감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원유 수입량의 변화는 크지 않았지만, 원유 수입액은 유가 등락에 따라 널을 뛰었다. 특히 2011년(고유가 시기)의 연간 원유 수입액(1008억 달러)은 저유가가 시작된 2014년(473억 달러)보다 535억 달러(약 59조원)나 많았다. 수입량은 약 1억 배럴(1일 기준 28만 배럴) 늘어났을 뿐이다. 유가가 반토막 나면 수십조원이 절약된다는 걸 감안하면 저유가로 불이익을 보는 업종만을 얘기할 수 있느냐는 설명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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