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땅’ 자영업계
기업의 경영난 탓에 거리로 내몰린 명퇴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그중 퇴직자가 가장 많이 선택하는 것은 창업이다. 문제는 창업이 쉬운 게 아니라는 점이다. 창업시장이 포화상태에 다다른 지 오래인 데다 내수침체로 ‘죽는 업체’가 속출하고 있어서다. 명퇴자가 기댈 수 있는 언덕은 사실상 없다.
외환위기가 한국경제를 강타한 1997년. 대기업 A사는 3700여 명의 임직원을 퇴출하는 서슬 퍼런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다행히 보상금은 넉넉했다. 길거리에 나앉은 임직원들이 받은 퇴직금은 1인당 1억7000만원. 목돈을 손에 쥔 퇴직자 가운데 72%는 창업을 택했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었다. 고용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탓에 재취업이 여의치 않았고 대기업에 다녔던 이들의 눈높이를 맞춰줄 직장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지금, 자영업계에 발을 들여놨던 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창업 전문가들은 대부분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 창업전문가는 “10명 중 1명만 살아남았을 것”이라며 “자영업 판에서 생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이 이런 비관론을 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자영업 시장의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기업 구조조정이 제법 정착됐고, 노동 유연성은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쉽게 말해 회사를 떠나는 직장인이 늘어나면서 자영업계도 커졌다는 얘기다. 문제는 자영업계의 성장이 독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에 상인 수가 많아지면 상점당 매출은 줄어들었다. 여기에 비슷비슷한 아이템을 가진 업체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면서 자영업계는 작은 파이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살벌한 곳으로 돌변했다. 이에 따라 자영업자의 몰락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올 10월 기준 자영업자 수는 559만3000명으로 2007년 612만4000명보다 53만여명 줄었다. 이는 장기화되고 있는 경기침체와 극심한 경쟁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손님이 줄어드니 빚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22일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올 6월 기준 자영업자대출 규모는 519조5000억원에 달했다. 창업이 더 이상 퇴직자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자영업자의 몰락이 한국경제에 커다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5인 미만 자영업체가 전체의 90%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사업을 접으면 마땅한 소득원을 찾기 힘든 게 자영업자의 현주소다. 더 심각한 부분은 자영업자가 무너지면 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중고 시달리는 자영업자들
자영업자의 비율은 2013년 기준 27.4%에 달한다. 이들이 지갑을 닫으면 소비가 얼마나 감소할지조차 예상하기 힘들다. 소비가 위축돼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한국경제는 또 다른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자영업계의 가장 큰 문제는 공급과잉에 있다. 국내 자영업자의 취업자 대비 비율(27.4%)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16%)보다 2배 이상 높다.
미국과 일본은 각각 6.6%, 11.5%에 불과하다. 자영업자 수가 많은 탓에 출혈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글로벌 불황 이후 대기업이 전통적인 자영업 시장에 침투하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다. 골목길 상권 진입을 호시탐탐 노리는 기업형 슈퍼(SSM) 사례는 대표적이다. 그뿐만 아니다. 자영업자가 각종 경제변수에 민감한 것도 몰락을 부추긴다. 대부분의 자영업자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사업자금으로 사용한다. 집값이 떨어지거나 금리가 치솟으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부동산 가격이 올라도 걱정이다. 비싼 임대료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영업자의 몰락을 어떻게 막느냐다. 역대 정부의 정책방향은 일관적이다. 창업자금지원 등 돈을 푸는 것이다. 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자영업자를 살리기 위한 대책의 골자는 저리 대출 또는 세금 감면이다. 그러나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창업전문가는 “돈으로 해결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며 “정부의 생계형 창업지원이 오히려 자영업의 공급 과잉을 부추기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왜곡된 자영업 구조를 바꾸는 게 급선무라고 주장한다. 도소매ㆍ음식숙박업 등 개인ㆍ유통 서비스산업에 몰려 있는 자영업자를 분산시켜야 답이 나온다는 것이다. 소자본 생계형 자영업을 금융ㆍ법률ㆍ관광ㆍ레저 등으로 넓혀 외식업과 도소매업에 몰려 있는 자영업자가 사업을 전환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는 얘기다.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해 자영업 위기를 막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몰락했거나 위기에 빠진 자영업자를 간병ㆍ보육ㆍ위생 등의 사회 서비스업으로 흡수하자는 것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가치 있는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자영업자 몰락을 막을 수 있는 주요 해법”이라며 “OECD 국가의 취업자 25%가 사회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9%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대기업 임원으로 퇴직한 사람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창출하면, 지역 기업으로선 경험을 전수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은 물론 퇴직자도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업가 정신 가져야
물론 자영업자의 변화도 필요하다. 한국의 경우 자영업자가 되는 이유는 대부분 비자발적 퇴직이다. 등 떠밀려 회사에서 나오고, 마땅히 갈 곳도 없으니 자영업계에 발을 들여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자영업계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자영업의 아이템 회전수는 2년이 채 안 된다. 그만큼 경쟁이 심하고, 상권변화도 빠르다.
하루 평균 13.5시간을 일할 만큼 일량도 만만치 않다. 이에 따라 자영업자에게도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창업 전문가는 “자영업도 궁극적으로 경영을 하는 것”이라며 “자영업자 스스로 장사꾼 마인드를 버리고 기업가 정신을 가질 때 위기를 탈출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강서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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