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도 구조조정의 그림자

▲ 정부가 수익성 악화 및 성장이 정체된 업종을 구조조정하기로 했다.[사진=뉴시스]
해운업체는 부채비율을 400% 이하로 낮춰야 ‘선박펀드’를 이용할 수 있다. 유화ㆍ철강업계는 몸집을 줄이라는 경고를 받았다. 경쟁력 없는 조선업체는 퇴출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침체업종’에 메스를 대기로 했다. 정부 주도 구조조정인데, 과연 효율적일까.

정부가 우리나라 취약 업종의 구조조정에 속도를 낸다. 대상은 조선ㆍ해운ㆍ철강ㆍ석유화학ㆍ건설 등 경기에 민감한 5대 업종이다. 이들 업종은 한때 한국경제의 성장 엔진이었다. 2000년대 들어 중국의 빠른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이 업종에 속한 기업들은 많은 이익을 냈다. 중국과 미국, 유럽 등을 오가는 화물의 운송량이 크게 늘면서 해운사들은 매년 안정적인 실적 개선 흐름을 이어갔고, 조선업종의 현대중공업은 세계 1위의 조선사로 올라섰을 정도다. 2000년대 중반까지 주택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건설사들은 분양 사업마다 대박을 터뜨렸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꺾였던 글로벌 경기가 지금껏 회복되지 못하면서 이들의 성장 엔진도 멈췄다. 이제는 ‘좀비기업’이란 타이틀이 달린 채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다. 정부가 개별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만으로는 정상화가 어렵다고 보는 이유다. 정부는 제시한 해결책을 살펴보자.

■ 해운업계 부채비율 400% 관건 = 한진해운ㆍ현대상선으로 대표되는 해운업계의 상황은 심각하다. 양대 선사는 자구계획안을 완료했음에도 나아지지 않는 업황으로 재무구조가 엉망이 됐다. 먼저 정부는 이들을 위해 민관합동으로 선박펀드를 만들어 나용선(BBC) 방식으로 신규 선박 건조를 지원할 방침이다.

BBC 방식이란 해운사가 선박을 빌려 맡아서 운용하다 계약 기간이 끝나고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선박금융의 한 방식이다. 해운사가 투자자에게 돈을 빌려 배를 건조한 뒤 소유권도 갖는 방식이 일반적이지만, 이번에 정부가 해운산업 지원을 위해 선박 감가상각 등 부담을 떠안은 것이다. 국내 등록된 선사라면 지원신청을 할 수 있다. 정부는 12억 달러 규모로 조성을 추진하되, 수요를 봐가며 규모 확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문제는 부채비율이 400% 이하여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는 점이다. 2015년 3분기 말 현재 한진해운의 부채비율은 687%, 현대상선은 980%에 달한다. 증자와 같은 대폭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신청조차 할 수 없는 셈이다. 이미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한 두 기업이 부채비율 400%를 맞출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울러 정부는 운임공표제 적용 대상을 전 노선과 전 항만으로 확대한다. 운임협상 범위도 20%에서 10%로 줄여 시장 질서를 확립하기로 했다. 대형 선사의 운임 덤핑 행위도 제재하기로 했다. 정부 지침을 불이행하거나 차등 적용하는 해운선사에는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등록 취소, 기항 금지 등의 제재를 가한다.

■ 조선업종 M&A 단행 = 2015년은 조선업계에 최악의 해였다. 조선소 사망사고와 조兆 단위의 실적쇼크, 노사갈등까지 겹겹이 악재가 쌓였다. 선행산업인 해운업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전망도 밝지 않다.

