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 어떻게 해야 하나

▲ 애초 법 취지대로만 재벌들이 따라주면 경제민주화는 쉽게 이뤄질 수도 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시장의 룰을 지배한다. 운동장은 이미 기울어져, 재벌만을 위해 돌아간다. 재벌들은 “한국경제가 우뚝 선 게 누구 덕이냐”고 묻는다. 하지만 이렇게 반론을 펼 수 있다. “재벌들이 우뚝 서는 덴 누가 도움을 줬냐”고 말이다. 이젠 재벌들도 바뀔 때가 됐다. 한국의 경제학자들이 생각하는 재벌개혁의 방법을 정리해봤다.

우리나라의 경제민주화 콘셉트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재벌개혁이다. 재벌이 공정질서를 해치는 경우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사실 재벌개혁 주장은 어제오늘 나온 게 아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재벌중심 경제구조의 문제점이 부각된 이후 꾸준히 제기됐지만 늘 실패했다. 재벌의 반발에 워낙 거셌기 때문이다. 그만큼 재벌의 힘이 세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다르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학계에서 한목소리로 재벌개혁을 외치고 있다. 국가미래연구원의 주최로 2015년 6월부터 12월까지 총 6차례에 걸쳐 열린 이른바 ‘재벌개혁 토론회’는 이런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학자들은 재벌문제를 어떻게 봤을까.

보수에 속하는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서강대 석좌교수)은 “재벌은 과거 경제성장에 기여했지만 평등성에 기반한 민주적 질서와 공정성에 기반한 경제질서를 훼손했다”면서 “불공정성과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행위는 엄정한 법집행과 과감한 제도개혁을 통해 근절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당한 기업활동과 기업 경쟁력은 유지돼야 한다”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보수적 경제학자가 재벌을 개혁대상으로 삼은 건 의미가 있다.

김 원장은 재벌개혁 정책으로 대기업 지배주주와 경영자의 사익편취 차단,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남용 시정, 부당한 방법을 통한 기업지배력 강화 방지, 지배주주ㆍ경영자에 대한 형사처벌 강화와 엄정한 법집행, 불법ㆍ불공정 행위 시 이해관계자들의 감시와 규율 강화, 소액주주의 권익보호를 위한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을 꼽았다.

신광식 연세대(경제대학원) 교수는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은 자유방임 경제를 정치로 시정하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재벌과 정부의 유착관계로 사회 전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면서 사회적 약자의 권리가 축소됐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정부가 무차별적 규제완화로 친재벌 정책을 펼칠 게 아니라 기회균등과 능력주의를 전제로 견제와 균형, 윤리와 법치를 확립하는 친시장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진보에 속하는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정치와 정부의 지배력 쇠퇴로 재벌이 게임의 룰을 조정할 수 있게 돼 누구도 재벌을 구조조정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특히 위험한 건 경영능력이 부족하고 사회와 괴리를 보이는 재벌 3세가 대기업집단을 승계하고 있다는 점”이라면서 “적은 지분으로 의사결정자의 권한만 갖고, 책임은 지지 않는 구조가 이어지면서 그룹 존속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해결과제로 연결회계 상의 ‘지배’ 개념에 의한 기업집단의 정의 도입, 지배주주의 공정성 의무 도입, 소액주주 정보권과 다중대표소송권 도입, 그룹 공통의 이익 고려한 공정거래법 개선 등을 강조했다.

 
장하성 경제개혁연구소 이사장(고려대 교수)은 “재벌이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부분이 있지만, 이제는 한국 경제의 혁신적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됐다”면서 “재벌 기업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재벌 승계가 잘못돼 기업이 망하면 단순히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국민 전체가 고통을 받는다”고 말했다.

장 이사장은 “소수의 재벌ㆍ대기업들이 성장의 성과를 독차지하는 구조를 깨야 한다”면서 “경제 성장이 국민 삶을 좋게 만드는 원래 목적을 달성하려면 재벌들의 시장지배를 제어하고, 전방위적으로 작동하는 정ㆍ관ㆍ경 유착 등 부당한 시장 외적 영향력을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학자들의 재벌 문제의 진단과 개혁의 방법론은 각자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장기 토론회에서 밝혀진 중요한 사실은 학자들이 이념을 불문하고 재벌의 심각한 문제를 공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매번 공염불에 그친 재벌개혁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 경제민주화도 실현될 수 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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