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13월의 보너스?

바야흐로 연말정산 시즌이다. 국세청이 15일부터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를 시작했다. 봉급생활자가 학교나 병원, 금융회사를 다니며 영수증을 받는 수고 없이 국세청 사이트에서 증빙 자료를 내려 받거나 출력할 수 있다. 그런데 공제 받는데 필요한 영수증이나 서류를 2월 초까지 회사에 제출하고 2월 봉급 받을 때 정산하는데 왜 ‘연말정산’인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약 20년 전인 1997년까지만 해도 11월 말, 늦어도 12월 초까지 증빙자료를 제출해야 12월 봉급탈 때 정산이 가능했다. 다달이 봉급에서 떼어간 세금을 더 냈는지 덜 냈는지 따지는 작업을 연말에 한다고 해서 연말정산이었다. 그러나 이 제도에 허점이 많았다. 대다수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11월 말까지 서류를 내라고 재촉했다. 그 바람에 지출이 많은 11ㆍ12월 연말 두 달에 쓴 경비는 공제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세법상 이듬해 5월 종합소득세 신고 때 공제 받을 수 있다지만, 근로자들은 이를 제대로 몰랐고 회사는 귀찮아서 적극 알리지 않았다.

이처럼 12월에 실시하는 근로소득세 정산이 불합리하다는 민원이 1996년 국세청에 제기됐다. 연말 두 달에 쓴 경비 중 공제받지 못하는 세금이 당시 금액으로 395억원에 이른다는 추정과 함께. 쉬쉬하던 것을 당시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에 출입하던 기자가 보도하자 정부가 소득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통과됐고 정산 시기가 늦춰졌다. 1997년 소득분부터 이듬해 1월에 하다가 지금은 2월로 바뀌었다. 이런 배경을 감안하면 ‘연말정산’보다 ‘연초정산’이란 용어가 더 적절하지 않을까.

행정편의적인 조세제도와 징세행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맞춤형 소득세 원천징수제도 또한 그런 경우다.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한 소득세법 개정으로 세금 부담이 늘어나 지난해 2월 정산 때 조세저항이 일자 정부가 소득세법 시행령을 바꿔 회사가 월급을 주며 세금을 떼는 원천징수 비율을 근로자에게 선택하도록 했다. 급여 수준과 부양가족 수에 따라 이만큼 떼라고 기획재정부가 만들어 돌리는 지침(간이세액표) 그대로 낼지, 80% 또는 120%를 낼지를 정하라고 한 것이다.

이 경우 다달이 봉급에서 떼는 금액에 차이는 나겠지만 납세자가 부담할 세금총액이 달라지진 않는다. 적게 떼이는 게 좋겠다며 80%를 선택하면 정산 때 다달이 줄인 원천징수액의 몇 배에 이르는 세금을 한꺼번에 토해내 월급이 날아갈 수도 있다. 120%를 선택하면 정산 때 환급금은 커지겠지만 다달이 세금을 많이 떼어감에 따라 가처분소득이 줄어드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세금정산 때 토해내든, 돌려받든 납세자 자신이 결정한 것이니 정부 탓하지 말라는 꼼수행정 아닌가.

변호사나 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과 자영업자들이 내는 사업소득세는 전년 한 해 소득을 한꺼번에 따져 이듬해 5월에 낸다. 이와 달리 유리알 지갑인 봉급생활자의 근로소득세는 매달 미리, 그것도 뭉텅 떼어 가져갔다가 몇 달 뒤 더 거둔 것을 돌려주며 이자도 안 쳐준다. 미리 거두면 이자에 해당하는 만큼 세액을 공제해주든지, 적어도 이듬해 2월 더 거둔 세금을 돌려줄 때 이자를 붙여줘야 마땅하다.

실제로 자동차세는 연초에 1년분을 한꺼번에 내면 10% 깎아준다. 양도소득세도 예정 신고를 하면 10% 공제해주는데, 근로소득세는 그런 게 없다. 2014년 근로소득에 대한 세금정산 결과 더 낸 세금을 환급받은 근로자는 1088만명, 환급액은 4조9133억원이었다. 그해 근로소득세 징수액(25조3978억원)의 19.3%에 이르는 금액을 근로자 봉급에서 손쉽게 원천징수했다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돌려줬다.

한두 푼도 아니고 연간 근로소득세 총액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미리 더 거뒀다가 환급하는 것은 비정상의 극치다. 정부가 만들어 사업주에 배포하는 간이세액표가 주먹구구라는 방증이다. 왜 그렇게 많이 미리 뭉텅 떼어갔는지 따져야 할 판에 ‘13월의 보너스’ ‘13월의 월급’ 운운하며 반길 일은 못 된다. 기본적으로 더 낸 세금을 돌려받는 것이지 보너스도, 공돈도 아니기 때문이다.

과세당국은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에 만족해선 안 된다. 근로소득자의 추가납부도, 환급금도 최소화하도록 간이세액표를 정교하게 만들라. 급여와 부양가족 수에 따른 일률적인 공제에 머물지 말고 보험료ㆍ교육비ㆍ의료비ㆍ신용카드사용액 등에 따른 특별공제도 반영해야 할 것이다. 근로소득세 정산 빅데이터를 묵혀두지 말고 연령대와 직종, 성별, 혼인상태별 특성을 분석하면 가능하지 않겠는가.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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