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따뜻한 경제학

▲ ‘복지=공짜’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사실 공짜복지는 존재하지 않는다.[사진=뉴시스]
의료든 급식이든 복지에 쓰이는 비용은 사실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공짜는 없다. 단지 개인이 내느냐 한꺼번에 모은 돈으로 내느냐의 차이다. “복지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밥 먹을 돈, 병원 갈 돈을 함께 부담해서 필요한 사람들이 쓸 수 있도록 하는 게 복지다.

영국 국민의 치료비용은 대부분 정부가 부담한다. 성인은 일정액의 생활비도 지원받는다. 치료에만 전념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런 무상의료는 무상복지의 하나다. 이탈리아ㆍ스페인ㆍ스웨덴 등 북유럽의 국가는 물론 호주ㆍ뉴질랜드에서도 실시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등에선 초등학교부터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전면 무상교육을 실시한다. 정말 부러운 일이다.

하지만 무상의료는 종종 ‘공짜복지’로 인식돼 재정 낭비와 의료비용의 급격한 증가를 초래할 것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과연 그럴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한 국가별 국내총생산(GDP) 대비 보건의료비 총액(2013년 기준)을 참조해보면 이런 비판은 타당하지 않다. 개인이 의료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을 채택한 미국은 GDP 대비 의료비는 16.4%였다. 반면 무상의료 국가인 스웨덴은 11.0%, 캐나다는 10.2%였다. 고령화가 심한 일본조차 10.2%에 불과했다. ‘무상의료의 역설’이다.

이런 결과가 나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국가가 과도한 의료비 지출요인을 사전에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시스템 전반을 통제ㆍ조율하고, 의료자원의 편중에 따른 재정 낭비를 막는 식으로 말이다. 국가의 조세재정으로 운영되는 무상의료를 통해 의료 사각지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선천성 질환자나 만성 또는 중대 질병환자의 보험가입이 거부되거나, 과도한 본인부담으로 의료서비스 이용에 제약을 받는 것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영 의료보험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를 국가가 해결 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무상의료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가 유상의료제도를 택한 국가보다 훨씬 효율적인 의료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주장을 펼치면 으레 나오는 반론이 있다. “유럽국가는 국민소득이 3만~4만 달러를 훨씬 넘어선 부자나라이기 때문에 포용적인 무상의료를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거다. 무상의료는 개발도상국의 지위를 갓 벗어난 우리나라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논리도 뒤따른다.

 
하지만 이는 오해에서 비롯된 편견이다. 무상의료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일단 ‘무상의료=공짜의료’라는 편견부터 없애야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병이 나면 의사의 진료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비용이 발생하는데, 이를 어떻게 지불하느냐에 따라 유상의료와 무상의료로 나뉜다. 다시 말해 개인이 부담하느냐 세금이나 건강보험료로 충당하느냐의 문제만 남을 뿐 어느 쪽이든 유상의료라는 얘기다. 공짜로 제공되는 무상의료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무상의료뿐만 아니라 무상교육ㆍ무상급식ㆍ무상보육 등 무상복지 시리즈는 공짜복지가 아니라 기존과는 다른 차원에서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일 뿐이다. 우리가 유상 또는 무상이라는 대립적 고정관념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상의료의 역설’에서 본 것처럼 국가의 경제수준을 감안한 선별적 복지정책은 복지국가의 기능과 역량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재정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 반대로 사회문제와 관련한 영역의 많은 부분을 국가의 관할과 책임으로 편입해 운영하는 보편적 복지정책은 국민경제 전체적 차원에서 오히려 비용을 절감할 수도 있다.  
이정우 인제대 사회복지학 교수 socwjwl@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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