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차이나 머니’ 반도체로 방향 틀다
[심층분석] ‘차이나 머니’ 반도체로 방향 틀다
  • 정우철 바른투자자문 대표
  • 호수 176
  • 승인 2016.02.02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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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반도체 위기론

한국 수출의 대표적인 효자 품목인 반도체가 중국의 위협을 받고 있다. 중국이 원유보다 많이 수입하면서 반도체의 국산화에 나섰기 때문이다. 한편에선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한국의 반도체 산업도 일본을 제치고 선두의 자리에 올라섰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게다가 중국은 이미 막대한 시장과 자본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쥐고 있다.

▲ 중국이‘반도체 굴기’를 선언하며 관련 산업 육성에 나섰다.[사진=뉴시스]

경제학적 관점에서 가장 흥미로운 시장은 과점시장이다. 독점시장은 사례가 많지 않고 완전경쟁시장은 현실에서 실현될 가능성이 높지 않아서다. 하지만 과점시장은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과점시장은 소수의 기업이 생산량과 가격지배력을 갖는 독점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완전 경쟁처럼 신규 플레이어의 자유로운 시장 진입을 허용하고 있다. 물론 ‘신규 플레이어의 시장진입 허용’이라는 말을 오해해선 안 된다. 과점시장에 진입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진입장벽이 상당히 높아서다.

 
이는 과점시장이 생겨난 배경을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과점기업들은 과거 완전경쟁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을 거듭한 경험을 갖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 소수의 기업은 시장에서 살아남았고, 나머지 기업은 퇴출 수순을 밟았다. 이렇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생존한 과점기업들은 경쟁사의 전략과 생산량을 꿰뚫고 있다. 때문에 과점기업들이 적절한 수준의 상호견제와 경쟁을 할 수 있는 거다.

하지만 이런 과점시장에 신규플레이어가 등장했다고 가정해보자.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신규플레이어가 등장하면 경쟁을 하던 기업끼리 상호의존적으로 행동하며 시장진입을 막는다. 만약 신규플레이어가 시장의 진입장벽을 넘어서면 기존에 유지되던 균형은 깨지고 다시 치킨게임이 시작된다.

필자가 과점시장을 설명하는 이유는 반도체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다. 반도체 산업은 대표적인 과점시장이다. 문제는 반도체 산업이 성숙기에 진입했다는 점이다. 반도체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컴퓨터와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률은 둔화세를 겪고 있어서다. 반도체 산업은 더 이상 고성장 산업이 아니라는 시각이 지배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일본 등 몇몇 선진국은 반도체 투자를 포기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기업이 바로 ‘칭화유니그룹紫光集團有限公司’이다. 이 기업은 미국에 상장한 중국 반도체 기업 ‘스프레드트럼(2013년 12월), ‘RDA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2014년 7월)’를 각각 2조원과 1조원에 인수했다. 그 결과, 칭화유니그룹은 단숨에 중국 최대 반도체 설계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 그룹은 지난해 5월 휴렛팩커드(HP)의 중국 내 서버ㆍ네트워킹 사업부(JV)의 지분 51%를 2조5000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지난해 7월에는 메모리 반도체 세계 3위 기업인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로지를 25조원에 인수하려 했지만 미국 정부의 기술 유출 문제로 무산됐다. 계획대로 마이크론을 인수했다면 칭화유니그룹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 이어 세계 3위의 반도체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반도체 시장 탐내는 중국

마이크론 인수에는 실패했지만 칭화유니그룹의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마이크론 대신 NAND 메모리 3위 업체인 미국의 ‘샌디스크(SANDISK)’를 지난해 10월 22조원에 인수했다. 같은달 대만의 반도체 후공정 업체 ‘파워텍’의 지분 25%를 6억 달러(약 7100억원)에 인수해 최대주주가 됐고 11월에는 SK하이닉스에도 지분투자를 제안했다. 또한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인 미국의 인텔로부터 15억 달러(1조7900억원)의 지분투자를 받는 등 미국 IT기업과의 교류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 중국이 반도체 산업을 장악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비축해 놓고 있다.[사진=뉴시스]

