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OOP Cover] 시작이 반이라지만 아직 천리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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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덕 기자
  • 호수 174
  • 승인 2016.01.14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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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어디로 갔나

2012년 대선의 콘셉트가 기억나는가. 다름 아닌 ‘경제민주화’다. 보수든 진보든 모두 이 카드를 들고 전장戰場에 섰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럴듯한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많은 표를 끌어모았고, 권력을 거머쥐었다. 그로부터 3년,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 작업은 사실상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를 과감히 외쳤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사진=뉴시스]
“성장의 결실을 골고루 나누면서 조화롭게 커가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고, 균등한 기회와 정당한 보상을 통해 대기업 중심의 경제 틀을 중소기업, 소상공인과 소비자가 동반 발전하는 행복한 경제시스템으로 만들겠습니다.” 2012년 12월 당시 대선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집에 실린 경제민주화 공약의 일부 내용이다.

이 공약은 박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 지 1년6개월 만에 사실상 종료됐다. 시작을 박 대통령이 한 것처럼 마무리도 박 대통령이 했다. 2013년 7월 10일 박 대통령은 언론사 논설위원과의 오찬간담회에서 “중요 법안이 7개 정도였는데 6개가 이번에 통과됐으니 거의 끝에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이러니한 건 박 대통령의 자평과 달리 경제민주화 논의가 다시 불붙고 있다는 점이다. 2015년 9월 리얼미터가 조사한 ‘차기 대통령의 국가과제 우선 순위’에서 ‘경제민주화와 소득분배’는 29.2%로 1위를 차지했다. ‘경제민주화를 달성했다’고 확신한 박 대통령과 달리 상당수 국민은 ‘경제민주화는 시작도 못했다’고 보고 있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작업이 얼마나 부실했기에 이런 간극이 생긴 걸까. 3년 전 공약의 실천 내용을 하나씩 뜯어봤다.

참고로 박 대통령의 공약 가운데 ‘경제민주화’라는 범주에 묶인 공약은 크게 다섯가지다. ‘경제적 약자의 권익 보호’ ‘공정거래 관련법의 집행체계 개선’ ‘대기업집단 총수 일가의 불법과 사익 편취 행위 근절’ ‘기업지배구조 개선’ ‘금산분리 강화’다.

■ 경제적 약자 권익 보호됐나 = “중소기업적합업종제도의 실효성을 제고해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보호해주겠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소기업의 영역을 확고하게 만들어주겠다고 말했다. 참여정부의 정책과 다를 게 없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어찌 됐든 가치 있는 약속이었다. 2013년 6월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이 국회를 통과(2013년 7월 개정·사업조정기간 단축), 약속은 현실이 됐다. 하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중소기업고유업종을 보호하는 역할을 민간기구 ‘동반성장위원회’에 맡겼기 때문이다. 이 기구는 적합업종을 지정하고, 대기업 진출을 규제하며, 사업이양 방식을 정한다. 하지만 이를 강제할 권한이 없다. 

 
“중소도시 대형마트의 신규입점을 제한해 골목상권을 보호하겠다”는 약속도 2013년 1월 23일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으로 현실화됐다. 개정법에 따르면 대규모 점포를 개설하려는 자는 지역 협의체와 협의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의무조항이 아니다. 시늉만 해도 별다른 규제를 할 수가 없다.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한 이후 대기업 복합쇼핑몰이 부쩍 늘어났지만 힘을 쓰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정거래 환경 마련됐나 =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정거래사건이 발생하면 피해 당사자나 시민단체가 검찰에 고발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를테면 공정위의 전속 고발권을 폐지하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2013년 6월 감사원·중기청·조달청 등에 ‘고발요청권을 부여’하는 내용으로 살짝 바뀐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법안 통과 이후 실적은 중기청이 3개 업체에 고발요청권을 행사한 게 전부다. 실효성이 없다는 얘기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겠다”는 약속은 한낱 공염불에 그쳤다. 2013년 4월 30일 개정된 하도급법은 일부 범위에서만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허용하는 내용으로 축소됐다.  

■오너 일가 규제책 만들었나 =  2012년 대선 정국에선 재벌 총수 일가의 모럴해저드가 핫이슈 중 하나였다. 각종 죄를 진 총수를 향한 ‘솜방망이 처벌’도 따가운 질책을 받았다. 그 때문인지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위반시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형량을 강화하겠다”면서 “대기업 지배주주와 경영자가 중대 범죄를 저지르면 사면권 행사를 엄격히 제한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관련 개정 법안은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심지어 박 대통령은 ‘사면권 행사를 엄격히 제한하겠다’는 말을 뒤집고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현중 한화 부회장 등 경제인 14명을 특별사면했다. “일감몰아주기 등 총수 일가의 부당내부거래를 금지하는 규정을 강화하고, 그로 인한 부당이익을 환수하겠다”는 약속도 변죽만 울렸다. 2013년 7월 2일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시행령에서 법률적용범위를 좁게 설정, 총수 일가가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줬다.

▲ 박근혜 대통령은 중대 범죄를 저지른 대기업 지배주주와 경영자에게는 사면권을 제한하겠다고 했지만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을 사면했다.[사진=뉴시스]
■기업지배구조 개선됐나 = 박 대통령은 “대규모 기업집단의 신규 순환출자 금지”를 약속했다. 글로벌 기준에 맞지 않는 국내 재벌의 지배구조에 메스를 대겠다는 일침이었다. 2013년 12월 31일 이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돼 눈길을 끌었다. 제재 수단(매각명령이 아닌 의결권 제한)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소액주주 등 비지배주주들의 독립적 사외이사 선임’ ‘공적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의 논의가 지지부진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금산분리 강화는 어떻게… =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한도를 축소하겠다.” 박 대통령의 시각은 ‘금산분리 강화’에 있었다. 2013년 7월 은행법을 개정, 은행과 은행지주회사의 산업자본 소유한도를 9%에서 4%로 낮췄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인터넷은행 도입으로 가치가 희석됐다. 인터넷 은행이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를 인정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언뜻 진척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 실효성이 떨어지거나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공약과 거꾸로 정책이 집행된 경우도 많다. 박 대통령의 말과 달리 경제민주화 작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작이 반이라지만 아직 천리가 남아 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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