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직제도에 메스를 대라

▲ 지난해 실업자 수는 97만6000명이었다.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 않는 이들 중 구직단념자는 12월에 50만명을 넘어서기도 했다.[사진=뉴시스]
취업문은 좁은데 그걸 뚫고 들어가려는 사람은 해마다 늘어난다. 고용절벽을 우려해도 딱히 방법이 없다. 정부는 ‘니트족(취업을 포기한 청년실업자)’으로 있지 말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라고 종용하지만 그게 쉬운 일인가. 창업도 어려운데 하물며 창직이라니. 맨땅에 헤딩만 하다 끝날 수 있다는 불안감은 누가 책임져 줄까.

실업률이 심각하다. 통계청의 연간 고용동향을 살펴보면 지난해 실업자 수는 97만6000명이었다. 청년층(15~29세) 실업자가 39만7000명으로 전년 대비 1만2000명 늘었고, 50대?60대도 각각 1만1000명, 1만4000명씩 증가했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이들 가운데 구직단념자 수도 46만4000명으로 전년 대비 17.7%나 증가했다. 12월에는 그 수가 50만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힘들긴 중장년층도 마찬가지다. 명예퇴직, 희망퇴직 등으로 은퇴를 하긴 했지만 경제활동을 멈추기엔 이른 나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퇴직연령은 53세다. 그에 반해 평균수명은 2014년 기준 남자 78.9세, 여자 85.4세다. 2011년(남 77.6세ㆍ여 84.4세), 2012년(남 77.9세여 84.6세), 2013년(남 78.5세여 85세)에 비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은퇴 후 최소 20년 이상을 더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종합해보면 아무리 높은 경쟁률을 뚫고 어렵게 취업해도 평생직장을 갖기 어렵다는 거다. 그러면서 창업創業 붐이 일었고 창직創職까지 등장하게 된 셈이다.

창직. 영어로는 Job Creation, 말 그대로 새로운 직업을 만드는 것이다. 창업이 존재하는 비즈니스 아이템을 토대로 하나의 기업을 만드는 것이라면 창직은 기존에 없는 새로운 직업을 발굴해 스스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거다. 쉬운 예로 커피매장을 여는 것은 창업이고, 이제는 익숙한 직업이 됐지만 ‘바리스타’라는 직업을 만드는 것은 창직이다.

해외에서는 2012년 1월 유럽연합(EU)이 ‘데이터 보호법’ 개정안을 확정하면서 ‘디지털 장의사’라는 새로운 직업이 탄생했다. 온라인상에 있는 개인정보를 삭제해주도록 요청할 수 있는 ‘잊힐 권리’가 법제화됨에 따라 사진게시물댓글 등을 삭제해주는 요구가 늘어난 데 따른 변화다. 디지털 장의사는 고인이 생전에 가입한 인터넷 계정을 삭제하고 관리한다.

스스로 창출하는 일자리

미국에서는 온라인 상조회사인 ‘라이프인슈어드’, 인터넷 개인 정보를 유족에게 전달해주는 ‘레거시 로커’ 등 사후에 온라인상의 기록을 처리해주는 서비스 회사들도 등장했다.

일본의 ‘냄새 판정사’도 대표적인 창직 사례다. 이들은 공장이나 사업소, 가축농장 등에서 후각 측정법을 사용해 악취를 측정하고 이 과정을 관리ㆍ감독한다. 일본에서 처음 탄생한 환경 분야 국가자격이다. 1995년 악취방지법 개정에 따라 냄새측정 인정사업소 제도가 시행되면서 냄새판정사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도 악취방지법에 악취검사기관을 지정하고 분석기기와 후각에 의한 검사를 법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후각검사를 전문적으로 실시하고 관리감독하는 자격은 따로 없다.

창직에 처음 불을 붙인 건 정부다. 고용노동부는 2011년 ‘청년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제반 인프라와 운영 프로그램을 지원한다’는 목적으로 ‘창조캠퍼스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2012년 중소기업청은 시니어들의 창직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을 전개했다. 2인 이상의 시니어가 협력해 공동으로 창업창직 활동을 할 때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 한국인 평균 퇴직연령은 53세, 평균수명은 남자 78.9세, 여자 85.5세다. 어렵게 취업해도 평생직장을 갖기 어렵다.[사진=뉴시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불씨들은 사그라졌다. 창업교육협의회와 대학창업교육센터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진수 중앙대(경영학) 교수는 “현 정부는 창직에 미온적인 입장”이라면서 “중기청도 창직을 창업과 같은 사업으로 간주해 사실상 창직이 자취를 감췄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때문에 민간에서 필요성이 대두된 창직 열풍이 쉽게 꺾이고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전문성을 비롯해 인식, 글로벌 역량, 프로그램 공급 역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민간이 창직 분위기를 주도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가 “정부의 입장과 관점에 창직의 미래가 달렸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 차원에서 창직 생태계를 육성해야 더 많은 이들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등 떠밀기 전에 발판부터

1월 18일 세계경제포럼(WEF)은 ‘미래고용보고서’를 통해 흥미로운 사실을 알렸다. 15개 선진국 및 개도국들의 대기업에 종사하는 고위급 간부 약 3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앞으로 5년 내에 5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2020년까지 710만여개의 일자리가 정리해고와 자동화로 사라지고 기술전문분야 서비스 및 미디어 분야에서 21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거다. 클라우스 슈밥 WEF 회장은 “재능 있는 인력의 부족, 대량 실업, 불평등 심화 등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고 변화를 따라잡고자 하는 국가들은 노동 분야를 변화시키는 데 투자해야 한다”고 권유했다.

보고서는 또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어린이들의 약 65%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일자리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 말에는 끊임없이 직업이 사라지고 쉼 없이 새로운 직업이 나올 거라는 전망이 담겨 있다. ‘스스로 알아서 창직하라’고 무책임하게 등을 떠밀지 말고 제대로 준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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