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당해 매매계약 체결했다면 …

땅 투기를 방지하기 위해 설정한 구역이 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이다. 이곳의 토지를 거래할 땐 반드시 관할 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더불어 매매 당사자는 허가신청 절차에 협력해야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사기를 당해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그래도 계약상 신청절차에 협력해야 할까. 여기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토지 매매계약 체결한 당사자들은 관할관청의 허가를 신청할 의무가 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보면 토지거래허가구역이라는 게 있다. 토지의 투기적 거래가 성행하거나 지가地價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지역, 그런 우려가 있는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한다.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토지의 매매는 당사자가 관청의 허가를 얻어야 가능하다. 매매절차를 마쳤더라도 허가를 못 받으면 무효가 된다는 것이다. 허가를 받으면 그 반대 상황이 연출된다. 이렇듯 추후에 허가를 받으면 유효로 확정될 수 있는 상태를 ‘유동적 무효’라고 한다.

사례를 보자. A씨는 서울에서 사업을 한다. 고향에 땅이 있지만 내려가 볼 틈도 없다. 다행히 고향친구 B씨가 부동산 소개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A씨는 B씨와 함께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토지를 공유하고 있는데, 그 관리를 B씨에게 맡겼다. B씨는 수년 동안 A씨의 토지를 잘 관리해 왔고, A씨도 이런 B씨를 믿었다.

그런데 B씨가 엉뚱한 짓을 했다. 3.3㎡(약 1평)당 100만원에 A씨의 토지를 C씨에게 파는 매매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그후 B씨는 A씨에게 “시가가 3.3㎡(약 1평)당 70만원인데, 72만원에 매수하겠다”고 거짓말을 한 뒤 토지를 샀다. ‘저렴하게 매입한 뒤 비싸게 파는’ 전매차익을 노린 거였다.

원래 토지소유주 A씨는 B씨로부터 계약금과 중도금을 받은 후에야 “아차! 속았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A씨는 “사기를 당했기 때문에 매매계약은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잔금 수령을 거절했다. 그러자 B씨는 A씨를 상대로 토지거래허가신청절차 협력의무의 이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허가 전 취소하면 계약 무효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대법원의 입장을 보자. “사기를 당한 당사자는 (거래) 허가를 신청하기 전 단계에서 매매계약의 거절의사를 명백하게 밝혔다. 이에 따라 계약을 무효화할 수 있고, 거래절차에 협력할 의무도 면제된다.” 원래 토지소유주 A씨가 ‘허가를 받기 전 매매계약을 취소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 B씨의 행위는 사기에 해당할까. 당연히 사기다. B씨는 적극적으로 A씨를 기망했다. A씨가 B씨의 꼼수를 알았다면 매매계약을 체결했을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A씨는 B씨의 사기를 이유로 들어 매매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모든 매매계약과 거래행위가 무효가 된다는 이야기다. 이에 따라 B씨가 A씨에게 지급한 계약금과 중도금도 반환해야 한다.  
조준행 법무법인 자우 변호사 junhaeng@hot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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