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호갱 논란

▲ 배기가스 조작 스캔들에도 폭스바겐코리아의 11월 판매량은 크게 늘었다.[사진=뉴시스]
2015년 9월. 폭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스캔들이 터졌다. 이 회사의 글로벌 CEO는 교체됐고 주가와 판매량은 곤두박질쳤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폭스바겐은 지난 11월 국내시장에서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대규모 할인행사를 시행한 덕이다. 우리나라 국민, 또 ‘호갱(호구+고객)’으로 전락한 걸까.

4517대. 폭스바겐코리아의 11월 판매실적이다. 수입차 월별 판매량 1위다. BMW와 아우디는 같은 기간 각각 4217대, 3796대를 파는 데 그쳤다. 폭스바겐코리아가 수입차 월별 판매량 1위에 오른 것은 올해 처음이자 사상 4번째다. 폭스바겐은 베스트셀링 모델에도 이름을 올렸다. ‘티구안 2.0 TDI 블루모션(1228대)’ ‘폭스바겐 제타 2.0 TDI 블루모션(1000대)’가 나란히 1~2위를 기록한 것이다.

BMW와 아우디의 그늘에 가려 ‘만년 3위’로 불리던 폭스바겐코리아. 이 회사의 판매량이 갑자기 ‘고공행진’을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대대적인 할인 공세에 있다. 폭스바겐코리아는 11월 한달간 모든 차종을 무이자 할부로 구매할 수 있는 특별 금융 프로모션을 실시했다. 현금 구매 고객에게도 동일한 프로모션을 진행, 최대 1772만원 혜택을 제공했다. 특히 인기 차종인 티구안ㆍ골프를 포함한 17개 주요 모델에는 60개월 무이자 할부를, 제타ㆍ투아렉ㆍ페이톤 등 3가지 차종에는 선납금 없는 60개월 무이자 할부 혜택을 줬다.

여기에 구입 후 1년 이내에 차대차 사고(고객 과실 50% 이하)가 발생해 권장 소비자가의 30% 넘는 수리비가 나올 경우엔 아예 신차로 바꿔줬다. 기존 고객이 추가로 차량을 구매할 때는 한대당 70만원을 지원했다. 이런 공격적인 프로모션은 국내 소비자가 폭스바겐 차에 지갑을 여는 계기가 됐다.

상황이 이쯤 되자, 우리나라의 소비 행태를 꼬집는 기사가 줄을 이었다. 도덕적 문제를 안고 있는 폭스바겐의 판매량이 글로벌 시장에선 추락하고 있어서다. 지난 9월, 글로벌 자동차 산업에는 ‘폭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스캔들’이라는 폭탄이 떨어졌다. 폭스바겐의 일부 모델에서 출시 전 테스트 때보다 각각 35배와 20배에 이르는 배출가스가 나왔기 때문이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폭스바겐에 차량 48만대의 리콜을 명령했다. 이 회사는 1100만대에 눈속임 장비가 설치됐음을 인정했다. 특히 이 스캔들은 기술 결함이 아닌 의도적 속임수에서 기인해 파장이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글로벌 판매량 줄어드는데…

그 결과, 폭스바겐의 글로벌 시장 판매량도 곤두박질쳤다. 2015년 1~11월 폭스바겐 누적 판매 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 감소한 909만5900대에 그쳤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의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15.3% 줄었고, 경기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브라질에선 51.0%나 급감했다. 글로벌 시장이 폭스바겐에 ‘불신의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는 얘기다.

세계 여론이 우리나라의 소비 행태를 꼬집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비자를 속이는 기만을 보인 기업의 제품인데, 싸다는 이유로 너도나도 지갑을 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가격만 낮추면 판매량을 크게 늘릴 수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비판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판매현장 일선에서는 폭스바겐 딜러들이 ‘지금이 구입 적기’라고 말을 한다더라. 소비자들도 폭스바겐 스캔들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실제로 조작사건 직후인 10월, 폭스바겐코리아의 판매량(947대)은 저조했다. 우리나라 소비자 역시 폭스바겐 브랜드에 저항심을 갖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문제는 이 저항심을 보란 듯이 무너뜨린 게 ‘할인 전략’이었다는 점이다. 권태환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간사는 “폭스바겐은 무너진 신뢰를 사과가 아닌 할인으로 채워 넣으면서 이익만을 편취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현재까지 폭스바겐코리아가 공식 사과를 한 것은 단 한번뿐이다. 폭스바겐코리아는 조작 사실 발표가 나온 지 20여일이 흐른 뒤인 10월 8일에야 공식 사과문을 냈다. 이날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토마스 쿨 폭스바겐코리아 사장은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아 국회의원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국내시장서만 역주행

이후 11월 환경부의 조사 결과가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다. 환경부는 당시 폭스바겐 디젤차 6개 차종 7대를 검사했는데, 그중 티구안 유로5 모델에서 배기가스 조작 사실을 확인했다. 환경부는 폭스바겐코리아에 총 14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이미 판매된 티구안 유로 5모델 12만5522대에 대한 리콜명령을 내렸다. 아직 판매되지 않은 차량은 판매 중지가 됐다.

그럼에도 폭스바겐코리아는 구체적인 리콜조치와 보상책 마련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기존에 구매한 소비자들도 분개하고 있다. 미국ㆍ캐나다 등지에서는 현금배상이 이뤄지고 있지만 국내에선 뚝뚝 떨어지는 중고차 값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필수 대림대(자동차학) 교수는 “자동차 기업의 최우선 가치는 단순 주행이 아닌 환경과 안전”이라며 “대규모 할인 행사로 실적을 만회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회복되지 않은 신뢰가 이 회사에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거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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