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면 끝, 무엇을 바꿔야 하나

▲ 우리나라에서는 창업에 실패하면 대부분 신용불량자가 되는 탓에 창업을 꿈꾸기 쉽지 않다.[사진=뉴시스]
한국 경제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일부에선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보다 안 좋은 상황’이라며 우려를 표한다. 무엇보다 경제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게 문제다. 우리 경제 내부에서 기인한 문제가 경기침체로 이어지고 있어서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개선해야 할까.

한국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성장 동력이 고갈되고 있다는 점이다. 수출과 제조업 가동률은 감소세다. 지난해 국내 300대 기업은 평균 102명을 감원, 총 3만600여명이 해고됐다. 둘째는 내수시장 침체다. 요인은 사회 양극화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소수의 부자와 다수의 서민층이 형성되면서 내수시장이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셋째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저출산ㆍ고령화다. 종합하면 한국경제가 구조적인 위기에 직면했다는 방증이다.

한국경제는 지금까지 섬유, 석유화학, 철강, 조선, 자동차, 반도체, 모바일에 이르기까지 대기업 중심의 모방경제 구조였다. 삼성은 소니, 애플을 모방했다. 현대는 도요타를 모방했고, 한국의 모든 산업들은 대부분 일본, 미국, 독일의 기업들을 모방해 경제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60년 동안 지속돼 온 모방경제는 한계에 도달했다. 모방을 더 잘하고 더 빨리 추격하는 중국이 나타나서다. 우리나라의 모든 수출산업들이 중국에 추월당하고 있다. 철강, 조선, 석유화학 등이 대표적이다. 남은 건 자동차, 반도체 정도다.

한국경제가 이제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런 능력은 단번에 생기지 않는다.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중요한 건 혁신은 작은 기업, 특히 창업 기업에서 잘 일어난다는 점이다. 대기업에서는 혁신이 일어나기 어렵다. 대기업은 조직이 비대하고 관료화돼 있어서다. 개인의 창의력과 상상력도 발현되기 어렵다. 더구나 대기업은 먹고살 수단이 있기 때문에 절박하지도 않다.

반면에 창업기업들은 창의력과 상상력이 최대의 무기이고, 그걸 극대화하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다. 혁신이 생명줄인 셈이다. 창업이 활성화되면 혁신역량이 만들어지고, 이 혁신역량을 대기업들이 성장 동력으로 키워나가는 경제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대기업이 부족한 혁신역량을 외부에서 사들인 후 기존의 유통망과 마케팅역량을 결합해 성장 동력으로 키워나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개방형 혁신(openinno va tion)’이다.

일례로 미국의 GE(General Electric CO.)는 에디슨이 120년 전에 전기를 팔려고 만든 회사다. 그런데 지금도 망하지 않고 자기분야에서 1등을 하고 있다. GE는 30년 전 가전분야 1위 기업이었다. 10년 뒤 소니가, 또다시 10년 뒤엔 삼성이 1위 자리를 빼앗았다. GE는 뺏기는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오히려 항공기엔진, 원자력발전소터빈, MRI, CT 장비 등을 만들면서 성장동력을 유지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GE가 지난 10년 동안 회사 500개를 사들였다는 것이다. 외부에서 끊임없이 혁신역량을 사들이고, 이를 성장 동력으로 키워온 셈이다.

국내 대기업이 GE와 같은 성장을 하려면 무수한 창업이 일어나야 한다. 문제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창업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대한민국의 가장 우수한 젊은이들이 고시나 대기업 입사 등 안전한 직업에만 매달리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의 탓만은 아니다. 젊은이들의 창업을 막는 요소들이 많아서다.

가장 큰 걸림돌은 잘못된 교육이다. 그동안 한국의 교육은 국영수를 달달 외워 성적으로 줄을 세우는 방식이었다. 남의 것을 베끼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창조사회에 걸맞은 창조교육이 필요하다.

