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이 남긴 과제

이번에도 몰랐다. 북한이 지난 6일 제4차 핵실험을 강행했지만 우리 정부는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다른 나라의 정보국도 알지 못했다는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문제는 대북 정보라인에 구멍이 뚫린 게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멍 뚫린 대북 정보라인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 북한이 지난 1월 6일 김정은 제1 위원장의 지시로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사진=뉴시스]

2008년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의 셋째 아들이 후계자로 급부상했다. 국정원과 미 CIA(중앙정보국)는 그 아들의 이름을 ‘김정운’이라고 잘못 파악했다. 국정원은 2009년 9월까지 공식ㆍ비공식 문건에 김정‘은’을 김정‘운’이라고 기록했다. “대북 정보라인이 무너진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지만 큰 논란은 없었다. “북한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견해가 많았다. 그러나 대북 정보라인은 그때도 정상이 아니었다.

2011년 12월 17일 낮 12시40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출국했다. 당시 일본 총리였던 노다 요시히토野田佳彦 총리를 만나고 돌아온 것은 이튿날인 18일 오후 2시30분이다. 청와대 직원들은 19일 생일을 맞은 이 전 대통령을 위해 깜짝 생일파티도 열었다. 그날 정오 무렵 청와대가 발칵 뒤집힐 만한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중앙조선통신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12월 17일 오전 8시30분 사망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일시적인 패닉에 빠졌다. 북한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50시간 넘게 김 위원장의 사망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현 국가안보실장)은 “19일 오후 TV를 보고 (김정일 사망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미 뉴욕타임스는 “김 위원장 사망을 까맣게 몰랐던 한미 양국의 대북 첩보라인에 문제가 있음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라고 보도했다.

반대로 북한 집권세력은 ‘체제 이너서클’에 외부 침투가 없다는 점에 안도했을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 한국과 미국의 대북 휴민트(HUMINT인적정보망)를 크게 걱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북한 정보를 수집할 만한 휴민트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한미 정부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북한에서 다음 행동이나 언급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라고 지적했다.

5년이 지난 2016년 1월 6일 북한은 제 4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지난 1월 6일 오전 10시 30분 유럽지중해지진센터(EMSC)는 북한에서 리히터규모 5.1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지진 진원의 깊이가 0㎞라고 알려지면서 핵실험 등으로 인한 인공지진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리고 2시간이 지난 낮 12시 30분 북한 조선중앙TV는 특별 중대 보도를 통해 “주체조선의 첫 수소탄 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이번에도 우리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을 전혀 알지 못했다. 대북 정보라인이 여전히 정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국정원은 “다른 나라 정보기관들도 사전 징후를 포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사전 징후에 실패한 것을 해명했다. 1~3차 핵실험 당시에는 중국러시아미국 등 주변국에 사전 통보를 했지만 이번에는 북한이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아 파악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국방부도 “한미 정보 당국은 북한이 언제든 수뇌부의 결심만 있으면 핵실험을 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평가해왔다”라면서도 “관련 사항을 예의주시했지만 은밀한 준비활동으로 인해 임박 징후는 포착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번번이 대북정보 놓친 정부

게다가 제4차 핵실험 전 북한의 직접적인 언급이 있었지만 이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10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우리 조국은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굳건히 지킬 수소폭탄의 거대한 폭음을 울릴 수 있는 강대한 핵 보유국”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를 북한이 국방력을 과시하고 체제의 안정성을 유도하기 위한 수사적 표현이라고 치부했다.

문제는 ‘북한 내부정보를 제대로 수집하기 어렵다는 게 한국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느냐’다. 물론 대북 리스크는 지금껏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가령 1996년 6월 15일 서해교전 당일 코스피 지수가 2.2% 하락했지만 다음날 바로 회복했다. 2005년 2월 11일 북한의 핵무기 보유 발표 당일에도 코스피 지수는 소폭 하락(0.2%)하는 데 그쳤다. 이번 ‘김정일 사망’ 후에도 한국 경제가 흔들리진 않았다.

▲ 정부가 북한의 제4차 핵실험 사전징후 포착에 실패하면서 대북 정보라인에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으로 잠시 요동쳤던 금융시장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강호인 전 기획재정부 차관보(현 국토교통부 장관)는 “증시와 외환시장의 각종 지표가 김 위원장 사망 발표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며 “지금 한국 경제에 중요한 건 대북 리스크가 아니라 유럽미국의 경제상황”이라고 밝혔다. 다행히 이번에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북한의 제4차 핵실험 이튿날인 지난 1월 7일 1904.33포인트(-1.35%)까지 하락했다. 하지만 지난 8일 1917.62포인트로 0.7% 상승하며 회복세로 돌아서는 데 성공했다.

베일에 싸여 있어 좀처럼 성향을 파악하기 김정은이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하기 힘들다는 것도 문제다. 한국 정부는 김정은 관련 정보를 거의 갖고 있지 않아 성향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김정은의 스위스 유학경험을 예로 들면서 ‘서구문명을 수용하는 데 적극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른 한편에선 그를 ‘대단한 야심을 가진 공격적이고 수구적인 인물’로 평가하면서 아버지보다 핵무기에 집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에는 측근을 무자비하게 숙청하면서 ‘반사회적 인격장애(사이코패스)’ 증상을 보인다는 분석도 등장했다.

여전히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경제도 변수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발표한 ‘북한 경제성장률 추정 결과’에 따르면 2014년 북한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0% 기록하며, 2011년 이후 4년 연속 플러스 성장세를 보였다. 한국은행은 “농림어업, 광공업의 증가세가 둔화됐다”며 “건물건설을 중심한 건설업과 서비스업의 증가세가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해묵은 리스크에도 증시 ‘출렁’

하지만 이는 김정은 체제의 성과가 아니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계속된 경제난을 참지 못한 북한 주민이 시장을 통한 경제 활동에 나선 것이 성장률을 끌어올렸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사적 소유권이 보편화되지 않은 북한에서 이런 경제활동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김정은이 체제 안정을 위한 조치에 나설 경우엔 얼마든지 경색될 수 있다. 북한과 김정은의 모든 게 불확실하다는 얘기다. 불확실성은 공포를 부르고, 공포는 시장을 떨게 만든다. 특히 금융시장이 흔들리면 실물 경제도 덩달아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국가 안보는 물론 경제의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대북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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