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수의 Clean Car talk

▲ 운전면허 시험이 간소화되면서 자가 정비에 미흡한 운전자가 늘어나고 있다.[사진=뉴시스]
베스트 드라이버를 자부하는 이들에게 묻겠다. 당신은 엔진 보닛을 열 줄 아는가. 펑크난 타이어를 교체할 수는 있는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어찌하는가. 혹시 보험사 비상연락망에 기대지는 않는가. 좋은 운전자는 운전만 잘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자동차를 잘 알아야 베스트 드라이버다. 위기 시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어서다.

필자가 처음 자동차 산업에 입문했을 때, 자동차 부품의 수는 1만개 정도였다. 지금 나오는 차들을 보면 그 수가 3만개를 훌쩍 넘는다. 이제 자동차는 단순한 기계부품이 아니다. 첨단 과학의 집합체가 됐다. 엔진룸만 봐도 그렇다. 1975년에 출시된 현대차 포니의 엔진룸은 땅이 반은 보일 정도로 빈 공간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현대차에서 나오는 모델 엔진룸에 공백을 찾기 어렵다.

자동차 속은 왜 이렇게 복잡해졌을까. 최근 업계가 ‘더욱 안전하고 편안하면서도 친환경성과 경제성을 두루 갖추는 자동차’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사고 발생을 예방하기 위한 첨단 운전자보조시스템(AD AS), 차량 자세제어장치(VDC), 사고 발생 순간을 정확히 감지해 운전자를 보호하기 위한 에어백은 더 이상 옵션이 아니다. 이를 제어하기 위한 장치만 해도 자동차 대당 50~70개에 달한다.

하지만 자동차의 첨단화로 불편해진 분야도 있다. 정비다. 자동차가 고장 나면 운전자는 이제 원인을 찾기 어려워졌다. 보닛을 열고 ‘맥가이버’식의 간단한 응급조치를 하는 일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선진국은 큰 걱정을 하지 않는 듯하다. 자가 정비가 자동차 문화로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인들은 집 뒷마당에서 차를 고치는 일이 자연스럽다. 그들은 차를 고치는 방법을 아버지 또는 친구들에게 자연스럽게 배운다. 차량을 직접 만지고 수리하는 버릇이 몸에 배어 있다. 단순히 운전만 하는 게 아니라 차량의 시스템을 이해하려는 것이다.

우리나라 운전자는 그렇지 않다. 2011년 6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로 일반 운전면허 취득절차가 간소화됐다.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결과,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게 과거에 비해 쉬워졌다. 우스갯소리로 하루 만에 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래서 최근 초보운전자 중에는 전진만 할 줄 아는 이도 있다. 엔진 보닛을 못 열고, 타이어 펑크 수리는 꿈도 못 꾸는 운전자는 당연히 많다. 운행 중 차량에 문제가 발생해도 보험사 비상연락망을 통해 연락할 뿐이다. 자동차 정비는 정비센터에 맡기는 일로만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에 불이 나도 사진을 찍거나 멍하니 구경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자동차 화재가 발생할 경우 너도나도 소화기 하나 가지고 와서 함께 불을 끄는 선진국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르다. 소화기가 차량 내에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유리를 깨는 망치, 안전벨트를 자르기 위한 가위 등 비상용품이 준비됐을 리도 없다. 사고 후 대처하는 방법도 모른다. 자동차 사고가 2차, 3차로 이어지면서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이제는 변해야 한다. 간단한 자동차 상식만 배워도 소모품을 교체할 수 있고, 타이어 공기압 체크, 워셔액ㆍ엔진오일ㆍ냉각수 보충 정도는 할 수 있다. 교환주기가 짧거나 교환을 앞둔 소모품도 준비할 수 있다. 이런 게 익숙해지면 엔진ㆍ변속기ㆍ전자부품을 제외한 모든 부품을 직접 교체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차를 이해하면 안전하게 오래도록 자동차를 몰 수 있다. 2015년이 친환경자동차가 시동을 건 첫 해였다면 2016년은 자동차 상식 교육의 원년으로 삼으면 어떨까.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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