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효과 기대심리

▲ 구름이 짙게 드리운 국회의사당. 우리나라는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할 지경에 이르렀다.[사진=뉴시스]
통상 신년 초 주가는 상승 무드를 탄다. 전년 말 국회에서 새로 제정되거나 바뀐 법이 시행되고 새로운 정부 정책과 제도가 시장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시무식과 함께 새로운 경영 구상을 다짐에 따라 주식시장이 호응한다. 개인들이 운동과 다이어트, 자기 개발, 취업, 결혼, 승진 등 꿈에 부푼 계획을 실행하기 시작하면서 소비시장도 움직인다. 사회 전반에 걸쳐 기대심리를 키우는 이른바 ‘새해(1월) 효과’다.

헌데 2016년은 영 새해 같지 않다. 각종 현안과 문제들이 해를 넘기며 주변을 억눌러 새해효과를 잠식해서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에 따른 후폭풍,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을 둘러싼 논란, 메르스 사태에 책임지고 물러난 장관의 새로운 공직 임명, 누리과정 예산 지원 중단 등 정치 현안들이 우리 사회를 휘감고 있다. 그러니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정당 대표들이 잘 해보자는 신년사를 앞다퉈 내놓은들 무슨 기대나 감동을 주겠는가.

뭘 그리 많은 것을 정치에 기대하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정치야 어쨌든 경제는 돌아가면 되지 않느냐며. 하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의 수많은 경제현상은 정치가 중심이 된 사회관계 속에서 움직이고 변화하기 때문이다.

정치가 건강하게 기능하지 않으면 당장 그 내용의 타당성과 책임 소재를 떠나 새로운 법 제정이나 개정 자체가 늦어진다. 박 대통령이 애달파하며 국회 처리를 압박하는 노동 관련 5법 등 관심법안의 운명을 보라. 또한 정부 정책과 새로운 제도가 제때 집행되지 못하거나 잘못된 정부 정책에 대한 국회의 감시와 견제도 어긋난다.

경제는 독야청청 홀로 굴러갈 수 없다. 정치가 법과 제도로 뒷받침해야 순항한다.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저해하는 사회 갈등과 불안을 해소할 책임도 정치에 있다. 하지만 우리 정치 현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내 몫과 밥그릇 챙기기 바쁘다. 무슨 문제가 터져도 서로 네 탓만 있지 내 탓이 없으니 대책은 하세월이다. 이런 현상은 선거철에 더 심해지는데 4ㆍ13 총선이 100일 남았다. ‘1월 효과’에 이어 상장기업 주주총회로 연결되는 1분기 내내 얼마나 많은 경제현상이 표를 따지는 정치 노림수로 변질될까.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목에는 벌써 정당과 후보자들의 현수막이 요란하다.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등 몇몇 제도 변경은 여야 정당이 서로 자기 업적이라고 자랑해 유권자들을 헷갈리게 한다. 정치가 뭐 별 건가. 국민들로 하여금 걱정 없이 현업에 종사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치가 민생을 염려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국무회의 석상에서 “국민들을 위해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논란이 일자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한결같은 이’라는 정의까지 내려주었다. 그러나 ‘진실한 사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선거에 출마할 때 행태와 선거에서 당선된 뒤 행태가 같은 ‘진실한 정치’다.

아직 늦지 않았다. ‘정치의 새해효과’를 낼 수 있는 길은 남아 있다. 정치권은 아집을 버리고 국민과 더 소통하고 약자를 배려함으로써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게 하라. 대통령부터 신년 기자회견을 앞당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한 국민의 양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과거처럼 일방 담화에 그치지 말고 격의 없는 솔직한 대화로 임해야 한다. 여론이 악화하자 청와대 홍보수석 명의 성명을 통해 유언비어나 신중하지 않은 언론 보도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무책임하다.

여야 정당은 선거구 획정과 공천권을 둘러싼 치졸한 집안 다툼을 당장 그만두라. 선거 때에만 민생을 외치고 당선되고 나선 몰라라 하는 ‘국민 배신의 정치’를 언제까지 계속할 텐가.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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