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상승기 가계부채 빨간불

초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가 9년 반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했기 때문이다. 국내 시중금리도 덩달아 꿈틀댄다. 부채가 많은 가계에 경고등이 울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금은 그대로인데, 갚아야 할 이자가 늘어날 게 분명해서다. 더 큰 문제는 가계의 ‘부채 출구 전략’이 허술하다는 점이다.

▲ 가계부채 문제를 우려하는 경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직장인 김민섭(가명ㆍ43)씨는 요즘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빚에 치여 사는 일상이 너무 힘겹기 때문이다. 김씨의 눈에는 여기도 빚, 저기도 빚이다. 출근 수단은 빚 내서 마련한 준중형차다. 한달에 30만원씩 들어가는 기름값은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있다. 외동딸 침대와 책상, 최근 고장 나 새로 바꾼 냉장고도 할부다. 매달 갚아야 할 카드대금만 70만원이 넘는다. 빚의 향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빠듯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개설한 신용한도대출(마이너스통장)은 한도를 채우다 못해 터져나갈 지경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주택담보대출까지 갚고 있다. 전세대란에 지친 K씨는 은행의 도움을 받아 내집 마련에 성공했다. 전셋값이 매매가격의 70% 수준을 웃돌자 불안한 전세보다 무리를 해서라도 내집을 장만하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K씨의 내집 마련에 한몫했다. 정부가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위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5년 7월까지 4차례 금리를 낮춰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인 1.5%까지 끌어 내렸다. 낮은 금리로 쉽게 돈을 빌릴 수 있었던 K씨는 2014년 말 중소형 아파트를 구입했다. 내집 마련을 한 건 그나마 위안거리지만 매달 수십만원씩, 그것도 20년 동안 상환할 생각을 하면 막막하기만 하다.

출근길 라디오에선 오늘도 ‘미국 기준금리 인상의 영향으로 시중금리가 들썩이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정부는 당분간 금리인상에 나서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초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는 건 시간문제다. 그렇게 되면 ‘빚의 경제’는 부메랑을 맞게 된다. 꽉 막힌 도로에서 핸들을 잡고 있는 K씨는 온통 빚 생각뿐이다.

빚지고 사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2015년 3분기 현재 가계부채는 1166조원에 육박한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인 2007년만 660조원이었던 가계부채가 8년 만에 눈덩이처럼 불어난 셈이다. 가구당 가계부채도 크게 증가했다. 통계청한국은행금융감독원이 공동으로 조사해 발표한 ‘2015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빚을 지고 있는 가구는 전체가구의 64.3%에 달했다. 3가구 중 2가구가이 빚을 지고 있다는 얘기다.

가구당 평균 부채액은 6118만원으로 2014년 6051만원보다 2.2% 증가했다. 연령대별로는 50대가 7866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직업별로는 자영업자 가구의 부채가 9392만원에 달했다. 원금도 문제지만 당장 시급한 것은 이자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계속된 초저금리 통화정책 덕분에 이자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했지만 이젠 상황이 다르다.

끝없는 빚의 향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014년 ‘양적완화’를 축소한 데 이어 2015년 12월 9년여 만에 처음으로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08년 금융위기 이후 7년 동안 유지했던 ‘제로 금리’ 시대가 마침내 막을 내렸다. 문제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우리나라의 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갚아야 할 빚이 산더미인데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폭탄까지 발생하면 가뜩이나 힘든 서민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는 게 불을 보듯 뻔하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자를 부담할 능력도 충분하지 않다. 가계의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상환비율(DSR)이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어서다. 실제로 2015년 DSR은 24.2%로 2014년 대비 2.5% 상승했다. DSR은 가계부채 위험성을 나타내는 척도로 2014년 처음으로 20%를 넘어선 이후 2015년에는 25%까지 상승했다. 쉽게 말해 가계가 100만원을 벌어 24만2000원을 빚을 갚는 데 쓰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생계부담으로 직결됐다. 빚이 있는 가구 중 ‘윈리금 상환이 부담스럽다’고 응답한 가구가 70.1%에 달했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는 2015년 7월 22일 ‘가계부채 종합 관리방안’을 발표했다.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고 소득 범위 내에서 대출이 이뤄지도록 유도한다는 것이 주요내용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본질적인 대책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가계소득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은 마련하지 않고 은행의 문턱만 높였다는 지적이 일고 있어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3분기 가계 동향’ 자료에 따르면 2015년 3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41만6000원으로 2014년 같은 기간보다 0.7%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2009년 3분기에 기록한 -0.8% 이후 최저치다. 게다가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실질소득은 전혀 오르지 않았다. 빚은 가파른 속도로 늘어가는데 소득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1998년 외환위기 당시 21.2%까지 치솟았던 가계저축률은 2014년 현재 6.1%로 떨어졌다. 2012년(3.4%), 2013년(4.9%)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치인 5.3%를 밑돌았던 저축률이 2014년 크게 증가했지만 낙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소득이 제자리인데 저축률이 증가한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가계가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저금리 기조에서도 가계저축이 늘어난 것은 저조한 고용과 임금 상승률 등을 우려한 불안심리 때문일 것”이라며 “빚을 갚고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소비를 줄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시장은 가계의 소비 위축을 우려하고 있다. 적자 재정, 가계 붕괴를 모면하기 위해 가장 쉽게 줄일 수 있는 것은 소비성 지출 항목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금리인상에 따른 원리금 상환부담이 높아지면 민간소비는 더욱 움츠러들 공산이 크다. 금리 인상으로 민간소비가 위축되면 불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대한민국호號로선 치명상을 입는다.

빚은 느는데 소득은 제자리

한국경제가 글로벌 경기침체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정부의 확정 재정정책 덕이었다. 정부가 기준금리는 낮추는 등 막대한 돈을 풀었기 때문이란 얘기다. 하지만 정부는 언젠가 풀린 돈을 회수해야 한다. 게다가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한 이상 더 이상 금리를 내리는 것도 어렵다. 더 풀 돈도 사실 많지 않다. 정부가 빠진 빈자리를 민간이 메워야 하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시장금리의 상승으로 늘어날 수 있는 가계 원리금과 이자부담액을 눈여겨보고 미리 대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계부채가 보내는 경고 시그널을 허투루 읽었다간 한국경제가 또 다른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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