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리스크

“낡은 진보와 수구보수 대신 ‘합리적 개혁노선’을 정치의 중심으로 세우겠다.” 지난 12월 27일 안철수(무소속) 의원이 신당 창당을 천명하면서 내건 슬로건이다. ‘보수 같지 않은 보수’와 ‘전혀 새롭지 않은 진보’에 신물 난 국민으로선 반갑다. 하지만 그의 포부가 현실화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 안철수 의원이 ‘새로운 정치’를 내걸고 신당 창당에 나섰다.[사진=뉴시스]
2015년 12월 13일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안철수(무소속) 의원이 신당 창당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흥미로운 건 그의 행보와 지지율(리얼미터 대선후보 지지율 기준)이 정비례한다는 점이다. 최근 3개월 동안 안 의원의 지지율은 평균 7%대에 머물렀다. 그러다 탈당을 앞둔 12월 2주차에 10.1%, 신당의 창당 목표를 밝힌 기자회견이 열린 3주차에는 13.5%였다. 정책 기조를 밝힌 12월 4주차에는 16.5%까지 뛰어올랐다. 변화를 강조하는 안 의원에게 거는 국민의 기대감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그런데 기대할 만한 걸까. 안 의원의 신당 창당 선언은 2013년에도 있었다. 2014년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과의 합당으로 공식 출범을 하지 못했다. 현재의 신당 창당 선언과 당시의 것들을 비교해보면 몇가지 변화가 보인다.

가장 큰 변화는 ‘정권교체’를 강조한 점이다. 안 의원이 밝힌 탈당의 변을 보자. “(새정치민주연합은) 안주하려는 힘이 너무 강하고, 내 능력과 힘은 부족했다. 대통령 후보를 양보했고, 지방선거를 앞두고 통합했다. 그럼에도 정권교체는 실패했고, 정치혁신은 이뤄지지 않았다. 안에서 안 된다면 밖에서 강한 충격으로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 새누리당의 세력 확장을 막고 더 나은 정치, 국민의 삶을 돌보는 새로운 정치로 국민들께 보답할 것이다. 정권교체가 그 시작이다.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는 정치세력을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것이다.”

안 의원은 지난 12월 21일 기자간담회에서 신당 창당의 목표를 정권교체, 특히 국민이 원하는 정권교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2013년 창당 선언 당시의 목표가 ‘탈이념에 바탕을 둔 새로운 정치세력 구축’이었던 것에 비해 방향성이 좀 더 확실해졌다.

또 하나는 ‘공정성장론’이다. 2013년에도 안 의원은 ‘공정’을 강조했는데, 현재의 공정성장론으로 더 구체화됐다. 그는 “정부 주도의 산업 정책과 몇몇 재벌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로는 재벌만 행복하고 국민 다수는 불행한 구조를 바꿀 수 없다”면서 “승자독식의 질서를 바꾸고, 온갖 독과점질서를 공정거래질서로 바꿔야 새로운 혁신기업들이 성공하고, 좋은 일자리도 더 많이 생겨난다”고 강조했다.

 
누구나 ‘공정’ 외치지만…

여기서 주목할 점이 하나 있다. 안 의원 외 다른 정치세력은 이런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느냐다. 쉽게 말해 ‘공정’을 화두로 던진 정치세력이 안 의원밖에 없느냐는 거다. 그렇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선후보 당시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고, 균등한 기회와 정당한 보상을 통해 대기업 중심의 경제의 틀을 중소기업, 소상공인과 소비자가 동반 발전하는 행복한 경제시스템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이게 바로 경제민주화다. 경제민주화는 안 의원과 같은 문제제기에서 출발해서 도출된 해법이었다. 하지만 그걸 실천하는 과정에서 대기업의 반발에 부딪혀 양보를 거듭하다 실패했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도 2010년 8ㆍ15 경축사를 통해 ‘공정한 사회 구현’을 강조했다. 다만 곧바로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자 명단에 재벌 총수들이 포함되고, 위장전입과 탈세를 일삼은 이들이 각 부처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말뿐인 ‘공정사회’에 실망했을 뿐이다.

이명박 정부도, 박근혜 정부도 한국경제의 문제가 무엇인지는 꿰뚫고 있었고, 이를 해결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못했을까. 의지가 없었거나 대기업과 재벌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서 물러섰거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잘못됐거나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이 때문에 안 의원이 ‘새로운 정치’를 표방한다면 이 뻔한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그 방법론을 제시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안 의원은 2013년에도 2015년에도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정부와 여당뿐만 아니라 야권에서조차 안 의원을 두고 “무엇을 하자는 건지 알 수 없다” 혹은 “모호하다”고 비판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더 큰 문제는 안 의원이 ‘탈이념’과 ‘합리적 개혁’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공정성장’을 위한 방법론을 마련하는 데 있어 ‘탈이념’이나 ‘합리적 개혁’ 등의 구호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유가 뭘까.

이병훈 중앙대(사회학) 교수의 얘기를 들어보자. “안 의원이 강조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는 맞냐 틀리냐를 따질 수준이 아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팩트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도 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나온 거다. 그런데 문제 해결 방향과 달리 거꾸로 가고 있다고 비판을 받고 있지 않나. 중요한 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펼치느냐다. 안 의원은 탈이념과 실용주의를 강조한다. 하지만 이런 노선은 현상의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구조적 문제를 풀 수 없다. 근본 처방을 할 수 없어서다.”

문제 의식은 같을 수 있지만 어떤 이념적 잣대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방법론은 달라진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념적 잣대가 없다면 상황에 따라 판단 기준을 흐리는 정책이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고,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에게는 공격의 빌미를 제공한다.

이념 좌표 없으면 포퓰리즘

김상회 전 국민대(정치학) 교수는 “이념적 좌표가 있어야 누굴 위한 정치를 할 것인지 명확해지고, 그래야 그 중심에서 공정과 불공정을 따질 텐데, 그런 것도 없이 어떻게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라면서 “민생만 챙기겠다는 것은 ‘청부업자’에 지나지 않고, 그게 바로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했다.

 
안철수 의원은 ‘힘겨운 보통 사람들을 위한, 불공정한 세상에 분노하는 젊은 세대를 위한, 세금 내는 사람들이 억울하거나 분노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정권교체’와 ‘부패에 단호하고, 이분법적 사고와 수구적 사고에 빠지지 않은 모든 실력 있는 인재들이 모일 수 있는 정당을 만들어 국민이 원하는 정권교체’를 하겠다고 했다.

그는 국내에 없던 컴퓨터 백신 시장을 개척했듯 정치에서도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에 입문한 지 만 2년을 넘긴 지금도 그는 기존 정치권과 차별화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안 의원에겐 어떻게가 없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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