정부는 조선업종 구조조정에 개별적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먼저 정상화가 어렵다고 판단되는 조선업체끼리 인수ㆍ합병(M&A)을 시도한 뒤, 실패하면 청산하는 방식이다. 조선업 공급 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조선사의 사업 규모를 대폭 축소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또한 채권단 주도로 진행 중인 구조조정을 원안대로 차질 없이 진행한다는 원칙도 세웠다. 현재 대우조선해양이 4조2000억원 규모의 유동성 지원을 통한 정상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STX조선은 규모 감축을 통해 탱커 및 LNGB선에 특화한 중소 조선사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 건설업종 부실징후 판단 = 현재 국내 건설업계는 해외 수주 사업 부진과 주택 공급 과잉 리스크를 동시에 안고 있다. 정부는 우선 2016년부터 건설사 수익성 악화의 주된 이유인 ‘최저가낙찰제’를 폐지하기로 했다. 최저가낙찰제는 관급공사 수주 시 과도한 저가경쟁을 유발해 건설업계의 수익성과 공사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대신 입찰제도를 종합심사낙찰제로 개선하고 입찰가격뿐만 아니라 공사수행능력과 사회적 책임도를 종합적으로 심사한다.

부실업체 실태조사 및 ‘부실업체 조기경보시스템’도 도입한다. 등록증을 불법 대여하거나 자본금 등록기준이 미달되는 부실업체를 적발하고 시장에서 퇴출시킬 계획이다. 저가수주 방지를 위해 정보센터 설립 등 관련 대책도 추진된다.

또한 엄정한 신용위험평가가 시행된다. 부실징후 기업을 선정하고, 정상화 가능성에 따라 워크아웃, 법정관리 등을 추진한다. 정부는 기업 현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필요하면 수시로 신용위험평가를 시행해 적극적으로 구조조정을 유도할 방침이다.

■ 유화업종 다운사이징 속도 = 석유화학업계는 몸집을 줄이기로 했다. 심각한 공급과잉 현상 때문이다. 중국이 합섬업체를 적극 육성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공급과잉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주요 품목 중 특히 합섬원료 분야가 공급과잉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경험하고 있다. 합섬원료 중 테레프탈산(TPA)은 중국의 대규모 증설로 인한 공급 확대와 수요산업 부진 지속 등으로 사업여건이 악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세계적으로 경제성장이 둔화하면서 수요가 부진해 수익성 악화는 지속할 전망이다. 2012~2015년 국내 TPA 생산업체들의 누적적자는 총 845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유화업계의 자율적인 감산 또는 설비폐쇄ㆍ전환을 지원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생산설비를 약 30%(약 150만t) 감축해야만 수익성 회복 등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는 자율적으로 마련 중인 생산설비 조정방안을 조만간 확정해 TPA 분야 구조조정에 착수할 방침이다.

■ 철강업종 감산 또 감산 = 철강업계의 구조조정 키워드도 ‘감산’이다. 정부는 철강업계의 합금철(망간합금철) 생산량을 40%(39만t) 줄일 방침이다. 합금철은 철과 망간을 섞은 합금으로 제강공정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거나 철의 강도를 조절할 때 재료로 사용된다. 합금철 분야는 2008년 생산설비의 급격한 확대(2007년 38만t→2015년 89만t)로 공급과잉 상태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에는 합금철 판매가가 급락하면서 수익성까지 악화됐다. 2013년 207억원 흑자를 내다가 지난해 47억원 적자로 돌아선 것이다. 2015년 3분기까지 645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영업손실 규모는 계속 확대되고 있다. 정부는 업계 스스로 89만t 가운데 39만t 생산설비를 조정하는 것을 지원하기로 했다. 업계는 현재 11만t 설비 폐쇄를 단행한 가운데 지난 9월부터 추가 설비 감축 방안을 논의 중이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을 두고 업계는 피상적인 대책이라며 아쉬운 목소리를 냈다. 이미 시행됐거나 알려진 내용을 되풀이한 방안이라는 주장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선박펀드 지원 대상에 부채비율이 높은 대형 선사들은 배제된다는 점에서 해운업계 현실을 외면한 지원 방안”이라며 “조선업계도 앞으로 발주량이 줄어들 게 뻔한데 조금씩 다운사이징하는 수준의 구조조정으로 과연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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