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의 돌고 도는 유행

▲ 한때 '성냥갑 아파트'라는 놀림까지 받으며 소외됐던 판상형 아파트가 최근 주택시장의 대세로 떠올랐다.[사진=뉴시스]
‘주택 분양 시장의 유행은 돌고 돈다.’ 부동산 시장의 오랜 격언이다. 과거에 시장을 주도하던 주택 유형이 새로운 유형에 밀려났다가 다시 주목받게 된다는 얘기다. 고급스러운 탑상형에 밀렸던 판상형 아파트가 다시 뜨고, 중소형에 밀려 자취를 감춰가던 중대형에 수요자가 몰리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주택 분양 시장의 돌고 도는 유행을 알아봤다.

■ 판상형 vs 탑상형 = 1937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지하 1층, 지상 4층의 국내 최초의 아파트가 들어선 이후 우리나라에는 아파트 건설 붐이 일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빨리 짓고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서였다. 이 때문에 건설사들은 아파트를 평면으로 지었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성냥갑 아파트’, 다시 말해 판상형 아파트다. 여러 가구가 열을 맞춰 길게 늘어선 그런 아파트다.

모양은 사실 볼품없지만 판상형 아파트는 장점이 많다. 대부분 남쪽으로 배치되기 때문에 햇볕이 잘 든다. 또한 주택의 앞뒤가 뚫려 있어 맞통풍이 잘 된다. 직사각형 구조로 죽은 공간이 없어 사용 면적도 극대화할 수 있다.

기본에 충실한 아파트 인기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아파트 구조가 변하기 시작했다. 천편일률적인 판상형 아파트에 질린 대중들이 좋은 외관을 갖춘 아파트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주상복합 아파트다. 몇 세대를 묶어 탑을 쌓듯이 ‘ㅁ’자 모양으로 위로 쭉 뻗은 탑상형의 구조로 만들었다. 당시 탑상형 아파트는 고급 이미지를 내세워 수요자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짓기만 하면 수천만원의 웃돈(프리미엄)이 붙었다. 도곡동의 타워팰리스, 목동 하이페리온, 용산 파크타워 등 지역을 대표하는 초고가 아파트들이 탑상형 구조로 지어진 이유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시 기본에 충실한 판상형 아파트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아파트 단지에서 판상형의 비중이 70~80%에 이르는 곳도 많다. 지난해 현대산업개발이 서초구 반포동에서 분양한 ‘반포래미안아이파크’의 경우 전체 829가구 중 판상형의 비중이 88.5%에 달했다. 10가구 중 9가구를 판상형으로 설계한 셈이다. 반도건설이 다산신도시에 공급한 ‘반도유보라 메이플타운’은 아예 1085가구를 모두 판상형으로 지을 예정이다.


■ 중소형 vs 중대형 = 6.6%. 지난해 서울ㆍ수도권 시장에 공급된 분양 물량 중 중대형 평형(85㎡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중대형 평형은 2008년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 불어 닥친 대규모 미분양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멸종 위기’를 겪었다.

최근의 분위기는 또 다르다. 애물단지였던 중대형 평형의 몸값이 다시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중소형 평형의 분양가 상승폭이 너무 가파른 데다 중대형의 물량 자체가 귀해지면서 청약경쟁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넉넉한 공간을 바탕으로 다양한 평면 설계가 가능하다는 점도 매력을 더하고 있다.

저층 아파트의 고공행진

최근엔 중대형이 중소형보다 먼저 매진되는 단지까지 등장했다. 경기도 김포시 ‘한강센트럴자이 1차’가 대표적이다. 이 단지의 100㎡(약 30평) 주택형은 분양 시작 후 바로 마감됐지만 70㎡(약 21평)와 84㎡(약 25평)는 미분양 물량을 남겼다. 웃돈(프리미엄)도 중소형보다 중대형에 많이 붙었다. 이 단지의 100㎡ 분양권에 붙은 웃돈은 2000만원으로 84㎡(1000만원)의 두 배다. 업계는 중대형 아파트 선호현상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의 중대형 평형 분양가가 고점을 찍은 2008년에 비해 30% 이상 낮은데다, 일부 지역에서는 중소형 평형보다 분양가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 고층vs저층 = 아파트 로열층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1980~1990년대 아파트의 로열층은 15층 기준으로 5~10층 사이, 이를테면 중간층이었다. 저층은 프라이버시 침해 등의 이유로 인기가 없었고, 고층의 경우 단열에 약점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망권이 강조되면서 아파트 로열층은 점차 상층으로 옮겨가게 됐다.

요즘 사정은 또 다르다. 미운오리새끼 취급을 받던 아파트 저층이 로열층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건설업계가 필로티(건물 일층의 벽을 제거하고 주차장 등으로 활용하는 것) 설계로 사생활 침해를 막는 것은 물론 CCTVㆍ동체감지기를 설치하는 등 방범시스템을 강화해서다. 또한 저층 일부 세대에 층고를 높이거나 테라스를 설치하는 특화설계로 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아졌다.

아파트 지상 공원화도 저층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다. 과거에는 주차장이 지상에 있어 1층 주변을 왕래하는 사람들과 차량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반면 최근 분양하는 아파트의 경우 단지 내 공원, 정원 등의 특화 설계로 조망권이 확보된 저층 단지가 많아졌다.

지난해 10월 분양한 경기 용인 ‘광교상현 꿈에그린’이 대표적이다. 전체 총 639가구 중 35가구에 저층 특화 설계를 도입했다. 그중 92㎡(약 27평) 16가구와 120㎡(약 36평) 11가구가 1순위에서 마감됐다. 1층 120㎡ 11가구는 복층 구조의 평면을 제공해 하부 층을 다용도 스튜디오 등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1~2층 89ㆍ92㎡는 거실의 크기를 더 넓힌 저층 특화 평면을 선보였다.
장경철 부동산센터 이사 2002cta@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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