그렇다면 칭화유니그룹의 막대한 투자 자금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정답은 중국 정부다. 중국 정부가 반도체 산업의 육성을 든든하게 후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칭화유니그룹의 최대주주는 칭화홀딩스다. 칭화홀딩스는 2003년 중국 이공계 대학교인 칭화대학淸華大學이 수익사업을 하기 위해 기업을 묶어 만든 지주회사다. 쉽게 말해 국영기업으로 주요 요직에 있는 정치적 인물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어 든든한 후원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칭화유니그룹의 과감한 투자는 계속될 공산이 크다. 중국이 반도체 산업에 투자를 계속할 의지를 불태우고 있어 투자금은 문제 되지 않을 전망이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이 지난해 5월 발표한 ‘중국제조2025’ 정책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중국은 10대 전략사업으로 차세대 정보기술을 선정했다. 구체적인 정책의 내용은 이렇다. 반도체 설계 경쟁력을 향상하고 전자산업 발전에 필수적인 핵심 칩을 생산해 국산 칩의 사용 범위를 확대한다. 또한 초고속 인터넷첨단 메모리 등 정보통신 핵심 기술을 개발해 5세대 모바일통신기술과 첨단 라우팅(Routing) 기술을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 정부는 자국 내 반도체 생산을 2025년까지 약 45%로 늘릴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여기서 발생하는 한가지 의문점은 중국이 왜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반도체 산업에 진출하려고 하느냐다. 그 이유는 중국의 수입 품목을 보면 알 수 있다. 중국의 수입 품목 가운데 가파른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반도체다.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19%로 지난 2013년에는 중국의 원유 수입액보다 반도체 수입액이 많았을 정도다. 이에 따라 중국이 반도체 자립화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생산할 수 없는 천연자원이야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반도체는 생산이 가능한 만큼 자립도를 높일 수 있어서다.

게다가 반도체 산업은 첨단 산업으로 노동력 중심의 다른 제조업 대비 부가가치가 높다. 임금이 높은 고급 인력을 증가시키는 고용효과도 노릴 수 있다. 무엇보다 전세계 반도체 수요의 30%를 중국이 소비하고 있기 때문에 반도체 시장의 육성으로 수입대체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의 적극적인 투자는 지금까지 과점산업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국가에 큰 위협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안타깝게도 가장 큰 위협을 받을 수 있는 국가는 바로 한국이 될 전망이다. 한국의 수출 1위 품목이 반도체이기 때문이다.

산업통산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액 5272억 달러(약 631조3200억원) 가운데 반도체가 차지하는 금액은 629억 달러(약 75조3200억원)로 그 비중은 12.0%에 달한다. 이는 2위인 자동차의 458억 달러(약 54조8400억원)보다 171억 달러(20조4700억원)나 많은 규모다. 게다가 중국 수출만 놓고 보면 반도체의 수출 비중은 17.8%로 더 증가한다.

중국 정부의 통 큰 반도체 투자

중국이 한국 반도체의 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중국의 반도체 회사가 경쟁력을 확보할 경우 한국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제조업은 10여년 만에 한국의 주요 제조업을 바짝 추격할 만큼 급성장했다. 그나마 한국이 아직 경쟁 우위를 유지하고 있는 분야가 메모리 반도체다. 중국의 이런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이어진다면 향후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과의 경쟁은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 일본에서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왔던 시간보다 중국에 빼앗기는 속도가 훨씬 빠를 수 있다는 우려가 등장했다.[사진=뉴시스]

