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불매운동 150일의 기록

지난해 7월 롯데그룹 ‘형제의 난’이 터졌다. 오너 일가의 볼썽사나운 싸움에 국민은 등을 돌렸고, 불매운동의 불씨까지 붙었다. 초반 약발은 생각보다 셌다. 롯데 계열사의 주가가 줄줄이 하락할 정도였다. 하지만 들불처럼 일어난 불매운동은 곧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전락했다.

▲ 롯데 불매운동의 불씨가 힘을 잃어가고 있다.[사진=뉴시스]

지난해 8월 국내 유통업체는 오랜만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해 5월 발생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ㆍMERS)의 영향으로 직격탄을 맞은 소비가 회복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광복절 임시공휴일, 코리아그랜드세일, 바캉스 시즌 등 호재가 겹치면서 굳게 닫혔던 소비자의 지갑이 조금씩 열렸다. 소비심리가 반등하자 시장 관계자들은 “하반기 유통업체 매출도 개선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쏟아냈다.

‘유통공룡’ 롯데그룹도 이런 회복세의 수혜를 만끽했다.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의 지난해 8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8.6%(전체 점포기준), 3.5% 증가했다. 롯데 백화점의 상품별 매출증가율을 살펴보면, 식품과 아웃렛 부문은 같은 기간 각각 63.5%, 68.0%라는 높은 성장률을 찍었고, 남성캐주얼ㆍ레저ㆍ일반스포츠ㆍ해외잡화 등의 판매 실적은 20.0% 이상 늘었다.

유통 부문의 실적이 개선된 건 한국경제에 긍정적인 시그널이다. 하지만 롯데의 실적은 다른 눈으로 봐야 한다. 당시엔 롯데불매운동이 한창이었기 때문이다. 두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는 강력한 불매운동을 무력화할 만큼 시장이 회복됐을 가능성이다. 둘째는 불매운동의 위력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어떤 해석이 타당할까. 시계추를 롯데 불매운동이 촉발된 지난해 8월로 돌려보자.

가장 먼저 불매의 깃발을 든 곳은 금융소비자원이다. 이 단체는 그해 8월 4일 “롯데 형제의 난은 국내 재벌의 비양심적인 작태를 드러낸 것으로 국내 재벌이 사회적 책임이나 공헌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며 “롯데카드ㆍ롯데백화점 등 롯데그룹의 전 계열사에 대한 불매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날에는 소상공인연합회가 롯데마트ㆍ롯데슈퍼 불매운동과 더불어 롯데카드 거부운동을 전개하겠다면서 불매운동에 가세했다. 소상공인연합회 측은 “롯데는 유통대기업 중에서도 가장 무차별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영세 상인의 비난을 받아왔다”면서 “경영권 분쟁으로 오너 일가의 탐욕과 전근대적인 경영방식이 알려지면서 반감이 커졌다”고 불매운동 배경을 설명했다.

참여연대, 청년유니온,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재벌개혁과경제민주화실현전국네트워크, 전국 ‘을’살리기국민운동본부 등 10개 시민단체도 기자회견을 열고 “사회적 책임과 동반성장이라는 책무는 멀리한 채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반사회적인 경영 행태를 일삼으면서 골목상권과 중소상인 등 서민경제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꼬집으며 롯데 불매운동에 참여했다.

시장 관계자들은 “롯데의 불매운동이 제대로 전개되면 엄청난 파급효과가 발생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이런 전망은 롯데 계열사의 주가가 떨어지면서 현실이 됐다. 롯데쇼핑의 주가는 불매운동이 본격화하기 전인 지난해 7월 30일 25만8000원에서 불매운동 직후인 8월 10일 20만4500원으로 7거래일 만에 20.7% 떨어졌다.
▲ 불매운동이 롯데를 얼마나 변화시켰는지 의문이다.[사진=뉴시스]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롯데손해보험 등 주요 계열사의 주가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불매운동의 여파는 오래가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롯데그룹의 8월 매출 개선이 이를 잘 보여준다. 불매운동의 약발이 한달도 가지 않았다는 얘기다. 곤두박질쳤던 주가 역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발표한 직후 반등에 성공하면서 제자리를 찾았다. 롯데쇼핑의 주가는 지난해 8월 11일 전일 대비 9.2% 오른 22만3500원을 기록했다.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롯데손해보험의 주가도 같은 기간 각각 9.27%, 2.24%, 2.39% 상승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롯데불매운동은 국민들의 공분을 사면서 큰 주목을 받았지만 약발이 세지 않았다”면서 “국민 성향의 문제인지, 불매운동을 실시한 시민단체 역량의 문제인지 답답하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한달도 못 간 불매운동 효과


물론 롯데불매운동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건 아니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롯데 불매운동은 여전히 유효하다”면서 “롯데그룹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공론화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단언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불매운동의 목표가 롯데에 경제적 타격을 입히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며 “하지만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한 작업은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포부에도 ‘버티면 꺼진다’는 불매운동의 속설은 이번에도 빗나가지 않았다. 불매운동의 불편한 현주소다.
▲ 롯데 불매운동의 불씨가 힘을 잃어가고 있다.[사진=뉴시스]

Issue in Issue |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원장

“불매운동 불씨 아직 안 꺼졌다”

롯데가家의 경영권 분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8월 4일 금융소비자원은 ‘롯데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금융소비자원은 당시 “롯데가 황제경영과 비밀경영 등으로 시장 질서를 해쳤다”고 비판했다. 또한 “소비자가 더 싼 값에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을 고를 기회를 뺏었고, 투자자들에게는 실질적인 손실을 줬다”며 불매운동의 근거를 밝혔다. 150여일이 흐른 지금 금융소비자원의 ‘롯데 불매운동’은 어떻게 되고 있을까.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를 만나 불매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물어봤다.

✚ ‘롯데 불매운동’에 참여했다.
“롯데의 문제점을 지적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연대활동을 펼쳐보자는 소상공인협회의 요청도 있었다.”

✚ 불매운동이 사실상 끝난 것은 아닌가.
“다른 현안에 막혀 있고, 내부 사정상 지속적인 활동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활동은 계속할 것이다. 내부적으로도 계획하고 있는 것이 있다.”

✚ 불매운동에도 롯데의 실적은 나빠지지 않았다.
“불매운동의 목적은 롯데의 매출을 떨어뜨리거나 망하게 하려는 게 아니다.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다. 경제적인 면으로 불매운동의 성과를 따질 수는 없다.”

✚ 불매운동도 효과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불공정한 행위를 하거나 소비자에게 피해를 준 기업을 엄벌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있으면 된다. 강력한 처벌 기준이 있다면 기업 스스로 그 기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 아닌가.”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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