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괴물 ❹

▲ 영화 ‘괴물’에서 진정한 시민은 많지 않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 ‘괴물’에서 괴물에게 잡혀간 가족을 구출하고자 하는 박강두(송강호) 가족의 ‘사적 동기’와 정체불명의 괴물로부터 사회를 지키려는 국가의 ‘공적 동기’는 사사건건 충돌한다. 원래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은 필연적으로 부딪친다. 개인에게 사회 전체를 위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세금을 납부하길 기대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중요한 건 공동체의 구성원이 ‘공적 이익’을 위해 ‘사적 이익’을 어느 정도 양보할 때 사회는 비로소 안정적으로 발전한다는 거다. 그런 균형점을 알고 실천하는 이들을 ‘시민’이라 한다.

‘시민’과 ‘국민’은 비슷하지만 본질은 다르다. 국민은 단순한 국가의 통치대상(subjection)이다. 시민은 자신의 권리와 의무에 충실한 진정한 국가의 주권자다. 사회 안정과 발전을 위해 필요한 존재는 국민이 아니라 시민이다. 시민은 나와 내 가족만이 아니라 이웃과 공동체를 위한 의무에도 충실하다. 다시 말해 진정한 시민은 ‘착한 사마리안’이다.

영화에서 미군 책임자의 지시를 거부하지 못한 한국인 연구원들은 시민이라고 할 수 없다. 잠실대교 밑에서 낚시를 하다 다리가 셋 달린 변종 물고기를 발견하고도 지나쳐버리는 이들도 시민은 아니다. 만약 이들이 모두 시민의 의무에 충실했다면 괴물의 출현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합동분향소 관계기관 공무원의 지시에도 짝다리를 짚은 채 항의를 하면서 공적 협조를 거부하는 삼촌(박해일)도 모범시민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영화 속 모범시민은 누구였을까.

한강둔치를 덮친 괴물이 컨테이너 속에 피신한 ‘독안에 든 인간’들을 공격한다. 이 순간 한강에 놀러 나왔던 미군 도날드 하사와 박강두가 달려들어 위험을 무릅쓰고 아무 상관없는 이들을 구조한다. 괴물에게 팔을 물어뜯긴 도날드 하사는 결국 숨을 거둔다. 진정한 ‘세계시민’이다. 미군에 의한 한강 독극물 방류라는 설정이 야기할 ‘반미 정서’를 우려한 듯 뜬금없이 도날드 하사를 등장시킨 봉준호 감독의 배려는 꽤 성공적이다.

소싯적 단백질 공급이 부족해 비록 총기는 떨어질지 모르지만 박강두 역시 훌륭한 ‘시민’이다. 괴물이 날뛰는 한강둔치에서 딸 현서의 손을 놓치고 엉뚱한 아이의 손을 잡고 뛴 박강두는 ‘의도하지 않은 사마리안’쯤 되겠다. 영화 막바지에 또 한 명의 ‘착한 사마리안’이 등장한다. 삼촌이 다리 밑에서 우연히 만난 노숙인(윤제문)은 ‘달리 할 일도 없다’는 이유로 휘발유통을 들고 ‘공공의 적’ 괴물 퇴치에 따라 나선다. ‘국민의 4대 의무’ 이행여부는 매우 의심스러우나 훌륭한 ‘시민’은 분명하다. 결국 반미감정 희석을 위해 무리수를 둔 도날드 하사를 제외한다면 ‘착한 사마리안’이나 ‘모범시민’은 강두처럼 조금 총기가 떨어지거나 노숙인처럼 아무 할 일이 없는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불편한 진실이다.

▲ 시민이 없는 사회는 불안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근대 시민혁명의 발원지 프랑스도 요즘 ‘시민의식 결여’에 갈증을 느낀다. 이런 갈증은 소위 ‘착한 사마리안 법(Good Samaritan Law)’이라는 법률로 나타난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위험에 빠지지 않는 상황인데도 구조에 나서지 않은 자(Failure to Rescue)’에 대해서는 5년 이하의 구금과 50만 프랑의 벌금형에 처하는 거다. 

오늘도 엄동설한 도심 곳곳에서 ‘민중’ 혹은 ‘국민’의 이름으로 많은 사람이 분노하고 궐기한다. 국가도 덩달아 분노한다. 모두 개인과 집단의 이익과 권리에는 충실하다. 하지만 이웃과 공동체를 배려하는 ‘착한 사마리안’으로서의 의무에는 소홀하다. 국민은 많은데 시민은 많지 않은 거다. 또 이웃은 많으나 ‘착한 사마리안’은 없다.

‘착한 사마리안’과 같은 진정한 시민이 사라지고 없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영화의 마지막을 보면 알 수 있다. 눈 내리는 밤 인적 없는 한강둔치, 절해고도와 같은 외딴 매점에서 박강두는 서부개척 시대처럼 문밖의 작은 소리에도 긴장하면서 조심조심 엽총을 쥐고 창밖을 살핀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opo.ac.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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