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신용등급 상향조정 자축할 땐가

▲ 우리나라가 최고 수준의 신용등급을 부여받았지만 국내 경기 비관론은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우리나라가 국제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역대 최고 수준의 신용등급을 획득했다. 정부는 “우리의 구조조정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라고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기업의 신용등급은 줄줄이 하향조정되고 있어서다. 국가신용등급 상향을 두고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2015년 12월 19일.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역대 최고 수준인 Aa2로 상향 조정했다. Aa2 등급은 21개 등급 중 세번째로 높은 등급이다. 이번 등급 상향으로 우리나라는 한ㆍ중ㆍ일 3개국 중에서도 가장 높은 국가신용등급을 보유하게 됐다. 무디스로부터 Aa2 이상의 등급을 부여받은 국가는 G20 중에서도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ㆍ독일 등 7개국뿐이다.

Aa2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피치가 우리나라에 부여한 신용등급(AA-ㆍ상위 네번째 등급)보다도 한 단계 높다. 2002년, 2012년 무디스가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했을 때 S&P와 피치는 같은 스탠스를 취했다. S&P, 피치의 추가 신용등급 상향 조정이 기대되는 이유다.

이번 신용등급 조정은 국제금융시장의 상황을 감안할 때 더 빛난다. 세계시장이 미국의 금리 인상, 중국 경기 둔화, 저유가 기조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표적인 신흥국인 브라질은 2016년 신용등급 하락이 예고된 상황이다.

정부가 국가 신용등급 상향 소식을 반가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이번 (무디스의) 결정은 우리 정부의 구조조정 성과를 높게 평가받은 것”이라며 “대내외 불안 요인을 방어해주는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자평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박근혜 정부 3년간의 경제성과를 무디스의 총체적으로 평가한 결과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한국 정부의 경제 정책이 긍정적인 성과를 내고 있고, 앞으로도 그 성과를 이어갈 것이라는 평가와 확신에 기초한 것”이라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글로벌 교역부진, 메르스 충격에도 경기 회복세를 지속하고 구조개혁을 가속화해 건국 이래 최고 수준의 신용등급을 달성했다”고 자축했다. 정부가 2015년 한국 경제가 달성한 주요 성과로 국가 신용등급 향상을 꼽은 것이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다르다. 국가신용등급이 최고 수준으로 상향 조정된 것을 마냥 좋아해선 안 된다는 주장도 많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무디스의 국가신용등급은 한 나라의 경제성과를 평가하는 등급이 아니다”며 “그저 ‘이 나라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이 얼마나 믿을 만한가’를 말해주는 지수”라며 선을 그었다.

신용등급 상향 “자축할 때 아니다”

시장이 비관론을 견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디스는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조정한 이유로 ‘재정수지가 2010년 이후 흑자인 점’ ‘국가 채무가 국가의 수입의 30% 수준으로, 다른 국가보다 양호한 점’ 등을 꼽았다. 우리나라가 양호한 경제지표를 보유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2015년 10월 경상수지 흑자는 89억6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2012년 3월부터 44개월째 이어진 역대 최장 흑자 기록이다.

하지만 이 기록에는 허점이 있다. 2015년 10월 수출이 474억4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7.0% 줄어든 반면 수입은 367억 달러로 같은 기간 14.7% 감소했다. 수출과 수입이 함께 감소했지만 수입이 훨씬 많이 줄어든 이른바 ‘불황형 흑자’가 한국경제의 현주소다. 쉽게 말해 경상수지 흑자로 기업의 상황이 개선된 건 아니라는 거다. 최근 우리나라 기업의 신용등급이 연쇄 하락하고 있는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2015년 한국신용평가가 기업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건수는 총 55건(12월 30일 기준). 외환위기가 터진 직후인 1998년(61건) 이래 최대치다. 2014년 41건을 훌쩍 넘어섰다. 신용평사가의 주 수익원은 회사채를 발행하는 기업이 내는 수수료다. 신용평가사가 기업의 신용상태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의 대규모 등급 조정은 위험한 시그널이다. 더 냉정하게 평가하면 등급 조정 수가 늘어날 게 불보듯 뻔해서다.

더 큰 문제는 기업신용등급의 하향조정이 업종을 가리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조兆 단위의 적자를 기록한 조선과 건설업종을 물론 그간 등급하향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업종까지 내려갔다. 내수업종의 대표 주자인 신세계가 그렇다. 이 기업의 신용등급은 2015년 5월 AA+에서 AA로 내려갔다. 11월에는 하이트진로 신용등급을 기존 A+에서 A로 내려갔다. 두 회사의 등급 하향 조정은 등급 평가를 받기 시작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신용등급 하락의 무풍지대로 손꼽히던 은행권도 철퇴를 맞았다. 나이스신용평가는 2015년 12월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신용등급을 기존 AAA에서 AA+로 한단계 내렸다. 시중은행의 신용등급이 강등된 것은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낙엽처럼 떨어지는 기업 신용등급에 회사채 시장도 얼어붙었다. 최근에는 우량 등급에서도 미매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을 정도다.

기업 신용등급 무더기 하락

송기종 나이스신평 평가연구소 국제사업실장은 “가계부채 증가와 부동산 시장의 성장으로 만든 2015년의 우리나라 경제가 지속성장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 “주력산업의 경쟁력 저하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 국가신용등급 상향조정으로 얻는 이익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국가신용등급 상향조정으로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위기인자가 수두룩해서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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