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경제정책방향 평가

조직이 살아있는 기업들은 한달 이상 시간적 여유를 갖고 새해를 준비한다. 11월 하순~ 12월 초, 경영성과에 따른 신상필벌의 최고경영자(CEO) 및 임원 인사로 조직을 추스른다. 신임 CEO와 임원들로 하여금 새해 경영계획을 짜고 신사업을 구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국가 운영도 마찬가지다. 새해 새 마음으로 나랏일을 시작하려면 각 부처 장관들이 주도적으로 책임지고 새해 업무계획을 짜야 한다. 그래서 해마다 이맘때 정부부처는 물론 기업들, 가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제주체가 주목하는 것이 새해 경제정책방향이다. 그러나 지난 16일 발표된 2016년 경제정책방향은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함량도 미달인 불량품이다.

경제정책방향이 제대로 실행되는지 확실하게 책임을 물으려면 입안자와 실행자가 같아야 한다. 그런데 입안 책임자는 ‘경제부총리 제대증’을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고백한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이미 사의를 표명한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에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까지 적어도 5명이 ‘총선용 개각’ 대상이다. 

개각 대상은 벌써 몇달 전부터 거론됐다. 하지만 개각 시점은 계속 미뤄졌다. ‘예산안이 통과되면’ ‘정기국회가 종료되면’ 하던 개각 시계가 박근혜 대통령이 노동 관련 5법 등 관심법안 통과에 몰두하는 바람에 멈춰섰다. ‘경제비상사태’라며 국회의장에게 관심법안 직권상정을 압박하면서도 그 비상사태를 다스릴 경제정책방향 입안은 곧 물러날 부총리와 장관들에게 맡기는 모순이 연출됐다.

그만 둘 부총리와 장관들이 만든 경제정책방향을 새로 짜일 경제팀 등 내각이 제대로 이해하고 제때 실행할 수 있을까. 업무의 연속성은 유지될까.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중국의 경기침체,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 하락이라는 삼각파도가 몰아닥치는 연말연시에 대응을 기민하게 할 수 있는가.

내년 4월 총선에 나가려는 장관들이 주물럭거려서인지 경제정책방향 곳곳에서 수상한 냄새가 난다. 예산 1분기에 당겨쓰기, 국민연금 등 연기금과 공공자금 사회간접자본(SOC) 투입, 농업진흥지역 해제 등 선거 때 자주 등장했던 메뉴들-재정지원 확대와 토건사업, 규제완화로 지역경제 활성화-이 대거 동원됐다.

고착화하는 저성장을 탈피하기 위해 성장 잠재력을 높이고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등 긴 호흡의 구조개혁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소비를 활성화하겠다며 한국형 블랙프라이데이 등 대규모 할인행사와 중국 관광객 유치 등 올해 써먹은 대책만 재탕했지 가계소득 증대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저출산 탈출도 주거비와 보육비 부담 완화가 핵심인데 열거한 방안은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그러면서 엉뚱하게 경상성장률로 거시정책을 관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상성장률은 생산과 투자 등이 반영된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 종합물가지수인 GDP디플레이터를 더해 산출한다. 쉽게 말해 실질성장률에 물가상승률을 더한 것이다. 3% 실제 성장에 물가가 2% 오르면 경상성장률은 5%가 된다. 하지만 버는 게 같은데 물가가 올라 성장률이 높게 보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정부로선 실질성장률과 경상성장률을 함께 발표한다지만, 통상 높게 나오는 경상성장률을 앞세우고 싶으리라. 두 가지 지표가 나오면 국민이 헷갈릴 수 있다. 실질성장률이 낮을 경우 한국은행을 압박해 금리를 낮추거나 돈을 더 풀게 함으로써 정부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도 개입할 소지도 있다.

예고된 개각이 21일 이뤄졌지만 감동은 없다. 총선 출마를 위해 장관직을 그만둔 인물을 경제부총리로 불러들였다. 격랑을 헤쳐갈 의지도, 참신성도 보이지 않는다. 새 경제팀이 헌 경제팀이 짠 경제정책방향을 손볼 수 있을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문득 어릴 적 모래집 지으며 부르던 노래가 생각난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