미국이나 유럽은 유치원 때부터 창업교육, 기업가정신 교육을 한다. 이미 중학생이 되면 실제로 창업을 해보기도 한다. 반면에 우리 아이들은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창업교육은 받아본 적이 없다. 청년들의 꿈에 창업이 빠져 있는 건 당연하다. 부모들조차 자녀의 창업을 반대한다. 창업 교육이 안 돼 있으니 뒤늦게 창업을 해도 실패할 확률이 높다.

모방경제에서 개방형 혁신으로

국영수보다는 요리를 잘하고, 음악을 잘하고, 머리를 잘 만지고,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이런 재주는 사회에서 인정을 못 받는다. 독일은 유치원 2년과 초등학교 4년 동안 공부, 목공, 요리, 음악 등 모든 것을 다 시킨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부모와 학교 당국이 만나서 아이 재능에 맞춰 중학교를 결정한다.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키워내는 게 독일 교육인 셈이다.

또 다른 걸림돌은 한국은 혁신형 경제 생태계가 너무 부실하다는 거다. 특히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가 아니다. 창업은 대단히 위험한 도전이다. 때문에 한번에 성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미국의 실리콘밸리만 해도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많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창업에 도전해서 실패하면 신용불량자로 전락해 버린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창업을 기피하는 이유다.

미국에서는 창업을 할 때 엔젤투자자들에게 투자를 받는다. 30만명에 달하는 엔젤투자자들은 젊은 창업가의 열정, 기술 아이디어만 보고 조건 없이 수천, 수백억원씩 투자한다. 젊은이들을 멘토링, 컨설팅해 주고 사람을 소개해 준다. 창업을 해서 도덕적 해이 없이 최선을 다하고도 실패를 하면 다시 또 투자를 해준다.

현재 우리나라 엔젤투자자는 500~600명 정도에 불과하다. 투자에 대해 소득공제만 해줘도 더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1500만원까지 엔젤투자를 하면 100% 소득공제를 해준다는 제도도 만들어놨지만, 무용지물이다. 벤처기업 엔젤투자에만 해당돼서다. 스타트업이 벤처기업 인증을 받았을 리 없으니 제도는 ‘빛 좋은 개살구’가 된 거다.

또한 우리나라는 새로운 융합기술을 사업화하는 시스템이 유연하지 못하다.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창업을 하더라도 법과 제도가 기술을 받아주지 못해 산업화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기술이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산업화를 이뤄내기 쉽다. ‘안 되는 것’ 몇 가지만 명확하게 제시하고, 그 외에는 모두 가능하게 풀어주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 반대다. ‘가능한 것’만 명시해주고, 그 외에는 모두 ‘안 되는 것’들이다.

사회안전망 갖추고 해고해야

끝으로 사회안전망에 관한 문제다. 덴마크, 스웨덴, 독일의 경우 정부가 사회안전망을 가지고 있다. 덴마크는 해고의 자유가 있는 나라다. 여름에 아이스크림 장사를 하다가 겨울에 찐빵 사업을 하기 위해서 사람을 바꿔야 해서 여름에 채용한 사람들을 다 해고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한번 채용하면 해고하기 힘든 우리나라에 비해 덴마크는 노동시장 유연성이 높다.

그렇지만 덴마크 노동자들이 한국 노동자에 비해 힘든 삶을 사는 건 아니다. 해고된 사람들은 정부가 운영하는 고용안정센터에서 기존 월급의 90%를 주고 원하는 교육을 해주기 때문이다. 대신 1년 동안 재취업교육을 해서 2년차에도 취업이 안 되면 월급은 80%로 삭감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취업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덴마크가 기업경쟁력 1위의 국가가 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사회안전망 확충은 절실하다. 정부가 기업을 위해 노동시장 유연성만을 강조할 게 아니라 노동자들이 다른 시장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버팀목을 세워줘야 한다는 얘기다.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 회장 gobest21@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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