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 97

7월 16일 새벽달이 구름 속에 들었을 무렵. 어두워진 틈을 타 일본 함대의 여러 장수가 원균의 함대를 습격했다. 진지를 옮기자는 장수들의 간청을 듣지 않은 원균. 일본 함대의 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단병전까지 일어나 조선 함대는 몰살 위기에 내몰렸다.

원균이 반항을 하자 권율은 대로하면서 원균의 죄를 조목조목 열거했다. 첫째, 부산으로 출정할 때 이억기와 배량裵樑이 몰래 습격하자고 했지만 병위兵威를 과시하다가 적으로 하여금 대책을 준비하게 하였다. 그런 속임수에 스스로 빠져 병선 20척과 군사 수천명을 상실한 패군죄. 둘째, 부귀만 편안히 누리고 머물며 관망하다가 영등포에서 먼저 겁을 내어 칠천도로 달아난 죄. 셋째, 경상우수사로 재직하던 임진란 초에 병선 70척과 병기 군량을 바다 밑에 침몰시키고 도주한 죄. 넷째, 부산의 적을 소탕하겠다고 대언장담하다가 통제사가 된 후엔 적을 두려워하여 조정을 기망한 죄. 다섯째, 나가 싸운 공은 이순신보다 자신이 앞서건만 이순신을 먼저 통제사를 시켰다고 주장하면서 조정을 원망한 죄 등이다.

권율은 이런 죄들을 말하면서 원균의 두 볼기가 터질 때까지 때렸다. 매를 맞은 원균은 이를 갈며 권율과 이순신을 원망하였다. 이순신이 권율에게 자기를 모함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이후 원균은 술만 먹고 매일 대취해 제장들과 대면을 하지 않았다. 참다못한 전라우수사 이억기가 원균의 방문 밖에서 “소인 아뢰오!”라며 보기를 청하였다. 계집의 무릎을 베고 있던 원균은 이억기의 소리를 듣고 “누구냐? 이 밤중에 내 방문 앞에까지 온단 말이냐?”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억기는 “좌수사”라며 언성을 높였다. 원균이 “왜 자지를 않고 나를 찾소”라고 따지자 이억기는 화난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적선이 포구 밖에 출몰한다 하니 필시 밤을 타서 습격하여 들어올 듯하오. 이곳의 물이 얕고 또 썰물 때가 되었으니 진지를 옮기지 아니하면 우리는 꼼짝못하고 낭패를 당할 것이오. 그러니 배를 물 깊은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오.”

술에 취한 눈으로 계집을 시켜 문을 열게 한 원균은 이억기를 바라보며 “그것은 대장이 알아서 할 일이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몸을 추스르지 못한다. 일어서려 하지만 다시 쓰러지기를 반복한다. 이억기는 엄숙한 어조로 “사또는 이렇게 급한 때에 병선에도 오르지 않고 약주만 잡수시니 군심이 해이하여 수습할 수가 있소? 어서 배에 오르시오”라고 재삼 재촉했다.

권율 vs 원균 기싸움

▲ 권율의 령으로 매를 맞은 원균은 계집의 치마 폭으로 들어가 장수들과 대면조차 하지 않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 말을 들은 원균이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옆에 있던 계집이 벽상에 걸린 칼을 들어 “사또, 칼 여기 있소”라며 원균에게 건네준다. 원균은 칼을 받아 죽 빼어든다. 계집들은 취한 사람이 칼을 빼는 것을 보고 놀라 소리를 지르며 방구석으로 숨는다. 원균은 취한 눈을 간신히 뜨려고 애를 쓰며 웃는다. “내 칼이 있는데 1000만명 적병이 와 덤빈다고 무서울 것이 있겠는가” 라며 비틀비틀거리며 칼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때 원균의 아래통이 벗겨져 메마른 볼기가 들어나고 낭심까지 보였다. 계집들은 웃음보가 터져 걷잡을 수가 없다.

원균은 칼춤을 추다가 앉으면서 “여보, 우수사 영감!”이라며 이억기를 부른다. 이억기는 어이없는 듯 한숨을 크게 쉬면서 “사또, 일이 급하오. 어서 배에 나갑시다”고 말하면서 시위병들에게 종사관, 대솔군관을 부르라고 시켰다. 하지만 그들도 주색을 탐하는 부랑자들이라 어디론가 약주를 먹으러 가고 없었다. 할 수 없이 이억기는 원균을 붙들어 배에 올렸다. 경상우수사 배설까지 나서 진지를 옮기기를 강청하였으나 원균은 불청했다.

원균은 절영도 앞 큰바다에서 일본 함대에 조롱을 받은 일이 마음에 남아 있었던지 큰 바다에서 싸우기를 겁냈다. 만약 불리하면 도망을 칠 수 있도록 육지와 가까운 곳에서 싸우길 원했다. 배설과 이억기는 원균의 뜻을 움직이지 못한 채 자신들의 병선으로 돌아갔다.

7월 16일 새벽달이 서쪽 하늘에 빗겨서 구름 속에 들었을 무렵, 어두워진 틈을 타 일본 함대의 부전수가, 협판안치, 소서행장, 가등청정, 장종아부원친 등 여러 장수가 원균의 함대를 습격하였다.

진지를 옮겨 물 깊은 곳으로 나가기를 강권했던 배설은 멀리서 일본 함대가 구름처럼 몰려오는 것을 보고 한산도로 달아나 버렸다. 칠천도 포구 안에 있는 원균의 함대에는 때마침 조수가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판옥대맹선을 움직일 만한 깊이는 아니었다. 그래서 원균의 함대는 적선이 습격하여 오는 것을 보고도 앉은 자리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조선 판옥선 위로 일본군이 올라와서 단병전이 일어났다. 일본군이 그렇게 두려워하던 거북선도 마른 땅에서는 위력을 발휘하지를 못하였다. 다른 판옥선에 있던 우리 군은 피를 쏟아냈다. 단병접전으로는 일본군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칼이 길 뿐만 아니라 재주 또한 대단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선 수군에는 칼 찬 사람이 많지 않아 한바탕 싸우지도 못하고 물에 뛰어들어 육지로 달아나는 이가 많았다.

이순신의 병법 무시한 원균

이런 결과는 이순신의 부재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이순신은 통제사 시절 일본 군사가 긴 칼을 가진 것을 알고 단병전을 예상했다. 그래서 한산도에 창검 만드는 공장을 열고 창과 긴 칼을 짓기를 감독하였다. “삼척서천 산하동색三尺誓天山河動色”이라고 새긴 칼을 견본을 삼아 군사들이 쓸 칼도 많이 만들게 했고, 또 군사들에게 검술을 가르쳤다. 하지만 원균은 달랐다. 군관 이외에는 칼을 차기를 금하였고, 이순신이 만든 긴 칼은 쓸데가 없다며 무시했다. 어찌 됐든 단병전의 결과는 처참했다. 포구 안에는 군사들의 아우성 소리가 가득했고, 탄환과 화살 나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조선 병선 몇 척에는 벌써 불이 일어나 화광이 하늘을 찌르고 그 화광에 두 나라 군사들이 어우러져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더스쿠프 발행인 겸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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