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의 해에 맞는 설

▲ 나라 안팎으로 경제가 어려운데도 정치인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네 탓 공방만 벌이고 있다.[사진=뉴시스]
정치 좀 하신다는 분들께.

설이 코앞입니다. 예년 이맘때면 대목 경기가 제법 쏠쏠했는데 올해는 영 아닙니다. 연초부터 북핵 사태와 중국발 금융시장 혼란, 국제유가 하락 등 큰 일이 줄줄이 터졌기 때문인가요? 나라 바깥이 혼돈스러우면 정치가 중심을 잡아야 할 텐데 허구한 날 네 탓 공방만 벌이며 도움이 안 됩니다. 그래서인가요? 사람들이 2016년이 시작된 지 한달 됐는데 벌써 몇달 지난 것 같다고들 합니다. 

가계의 소비심리가 지난해 6월 메르스 사태 직후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지요. 그도 그럴 것이 주변을 돌아보면 장사가 된다는 가게가 없어요. 2월 졸업 시즌인데 취업했다는 청년들 이야기도 별로 들리지 않고요. 지난해 정부가 자동차 등 고가품에 대한 개별소비세를 낮춰 올해 소비를 당겨쓴 후유증도 있을 겁니다. 소비심리지수가 6개월 만에 최저치로 발표된 지난 1월 27일 경제부총리가 전통시장을 찾아 “설을 계기로 소비심리가 살아나 내수 활력이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했다던데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이러다 정말 ‘소비절벽’이 닥치는 게 아닌가요?

기업들 체감경기도 엉망이라면서요. 한국은행이 발표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이후 가장 낮습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2.6%로 3년 만의 최저치로 주저앉은 점도 영향을 미쳤겠지요. 금리를 낮추고 재정지출도 늘리며 돈을 풀어대고, 주택담보대출 규제까지 완화해 부동산 경기를 자극했는데도 별 효과가 없었던 겁니다. 그나마 한때 반짝했던 아파트 분양 열기가 식어 미분양 아파트가 급증하고 있다지요.

나라 안팎으로 경제가 어려우면 정치가 중심을 잡아줘야지요. 민생을 최우선으로 살피고 적절한 정책을 펴 국민을 안심시키고 소비심리와 기업의 투자심리를 안정시켜야 할 텐데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나 한배를 탄 여당, 야당 가릴 것 없이 네 탓만 있지 내 탓은 없습니다. 도대체 국민은 누구 손을 붙잡고 어려움을 하소연해야 합니까.

지금 정치판은 온통 4ㆍ13 총선 공천권밖에 안중에 없어 보입니다. 대통령이 ‘진실한 사람’ ‘국민의 심판’ 운운하며 자신과 가까운 친박계를 두둔하고 나서자 여당 대표는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국회선진화법의 제정 과정을 거론하며 “권력자(대통령 지칭)가 찬성으로 돌자 반대 의원들이 찬성으로 돌아섰다”고 꼬집었습니다. 친박계를 겨냥해 “권력 주변의 수준 낮은 사람들이 완장을 차려 한다”고도 했습니다. 과연 이게 정상적인 정부­여당의 관계인가요?

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선거 패배 책임 등을 놓고 공방을 벌이다 일부가 떨어져 나와 갈라선 뒤 사사건건 부닥칩니다. 서로 호남 민심을 얻으려고 아웅다웅하더니만 전직 대통령 부인이 누구 손을 들어주었는지와 전직 대통령 아들 영입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이런 모습 또한 국민이 야당에게 바라는 국정의 건전한 비판세력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 보입니다.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이런 기현상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요. 특히 정치적 이슈나 이념도 아닌 미래세대 보육,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편성 문제를 놓고 중앙정부와 시ㆍ도 교육청이 갈등을 빚는 것을 보며 절망에 빠집니다. 국민더러 누구 책임이 크냐고 묻지 마세요. 우리에겐 중앙정부나 교육청이나 다 같은 정부입니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갈등을 풀 생각은 하지 않고 중앙정부 편만 드는 것은 더 답답해 보입니다. 이러고도 여야 정치권은 뻔뻔하게 총선 때 서로 자기 당 후보를 찍어달라고 호소하겠지요.

역설적으로 이번 설 차례상에선 정치 이야기가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당, 누구를 지지하기에 앞서 투표는 꼭 하자고들 할 겁니다. 그래야 정치인들이 국민 무서운 줄 알 거라며 말이지요.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