한가지 더 생각해 볼 문제는 중국의 반도체 산업 진출의 목적이 단지 반도체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것이냐다. 반도체가 저성장 산업에 속한다면 굳이 자본을 투자해 국산화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은 반도체 산업의 추가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는 얘기다. 흔히 반도체는 IT산업의 ‘쌀’이라고 불린다. 이는 IT제품에 반도체가 쓰이지 않는 곳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PC스마트폰가전제품 등은 물론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에도 반도체가 쓰이고 있다. 최근에는 차량 전장화 트렌드의 영향으로 자동차에서의 사용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시장 등이 커질 경우 반도체 수요는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일반적으로 반도체 산업은 시스템 반도체와 메모리 반도체로 나눌 수 있다. 전세계 반도체 시장의 73%는 시스템 반도체가, 나머지 27%는 메모리 반도체가 차지하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의 경우 인텔이 95%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최근 스마트폰 시장이 열리면서 크게 축소됐다.
메모리 반도체는 미국의 ‘인텔’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시장점유율 100%를 자랑했다. 그러나 일본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진출하면서 얘기는 달라졌다. 일본의 반도체 기업은 시장의 80% 정도를 장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의 독주체제도 오래가지 못했다. 1980년대 반도체 불황기, 투자를 축소한 일본과 달리 한국 업체들이 적극적인 투자를 하면서 시장지배력이 한국으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난해 3분기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메모리시장에서 각각 56.9%, 26.4%를 차지하고 있고 미국의 마이크론이 나머지 15.3%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이는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서 규모의 경제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의 핵심 경쟁력은 장비와 공정기술이다. 장비에서의 기술력 차이는 크지 않다. 반도체 장비는 대부분 미국, 한국 등 반도체 장비업체로부터 돈을 주고 사오면 그만이기 때문에 자금만 있으면 얼마든지 구축할 수 있다. 하지만 공정 기술은 다르다. 공정 수가 수백개에 달하고 각 공정마다 수많은 연구 인력이 필요해서다. 기술 집약적이면서도 고급 인력이 필요한 노동집약산업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제품의 크기는 작게, 원가는 싸게 만들어야 하는 만큼 규모의 경제와 기술력 모두를 가지고 있어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큰 시장규모에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3개의 기업이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도체 산업의 이런 특징 때문에 혹자는 중국의 성공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의 사례와 비교해 본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1980년대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반도체 시장에 진출할 당시에도 해외 연구 기관은 성공 가능성을 매우 낮게 봤다. 한국의 반도체 내수 시장이 크지 않고 기술력과 자금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 예상은 보란 듯이 빗나갔다.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중국의 성공가능성을 의심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국은 이미 큰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고, 정부의 투자 의지가 높다. 게다가 기술력 역시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 한국이 중국보다 상대적으로 강세라고 하는 기술력 역시 한국의 전문 인력 스카우트로 극복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따라 한국이 일본에서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왔던 시간보다 중국으로 넘어가는 속도가 훨씬 빠를 수 있다는 우려가 등장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 차원에서 기술유출 방지와 기술 인력보호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만약 중국이 반도체를 생산하게 되면 글로벌 반도체 가격은 유가처럼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과점상태를 유지해온 반도체 산업에 중국이 진입할 경우 자칫 치킨게임으로 치달을 수 있어서다.

메모리 시장 독주 안심 어려워

이는 과거 한국과 일본의 경쟁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할 것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치킨게임에서 패배한 기업이 다시 예전의 지위를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관련 인력은 30만명 수준에 달한다. 관련 기업도 수백개가 넘는다. 하청업체 인력 등 간접적인 영향권 인력까지 포함할 경우 반도체에 관련된 인력은 100만명 넘는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시장 진출이 단지 반도체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 전반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반도체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사진=뉴시스]
위기는 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대비해야 한다. 풍부한 자금과 시장을 가지고 있는 거대 중국을 이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술 격차를 벌리는 것이다. 경쟁사가 도저히 따라 올 수 없을 정도의 원가 경쟁력을 갖춰 신규 진입을 어렵게 해야 한다. 또한 기술 인력의 중국 유출을 막고 중국이 투자를 준비하고 있는 지금 선제적인 투자에 나서야 한다. 대규모 자사주 매입을 통한 지배구조 강화와 단기적인 이익 관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다 장기적인 그림에서의 전략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유능한 기술 인력에 대한 글로벌 수준의 대우가 시급하다. 또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국내 최고의 산업을 보호할 필요도 있다.

우리는 중국 자본의 힘을 온라인게임 시장을 통해 경험했다. 실제로 중국의 주요 게임 업체들은 한국의 게임을 수입해 벌어들인 돈으로 해당 게임회사를 인수하면서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2004년 중국의 ‘산다게임즈’는 한국의 ‘액토즈소프트’의 게임을 수입해 벌어들인 돈으로 액토즈소프트를 인수했다. 중국 1위 메신저 회사인 텐센트도 국내 업체로부터 수입한 게임을 서비스해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그 돈을 카카오에 투자했고 현재 2대 주주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규제로 신규게임 개발보다는 중국 업체에 매각을 선택하는 기업이 점차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어부가 고기 잡는 데 사용해야 할 그물을 파는 것과 같은 일이다.

게임산업의 변화 반면교사 삼아야

30년간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던 중국이 기술 육성과 창업에 집중하고 있다. 제조업과는 거리가 멀었던 미국도 해외 기업을 국내로 불러들여(reshoring) 제조업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밥줄인 수출이 더 큰 부진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성장이 정상인 ‘뉴노멀 시대’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기 어렵다면 잘하고 있는 산업, 아직 경쟁력 있는 기술부터라도 보호하고 육성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우철 바른투자자문 대표 www.barunib.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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