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안목의 투자 필요하지만…

경제신문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주로 증권ㆍ부동산ㆍ벤처ㆍ창업 등 머니(money)와 관련된 기사를 썼다. 그래서인지 종종 필자에게 돈을 어떻게 모으고, 굴려야 하는지 훈수를 부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속시원히 대답해줄 처지가 되지 않으니 스스로 민망하고 딱하다. 때로는 뉴스와 담쌓고 지내는 전업주부인 아내보다 재테크 지능이 뒤떨어진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있기도 하다.

1998년 외환위기를 맞아 집값이 폭락했을 때는 헐값에라도 집을 팔아치우려고 했으나, 계약직전 아내의 ‘엄청난’ 저항에 부딪혀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금金 모으기 운동’이 벌어졌던 그 무렵에는 기업이든 개인이든 현금 확보를 위해 팔 수 있는 것은 다 팔아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을 쓸어내릴 일이다. 만약 그때 집을 처분했더라면 아내의 지청구에 시달리며 평생 귀를 막고 살아야 했을 테니까 말이다.

‘금 모으기 운동’이 시작된 첫날 주택은행(현재 KB국민은행)을 통해 집에 있던 결혼반지, 돌 반지와 어머니가 평생을 간직했던 금가락지까지 처분했다. 내친김에 동네 금은방에 가서 결혼 다이아몬드 반지까지 팔았다. 당시는 애국심으로 스스로 위로를 했지만, 어머니와 아내와 자식의 소중한 추억이 담겨 있는 패물을 판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생각에 가끔 씁쓸한 웃음을 짓곤 한다. 물론 금값도 당시와 비교하면 엄청 올랐다.

▲ 지나친 환상과 불안감을 조장하는 전문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2000년대 초 김대중 정부가 벤처 육성정책을 펼치자 마침내 신경제가 열린다며 모두가 들떠 있었다. 잘 알던 증권사 사장(지금은 유력 보험회사 회장)은 전화를 걸어와 “코스닥시장은 이제 출발선일 뿐 어디까지 오를지 모른다”고 기염을 토하던 목소리가 생생하다. 그 당시에는 왜 그렇게 필자를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는 사람이 많았는지, 뭐 하는 회사인지조차 따져보지도 않고, CEO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쌈짓돈을 탈탈 털어 맡긴 게 아쉽고 또 아쉽다. 여러 벤처회사에 투자했지만 10원 한 장 건지지 못했으니 말이다.

2007년 수조원이 몰렸던 유명 펀드 모집에는 남보다 뒤질세라 앞장서서 창구로 뛰어가는 바람에 큰 피해를 입었다. 또 연 수익률 20%를 보장해준다는 파생상품 전문가인 후배의 호언장담을 믿고 퇴직금 중간정산한 돈을 맡겼다가 며칠 만에 원금의 20%를 잃었다. 당시 발생한 천안함 사건으로 선물옵션 시세가 널뛰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당시 대우그룹 채권에 놀란 필자는 하이닉스가 위험하다는 뉴스가 나오자 하이닉스 채권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멀쩡한 연금펀드를 해약하기도 했다. 바보처럼….

팔랑개비 귀를 가진 사람들은 시시각각 쏟아지는 뉴스와 루머가 너무 크게 들리니 참지 못한다. 지금 생각하면 외환위기 무렵 3만원대였던 삼성전자를 사서 묻어놓는 것이 최고의 재테크였다. 배당이나 유무상 증자를 빼고 계산하더라도 족히 원금의 40배 가까이 되었을 테니 말이다. 아니면 두자릿수 금리일 때 연금보험에 가입해두었으면 노후걱정에 머리를 싸매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큰길 놓아두고, 골목길을 헤매다 길을 잃은 형국이다.

오랜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내린 결론은 2가지. 첫째 전문가를 믿지 말라.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만 얘기해야 하는 한계를 갖고 있고, 지나치게 환상과 불안감을 조장한다. 금융회사 창구에 앉아 있는 직원들은 회사의 수익성 올리기에 급급하지 고객에는 별 관심이 없다. 부동산시장 전망과 주식시장 예측은 공허한 것이다. 일본의 부동산 폭락시기에도 도쿄 중심가는 오히려 올랐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고, 급등락하는 한국의 증권시장에도 매년 5% 이상 꼬박꼬박 배당을 주는 효자종목이 있다. 전문가들을 믿지 말고 그들을 활용해야 한다. 스스로 공부해서 아는 만큼만 믿어야 한다.

둘째 묻어두는 투자를 하라. 연금상품에 허점이 많은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게라도 묻어두는 투자를 하지 않으면 허투루 다 써버릴 가능성이 높다. 장수시대에는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연금상품에 가입해 오래 계약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세상은 모순과 갈등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원래 순수하고 완전무결한 것은 없는 법이다. 쏟아지는 뉴스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내일 지구가 망해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정신으로 소처럼 뚜벅뚜벅 천리를 걸어가는 긴 안목의 투자를 권하고 싶다.
윤영걸 더스쿠프 부회장 yunyeong0909@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