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자 교수의 探스러운 소비

▲ 서구적이고 현대적인 자극에 몰입하던 소비자들이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찾고 있다.[사진=뉴시스]
얼마 전 한 케이블 TV에서 만든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가 케이블 채널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끝났다. 지금과 대비되는 과거나 옛것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켜 젊은이나 나이 든 사람 모두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극심한 불황기에 ‘추억’이라는 가치로 최고의 히트아이템을 만든 셈이다.

지난 10~20년간 ‘글로벌화’와 ‘정보화’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하지만 최근엔 다른 단어가 더 많이 사용된다. 다름 아닌 ‘복고’다. 지역성(로컬)이나 전통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경험하려는 복고트렌드가 유행을 끌고 있는 것이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에서 등장한 복고풍 떡볶이 코트나 롱코트, 신발, 그 시절 즐겨먹던 간식들, 가전제품, 그 시절의 노래와 영화들 역시 덩달아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복고트렌드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트렌드 조사기업인 트렌드워칭닷컴은 2016년 아시아 지역 트렌드의 하나로 ‘전통의 멋 재평가(heritage chic)’를 꼽았다. 그렇다. 글로벌 시대에 새롭게 접한 서구적이고 현대적인 자극에 몰입하던 소비자들이 이제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자신들의 것을 재평가하고 있다.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멀리서 바라보며 동경하던 서구의 상품이나 문화는 해외여행과 인터넷이 일상화된 오늘날 더 이상 새롭거나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옛것의 가치를 재평가하게 만든 복고트렌드의 일등공신은 글로벌 시대를 여는 데 지대하게 공헌한 바로 그 IT다. IT가 과거와 전통의 가치를 보급하고 누리는 데 장애가 되는 시간적·공간적 제약을 해결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인도의 ePuja라는 웹사이트는 인도에 있는 힌두교인들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종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이트다. 이용자들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인도 전역에 있는 3600여개의 힌두사원 중 하나를 선택하고 기도의 제목에 맞게 적절한 용품이나 제물을 구매해 해당 사원으로 배달시킬 수 있다.

말레이시아의 한 배터리 회사는 전통적인 그림자놀이를 가능하게 하는 책을 만들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잠들기 전 침대에서 옛 그림자놀이를 효과적으로 구현하면서 책을 읽어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앱이나 온라인 서비스들이 IT를 통해 과거의 전통적인 무엇인가를 실생활에서 경험하게 해주거나 상품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전통놀이를 즐길 수 있는 앱, 전통의례의 의미와 절차를 알려주는 앱,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전통식품의 온라인 레시피들이 그 예다.

인터넷을 통해 서로 다른 지역에서 형제자매들이 제사를 지내는 장면을 연결해주거나 가상의 아바타들이 지내는 온라인 제사를 참관하는 형식의 온라인 제사 시스템으로 특허를 받은 기업도 있다. IT가 과거를 되살려내는 이 시점에서 생각해볼 몇 가지. 우리는 IT를 통해 어떤 옛것을 살려야 할까. 그것은 진정 되살려야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우리가 정작 그것을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경자 가톨릭대 소비자학과 교수 kimkj@catholic.ac.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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