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동 브라운스톤 짬짜미 문건 입수

▲ 분양 현장은 늘 ‘떴다방(중개브로커)’ 관계자들로 붐빈다.[사진=뉴시스]
분양시장에 떠도는 속설이 있다. ‘분양률 100%를 믿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입증할 길이 없었다. 대부분의 시공사ㆍ분양대행사ㆍ조합이 분양정보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최근 의미 있는 문건을 입수했다. ‘시공사ㆍ분양대행사ㆍ조합이 분양률 100%를 맞추기 위해 가짜 조합원을 활용하는 편법’이 담긴 문건이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브라운스톤의 분양 사기 논란에 펜을 집어넣었다.

여기 참 이상한 홍보문구가 있다. ‘분양률 100%’다. 문구를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또 다른 분양물량이 나와선 안 된다. 그런데 툭하면 ‘회사보유분’ 혹은 ‘특별 공급물량’ 등의 이름으로 분양물량이 나온다. 기존보다 훨씬 싼 가격에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분양률 100%’는 사실이 아니다. 미분양의 또 다른 이름이다. 부동산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일반인은 알기 어렵다. 시공사와 분양대행사가 짜고 치는 고스톱이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분양률 100%’의 허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문건을 입수했다. 최근 몇년간 ‘사기 분양’ 논란에 휘말려 있는 서울시 영등포구 당산동 브라운스톤 관련 문건이다. 시공사는 이수건설, 분양대행사는 환엔터테인먼트(이후 ㈜당산브라운스톤, ㈜라메종 등으로 변경)다. 2009년 재건축 조합이 설립됐고, 지난해 8월 준공됐다. 문제는 피해자가 굴비 엮듯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합과 건설사, 할인 분양 몰랐나

피해자는 대부분 분양대행사의 할인 분양에 이끌려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가 조합ㆍ건설사의 “할인 분양은 없다”는 말에 뒤통수를 맞은 이들이다. 당연히 화살은 분양대행사로 쏠렸다. 이례적으로 분양 계약금을 분양대행사가 받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분양대행사만 문제 삼았다. 상당수의 피해자가 분양대행사만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더스쿠프가 입수한 자료에는 ‘할인분양을 분양대행사 혼자 진행한 게 아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2014년 5월 분양대행사는 조합과 건설사에 다음과 같은 내용증명을 보냈다. “… 당사(분양대행사)는 당산동 제2지역 주택조합아파트(당산동 브라운스톤)를 분양하는 과정에서 중도금 대출자가 필요하다는 조합과 이수건설의 요청에 따라 2013년 8월부터 2014년 5월까지 조합원을 구해 이수건설 임직원과 관련자 40명 명의의 자서(확인서)를 승계했다. 하지만 조합과 건설사 간의 문제로 승계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 대행 계약을 파기하려 한다….”

 
복잡한 내용을 쉽게 풀어 설명하면 이렇다. 이수건설은 사업 초기였던 2010년께 조합원들로부터 중도금 대출을 받고, 그 돈으로 공사를 완료하려 했다. 대부분의 건설사가 사용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미분양이 생기자 직원들 중에서 조합원을 모집했다. [※ 참고: 법 개정으로 2015년부터는 건설사 직원이나 가족이 자사 아파트를 분양받을 경우 “자의에 의해 분양받았다”는 확인서가 없으면 불법이다.]

직원들을 조합원으로 올려야 할 만큼 공사비가 급했던 거다. 일단 조합원 수만 편법으로 채워 놓으면 금융결제원이 조합원 자격심사를 완료하기 전이라도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한 셈이다. 직원들을 동원해 미분양 물건을 해소함과 동시에 대출까지 받은 셈이다. 더불어 ‘분양률 100%’라는 홍보문구도 만들어졌다.

이수건설 관계자는 “책임 시공을 하려 했던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직원들을 모집할 때도 홈페이지에 공시해 아파트를 살 의향이 있는 이들에게만 자율적으로 지원 받았기 때문에 문제될 건 없다. 현재 10명은 진짜 조합원이 돼서 입주도 했다.”

직원을 동원해 미분양을 ‘분양 100%’로 분식粉飾한 정황을 보여주는 자료는 또 있다. ‘미분양 해결 전략’ 보고서다. 2012~2013년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보고서에는 가짜 조합원으로 미분양을 해결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 미분양 50세대에 가성 조합원을 넣어 분양 완료 후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이처럼 당산동 브라운스톤의 조합과 건설사, 분양대행사는 ‘분양 100%’라는 신화를 만들기 위해 편법을 공모한 것으로 보인다. 할인 분양을 분양대행사 단독 행위라고 볼 수 없는 이유다. 더구나 할인 분양은 광고를 통해 공개적으로 이뤄졌다. 당시 브라운스톤 분양 현수막에는 ‘할인 분양’은 물론 ‘할인 가격’까지 명시돼 있었다. 분양사무실에는 조합 관계자와 이수건설 직원이 상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분양대행사가 당시 언론사에 배포한 분양 홍보기사에도 “시세보다 1억1000만원 저렴하다(2014년 5월 뉴시스)”는 문구가 나온다. 분양대행사가 가계약을 했다가 분양을 받지 못한 이들에게 제시한 할인액과 거의 일치한다. 인터넷으로 활동하던 공인중개사들도 할인액은 다르지만 할인 분양을 한다는 걸 명시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피해자들은 조합 관계자와 이수건설 직원이 상주하는 분양사무실에서 할인 분양 가계약을 맺었다. 할인을 진짜 해주느냐 마느냐 하는 얘기가 오가는 상황에서 “할인 분양을 몰랐다”는 조합과 이수건설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분양률 100% 믿었다간 큰코

이수건설 관계자는 “조합 측에 분양대행사를 바꾸도록 조언했는데, 정작 바꾸니까 조합원이 잘 모이지 않았다”면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문제의 분양대행사(환엔터테인먼트)를 다시 쓸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말을 뒤집으면 “이수건설이 미래 리스크를 등한시한 채 조합원 모집에만 열을 올려 분양대행사의 일탈을 방관 혹은 종용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물론 당산동 브라운스톤 ‘사기 분양’ 논란이 전체 분양시장의 문제점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다만 교훈은 있다. ‘사기 분양’의 배경에는 조합과 건설사, 분양대행사의 탐욕이 있다는 것이다. 분양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그들이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해 소비자의 권익이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아파트를 분양 받으려는 투자자들이 분양대행사에 전매 권한이 있는지, 할인 권한이 있는지를 꼼꼼히 살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분양률 100%’에 속아 넘어가면 투자자만 손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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