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99)

▲ 이순신이 백의종군 한 뒤 삼도수군은 일본군에 대패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원균이 칠천도에서 대패했다는 소식이 조정에 전달됐다. 조정은 크게 놀랐고, 민심은 동요했다. 조만간 일본군이 한양에 상륙한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백성들은 공연히 이순신을 잡아 오더니 이런 일이 생겼다고 대간들을 원망하였다. 선조도 크게 놀라 비변사 재상들을 불러 모았고, 이순신에게 구원을 요청키로 했다.

원균 함대가 대패했을 때, 이순신은 초계 평야에서 군수용 채소밭을 감독하고 있었다. 그래도 부하였던 장수들이 찾아와 따르는 자가 날로 늘어났다. 원균 함대를 참전시켰던 도원수 권율이 이순신을 찾아와 말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은 즉 후회한들 무엇하겠소. 모두가 내 불찰이니 대감을 대할 낯이 없소. 대감, 방책을 내게 일러 주오.”

권율로부터 칠천도 대패를 들은 이순신은 6년 동안 함께 지낸 옛 부하 이억기, 이영남 외 전사한 제장을 생각하여 눈물을 뿌렸다. 이순신은 권율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 사또. 승부는 병가지상사이니 놀랄 것이 무엇 있소. 소인이 곧 연해안으로 내려가 패산한 장졸을 거두어야 하겠소. 만일에 대중이 멀리 흩어지는 날에는 다시 모을 수 없을 것이오. 또 적의 사정도 알고 와서 방책을 정합시다.”

이순신은 송대립宋大立(송희립의 형), 유황柳滉, 윤선각尹先覺, 방응원方應元, 현응진玄應辰, 임영립林英立, 이원룡李元龍, 이희남李喜男, 홍우공洪禹功, 한치겸韓致謙의 무리 10명 군관을 데리고 진주, 곤양을 거쳐 노량에 도착했다. 이전 부하였던 거제현령 안위, 영등포만호 조계종趙繼宗 등 10여인이 마중 나와 순신을 보고 통곡했다. 순신 역시 눈물을 뿌려 제장을 위안하고 안위의 배에 올라 적의 형세와 패전의 이유를 분석했다.

임진란 때 일본군은 전라ㆍ충청 양도의 제해권을 손에 넣어 본 일이 없었다. 이는 웅대한 계책을 갖춘 이순신의 날개 밑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순신이 백의종군하고, 삼도수군이 전멸했으니, 일본군으로선 거칠 것도 꺼릴 것도 없었다. 한산도를 점령한 일본군이 전라도 바다를 들어가면 의주까지 1개월 만에 점령할 형세였다. 명나라 군사가 있었지만 일본군을 두려워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특히 이여송이 벽제관 싸움에서 대패한 뒤로는 일본군을 두려워하는 명군이 늘어났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게 있었다. 일본군은 전라도 바다를 거침없이 질주하지 못했다. 수로를 잘 모르는데다 혹시 모를 이순신의 공격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만약 일본군이 이순신의 입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더라면 파죽지세로 전라도 바다를 지나 한양, 황해도, 평안도를 점령했을 것이다.

순신 잡혀간 후 삼도수군 전멸

칠천도 대패전의 경보가 조정에 도달한 건 7월 21일이었다. 조정은 크게 놀랐다. 이순신을 까닭 없이 미워하던 대간 제신들과 서인 북당들도 비로소 이원익, 김명원, 정탁, 황신, 정경달, 강항 등의 선견지명에 탄복하였다. 이때에 한성의 백성들에게도 칠천도 패전 소식이 알려져 큰 소동이 일어났다. 조만간 일본군이 한양에 상륙한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백성들은 공연히 이순신을 잡아 오더니 이런 일이 생겼다고 대간들을 원망하였다.

▲ 선조는 어쩔 수 없이 이순신을 다시 통제사에 임명키로 하고, 교유서를 내렸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선조도 크게 놀라 비변사 재상들을 불러 모았다. 그 자리에서 경림군 김명원과 병조판서 이항복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 실패는 원균이 조정을 기망했기 때문이오니, 이순신에게 다시 통제사를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선조는 “이순신이 비록 명장이라고 하지만 병선 한척도 없는 지금 상황에서 무슨 도리가 있겠는가”라고 탄식하면서 통제사 교유서를 내렸다. 그 교유서에는 이런 내용이 기재돼 있었다.

王若曰 嗚呼 國家之所以倚保障者 惟在於舟師 天未悔禍 兇鋒再熾 遂使三道大軍 盡於一戰之下 沿海城邑 誰復屛蔽 閑山已失 賊何所憚 燒眉之急 迫在朝夕 目下之策 惟當召聚散亡 急據要津 儼然作一大營則 流逋之衆 知有所歸 方張之敵 庶可式遏 任是責者 非有威惠智幹 素見服於內外者 曷能勝斯任哉 惟卿 聲名 早著於閫寄之前 威功望業 累振於大捷之後 邊上軍情 恃爲長城 頃者 遞卿之職 俾從戴罪之律者 亦出於人謀不臧 致有今日敗衄之辱也 尙何言哉 尙何言哉 今特起卿于墨衰 拔卿于白衣 授以忠淸全羅慶尙三道水軍統制使 卿當先行招撫 搜訪流散 進扼形勢 使軍聲 一振則 已散之民心 可以復安 賊亦聞我有備 不敢再肆猖獗 卿其勖之哉 三道水使以下 幷節制之 其有臨機失律者 一以軍法 斷之 於戲 陸抗 再鎭河淮 克盡制置之道 王遜 出自罪籍 能成掃蕩之功 益堅忠義之心 庶副求濟之望

“왕은 이와 같이 말한다. 오호라! 국가가 지금까지 의지해 온 것은 수군뿐이라. 하늘이 우리에게 전쟁의 화를 내리고도 아직 후회하지 않은 듯 흉악한 왜적의 칼날이 다시 번뜩여 마침내 삼도의 대군이 한번 싸움에 패해 모두 사라지게 되었으니 바닷가 여러 고을을 누가 지켜주겠는가. 한산도를 이미 잃었으니 적이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눈썹이 타 들어가듯 위급함이 닥쳐온 바로 지금 시급한 방책은 도망치고 흩어진 군사들을 모아 하나의 진영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도망갔던 무리들이 돌아올 곳이 있음을 알 것이요 침략해 오는 적들을 막아낼 수 있으리다. 이를 책임질 사람은 위엄과 은혜, 지혜와 능력을 갖추어 모든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 생각하건대 그대의 명성은 일찍이 수사로 임명되던 날로부터 드러났고 그대의 공로와 업적은 임진년의 큰 승첩이 있은 후부터 크게 떨쳐 변방의 군사들이 마음속으로 그대를 만리장성처럼 믿고 따랐다.

지난번에 그대의 직책을 바꾸고 백의종군하도록 하였던 것은 어질지 못함에서 생긴 일이니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지금 그대가 상중에 있는 줄 알고 있지만 그대를 기용하여 충청, 전라, 경상 삼도의 수군통제사로 임명하고자 하니 그대는 마땅히 부하들을 불러 어루만지고 흩어져 도망친 자를 찾아 집결하여 군대의 형세를 갖추라. 수군이 위세를 떨치면 흩어진 민심도 다시 안정을 찾을 것이고, 왜적들도 우리의 방비에 대해 들으면 감히 쳐들어오지 못할 것이니 그대는 힘쓰도록 하라. 삼도의 수사 이하 전 수군을 지휘하되 만일 명령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군법대로 처단하라.”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더스쿠프 발행인 겸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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