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랭크인 | 대호

▲ 영화‘대호’의 장면들. [사진=더스쿠프 포토]
‘한국 호랑이’는 오랜 세월 두려움의 대상이자 경외의 대상으로 대접받았다. 영화 ‘대호’의 박훈정 감독은 “이번 영화는 조선의 사라진 호랑이와 호랑이를 잡던 마지막 사냥꾼의 이야기”라며 “그 시대의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은 마음에 이 영화를 찍게 됐다”고 말했다.  1925년 조선, 최고의 명포수로 이름을 날렸던 ‘천만덕(최민식)’은 지리산의 오두막에서 늦둥이 아들 ‘석(성유빈)’과 단둘이 살고 있다.

아들 석은 최고의 포수였지만 지금은 사냥에 나서지 않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마을은 지리산의 산군山君으로 두려움과 존경의 대상인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대호’를 잡기 위해 몰려든 일본군 때문에 술렁이고 도포수 ‘구경(정만식)’은 ‘대호’ 사냥에 열을 올린다. 조선 최고의 전리품인 호랑이 가죽에 매혹된 일본 고관 ‘마에조노(오스기 렌)’는 ‘대호’의 가죽을 손에 넣기 위해 일본군과 조선 포수대를 다그치고 ‘구경’과 일본군 장교 ‘류(정석원)’는 모습조차 쉽게 드러내지 않는 ‘대호’를 잡기위해 ‘만덕’을 영입하려고 한다.

천만덕과 대호 둘 사이는 포수와 사냥감으로 언뜻 공존이 불가능한 관계로 보인다. 하지만 영화 ‘대호’는 만덕과 대호의 비슷한 운명을 이야기한다. 조선 최고의 명포수 만덕은 살생으로 쌓인 ‘업’에 지쳐 총을 놓은 지 오래다. 게다가 그는 잡을 것만 잡으며 산에 대한 예의를 지키려 한다. 최고의 포식자이자 지리산의 주인인 ‘대호’도 살기 위해 사냥에 나서지만 쓸데없는 살생은 하지 않는다.

생존이 아닌 욕망을 이유로 사냥에 나서지 않는다는 점에서 둘은 닮았다. 그리고 둘 다 아버지다. 만덕에게 아들 석이 목숨보다 소중한 것처럼 대호에게는 새끼들이 자기가 지켜야 할 모든 것이다. 제 몸의 상처나 고통보다 가족이 귀한 둘은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셈이다. 영화 ‘대호’는 그 누구에게도 사냥을 허락하지 않는 대호와 함부로 총을 들지 않는 최고의 포수 ‘만석’의 운명을 강렬하게 풀어 놓는다.

가장 큰 볼거리는 생생하게 살려낸 한국 호랑이다. 몸무게 400㎏, 길이 3m80㎝의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대호’는 일본군과 포수대의 공격에도 굴하지 않는다. 포수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영역으로 반드시 돌아오는 한국 호랑이의 높은 자존심과 당당함은 극에 긴장감을 불어 넣는다. 천만덕 역의 최민식은 한겨울 눈 덮인 지리산에서 호랑이 사냥을 위해 뛰고 구르는 액션연기를 직접 해내며 20~30대 배우도 견디기 힘든 체력적 한계를 이겨냈다.

‘300개의 얼굴을 가진 남자’라 불리는 일본 대표 배우 오스기 렌은 일본에 없는 한국 호랑이의 용맹함과 아름다움에 마음을 사로잡힌 일본군 고관 ‘마에조노’의 집착을 탁월하게 표현한다. 100년 전 사라진 한국 호랑이의 멋진 위용을 볼 수 있는 영화 ‘대호’. 이 영화가 선사하는 가슴 뭉클한 감동을 통해 사라진 호랑이가 전하는 우리의 민족 정기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손구혜 더스쿠프 문화전문기자 guhso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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