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괴물 ❸

▲ 영화 ‘괴물’에서 현서는 살아오지 못했지만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온 가족이 필사적으로 ‘괴물’의 목구멍에서 빼낸 현서(고아성)는 결국 살아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 순간부터 박강두 가족의 현서 구출작전은 복수혈전으로 바뀐다. 한강둔치에서 삼촌(박해일)은 배낭 가득 준비한 화염병으로 괴물을 몰아세우고, 삼촌이 거리에서 의기투합한 신원 미상의 노숙인(윤제문)은 원효대교 위에서 괴물의 머리에 정확히 휘발유를 붓는다.

규정 시간 내에 화살을 발사하지 못하는 고질병을 지닌 양궁선수 고모(배두나)는 이번엔 정확한 순간에 휘발유를 뒤집어쓴 괴물의 눈에 10점 만점짜리 불화살을 날린다. 화염을 뒤집어쓴 채 한강으로 도주하려는 괴물을 막아선 박강두가 현서를 삼킨 괴물의 목구멍에 쇠파이프를 박아 넣으면서 복수혈전도 끝난다. 박강두는 괴물의 은신처에서 현서와 최후의 순간을 함께한 고아 꼬마 아이를 현서 대신 거두어 일상으로 돌아간다.

영화 ‘괴물’의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다. 일상으로 돌아간 눈 내리는 한강둔치는 평화스럽다. 박강두의 한강둔치 매점도 깨끗하게 재단장됐다. 정비된 건 매점만이 아니다. 박강두의 노랑염색 장발도 단정한 회사원 헤어스타일로 바뀌었다. 작은 창문 밖으로 함박눈이 포근하게 내린다. 박강두는 전기밥통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하얀 밥을 공기에 담아 새 가족이 된 꼬마 아이와 저녁상을 마주한다. 평화스럽고 따뜻하기 그지없다. 단정한 모습으로 새 가정을 꾸린 박강두는 다시 건실한 ‘소시민’ 가장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다. 박강두의 가족사진이 인쇄된 ‘바이러스 감염 의심자’ 수배전단이 비극의 흔적처럼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마침 TV 저녁뉴스는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괴물 바이러스’는 없는 것으로 최종 판명됐다는 미국의 발표를 보도한다. 그런데 ‘괴물’과 ‘있지도 않는 바이러스’의 직격탄을 맞았던 박강두는 뉴스에 관심조차 없이 식사에만 집중한다. 기억이 고통스러워 일부러 외면하는 게 아니라 아예 관심이 없다.

무심히 화면을 힐끗 쳐다본 박강두는 괴물소동 후속 뉴스가 남의 일인 듯 “재미없는데 채널 돌릴까?”라고 아이에게 묻는다. 아이는 한술 더 뜬다. “텔레비전 끄고 밥 먹는 데 집중하자”고 한다. 박강두는 식사를 멈추지 않은 채 다리를 뻗어 정교한 발가락놀림으로 TV를 끈다. 두 가족은 식사에 몰두한다.

바이러스가 어찌 됐든 당장 나와 내 가족이 먹고사는 데 지장 없으면 그만이다. 인터넷 용어를 빌려 표현하면 ‘안물안궁(안 물어보고 안 궁금하다)’한 ‘남의 일’일 뿐이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먹고사니즘’과 ‘귀차니즘’의 정수를 보여준다. 당장 먹고사는 데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비극의 기억조차 귀찮다.

▲ ▲ 누군가의 비극을 외면하면 그 비극은 되풀이되고, 비극의 주인공은 내가 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사실 영화 속에서 괴물출현의 경고는 여러 차례 있었다. 잠실대교 밑 낚시꾼들은 그들이 발견한 ‘새끼 괴물’이 신기할 뿐 그 발생에 대해서는 ‘안물안궁’이다. 괴물이 한강둔치를 처음 덮치던 날 한강 밤섬에서 변사체가 발견됐다는 뉴스가 나오지만, 박강두 가족은 신경 쓰지 않는다. 고모가 출전한 양궁대회 중계에 팔려 코 앞 밤섬에서 일어난 이웃의 참변은 ‘남의 일’인 것이다.

문제는 ‘먹고사니즘’에 빠져 남의 불행에 무관심하면 결국 그 불행이 나에게도 찾아온다는 거다. 독일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Martin Niemoller)는 “나치가 내 이웃들을 하나씩 잡아갈 때 나는 침묵했다. 나치가 나를 잡아갈 때 나를 위해 말해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는 시를 남겼다. 삼풍백화점, 메르스, 세월호, 각종 인권유린 등 누군가가 당한 비극을 외면하고 잊어버리면 그 비극은 되풀이된다. 그리고 비극의 주인공은 내가 될지 모른다.

‘먹고사니즘’에 빠져 사회에 무관심하고 모든 기억을 너무 쉽게 지워버리는 박강두가 우리 모두의 모습은 아닐까.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면서 뜬금없이 ‘풍각쟁이’ 멜로디가 흐른다. ‘먹고사니즘’에 충실한 우리시대에 대한 봉준호식 조롱일지 모른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opo.ac.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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