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세상을 꿈꾸는 그대에게…

1882년 셀라 형제가 ‘거인의 이빨’이라 불리는 프랑스 알프스 당뒤제앙 봉우리(4313m)에 올랐을 때의 일이다. 이곳은 저명한 영국의 등산가인 앨버트 머메리가 “너무 험준하기 때문에 정당한 방법으로 오르기 불가능하다”고 선언한 산이었다. 그런데 셀라 형제는 케이블과 로프를 이용해 정상정복에 성공했다. 이후 공정한 수단(by fair means)의 기준이 무엇이냐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첨단장비와 셰르파를 대동하는 지금의 잣대로는 이해할 수 없는 논쟁이었지만, 그 당시는 케이블과 로프조차 편법으로 여겨진 ‘신사들의 시대’였다.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과 알리바바, 화웨이, 텐센트…. 미국과 중국에서 등장한 신흥 자수성가형 기업들의 약진은 놀랍다. 마크 저커버그가 31세의 나이로 51조원을 자선사업에 내놓겠다는 것은 기업권력의 이동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산업혁명 이후 그 어느 누구도 이렇게 어린 나이에 큰돈을 모은 적이 없다. 자수성가형 기업인이 많은 나라는 공교롭게도 경제위기가 덜하고, 청년실업률도 낮다. 신흥기업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니 청년들은 활기에 넘친다.

2016년 한국경제의 가장 큰 위기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윗물이 아랫물이 되고 아랫물이 윗물이 되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고인물의 나라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서 새로 뻗어나는 기업은 미래에셋과 네이버, 몇몇 게임업체에 불과하다. 자수성가형 기업인 웅진, STX, 팬택 등은 어느 틈인지 뒤안길로 사라졌고, 상속형 재벌들만이 여전히 건재하다. 게다가 금수저를 물려받은 재벌들의 3~4세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국 포브스지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30대 부자 중 23명이 상속받은 데 비해 중국은 30명 중 단 1명에 그쳤다. 미국은 400대 부자 중 창업자 비중이 70%에 달한다.

▲ 애플, 구글, 알리바바 등 미국과 중국에는 신흥 자수성가형 기업들이 많다. 하지만 한국엔 상속형 재벌만 건재하다. 재벌 중심 경제구조가 한국경제의 활력을 잡아 먹고 있다는 얘기다.[사진=뉴시스]
문제는 이들 재벌 3~4세 출신들이 모험정신과 개척정신이 부족한 것이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한국 재벌의 근본적인 문제는 ‘자신의 우월한 힘을 이용해 기존의 재벌을 대체할 수 있는 더욱 혁신적이고, 뛰어난 기업의 등장을 막아왔다’는 점”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새로 창업한 기업이 뛰어난 기술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도 재벌이 뒤늦게 뛰어들어 시장을 빼앗거나 핵심 기술인력을 빼내는 등 온갖 방법으로 신규창업기업의 성장을 방해해왔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창의성 하나를 무기로 새로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사례가 좀처럼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중국, 이스라엘은 젊은 인재들이 창업으로 몰린다. 한국의 두뇌는 의사, 변호사, 공무원, 대기업 직원이 되는 길을 택한다. 지금 한국에서 청년에게 창업을 권하는 것은 펴질지 안 펴질지 모르는 낙하산을 메고 벼랑에서 뛰어내리라고 등을 떠미는 것과 같다. 그 실수들이 쌓이고 쌓인 것이 오늘날 한국경제의 모습이다.
체감 청년실업률이 20%에 가까울 정도로 일자리가 없으니 창업을 하라고 청년들의 등을 떠밀고 있다. 젊은이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해야 한다며 교과서 같은 구호를 내세운다. 패자부활의 기회도 없고, 성공한 중소기업을 보호해줄 공정하고 강력한 시장감시 시스템도 없다. 한국 자본주의의 위험은 외부가 아니라 젊은 사업가의 출현을 가로막는 재벌중심 경제구조에서 온다.

산악인 머메리는 “중요한 것은 고도(Altitude)가 아니라 태도(Attitude)”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환경은 재벌은 히말라야 정상을 헬기 타고 가는데 비해 젊은 청년들은 맨주먹으로 오르라는 격이다. 이미 ‘공정한 수단’이라는 게임 룰이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기득권층의 검은 이익을 감싸고 있는 정치권은 스스로 변화할 생각도 없고, 능력도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달콤한 속삭임에 더 이상 귀 기울이지 말라. 자본의 폭력에 저항하고 정치적 무관심과 체념을 떨쳐 버리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지 않으면 길이 없다. 청년들이 손을 잡고 현실정치에 적극 참여하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기득권층과 정치인의 무책임한 선동에 속지 말고, 중단 없는 개혁을 요구해야 한다. 세상을 바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선거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청년들이 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내라고 정치권에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분노하고, 또 분노해야 길이 보인다. 분노하라!
윤영걸 더스쿠프 부회장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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