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하락, 왜 나는 모르겠지?

곳곳에서 저유가 국면이란다. 그냥 저유가도 아니다. 디플레이션이 우려될 정도로 심각한 저유가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나는 잘 모르겠다. 기름값이 크게 떨어졌다지만 ‘그동안 너무 높았던 게 아니냐’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미디어에서 호들갑 떠는 것처럼 그렇게 떨어진 것 같지도 않다. 왜 그럴까. 유가하락? 왜 나는 체감하지 못하는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저유가 불감증을 취재했다.

▲ 기름값이 내려가지 않는다는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정부와 정유사는 책임을 미뤘다.[사진=뉴시스]
직장인 박건태(가명)씨. 평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그에게 자가용은 주말 마트 장보기용이 전부다. 요즘은 전세대출금을 갚느라 딱히 자가용을 끌고 놀러 갈 형편도 못 된다. 용돈이 쪼들려 당장 1만원도 아쉬울 때가 많다. 박씨가 평소 2만원 이상 주유를 하지 않는 이유다. 그런 그가 이번 설 명절 연휴에는 오랜만에 주유소에서 ‘가득’을 외쳤다. 차를 몰고 고향인 부산까지 내려가야 할 일이 생겨서다.

그런데 박씨는 주유소 미터기에 찍힌 금액을 보고 깜짝 놀랐다. 구형 아반떼가 먹은 기름값이 6만8000원(L당 1350원)에 달해서다. 박씨는 ‘가득 넣어본 지 오래되기도 했고, 평소 최고 2만원어치 주유가 고작이던 터라 감각이 무뎌지기도 해서 그런 거겠지’라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머릿속에 한가지 생각이 자꾸 맴돌았다.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들었던 ‘2009년 이래 국제 유가 최저치’라는 문구 때문이다. 그러면서 박씨는 생각했다. “국제 유가는 분명 생수가격보다도 싸다고 했는데,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걸까.” 과연 의문을 던진 게 박씨뿐이었을까.

미디어만 보면 ‘저유가’라는 말이 나온다. 공중파든 종편이든 ‘저유가 국면’을 거의 매일 운운한다. 체감이 되는가. 설 명절에 박씨처럼 자가용 연료통을 가득 채워 고향에 다녀온 이들 가운데 저유가를 실감한 이들이 있는가. 열에 아홉은 “저유가는 무슨…”이라면서 한숨을 푹푹 내쉴 것이다. ‘유가 폭락’이라는 미디어의 비평과는 다르게 현실의 유가는 생각만큼 낮지 않아서다.

통계를 보자. 설 연휴기간 국제 원유 가격은 L당 평균 209.62원(두바이산 원유 기준), 국제 휘발유 가격(싱가포르 현물시장 가격)은 평균 305.20원이었다. 반면에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L당 1358.73원으로, 국제 원유 가격 대비 최소 4.5배는 더 높았다.

이런 ‘유가의 괴리’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2012년 “기름값이 묘하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알뜰주유소가 탄생한 것도, 같은해 출범한 국민석유가 “기존 정유사보다 20% 싼 휘발유를 국민에게 제공하겠다”면서 정유업계 진출을 시도한 것도 ‘유가의 괴리’를 없애려는 취지에서였다.

나름대로 성과는 있었다. 알뜰주유소의 신설은 비록 주유소업계의 구조조정을 불러왔지만, 주변 주유소의 소매가격을 낮추는 데는 일조했다. 국민석유는 사업 추진을 위한 ‘1000억원 주식공모’에 실패하면서 시장의 높은 진입장벽을 넘지 못했지만, 유가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는 크게 기여했다. 국민석유는 지금도 사업을 현실화하기 위해 동분서주 중이다. 국민석유 관계자는 “시장 진입에 두 번 실패하지 않기 위해 탄탄하게 준비 중”이라면서 “지금 구체적인 상황을 밝힐 수는 없지만 곧 국민석유가 활동재개를 할 거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체 우리가 쓰는 기름은 왜 그리 비싸기만 할 걸까. 저유가라는데 왜 실감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걸까. 왜 나만 모르겠느냐는 얘기다. 사실 기름값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정부는 “정유사와 주유소가 국제 유가를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국제 유가의 가격이 폭락해도 정작 정유사와 주유소가 기름값을 내리지 않으니, 별 도리가 없다는 거다. 정유사 역시 뜬 눈으로 당하고만 있진 않았다. 자신들 때문이 아니라 ‘유류세’ 탓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누구 때문일까. 더스쿠프(The SCOOP)는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오피넷에 공개된 자료를 일일이 분석했다. 그 결과, 정부와 정유사의 주장 모두 옳았다. 주유소 기름값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첫째 이유는 국제유가를 반영하지 않아서였고, 둘째 이유는 유류세 탓이었다. 

먼저 정유사의 공급가격부터 보자. 2009년 1월~2016년 1월 국제 휘발유 가격(싱가포르 현물시장 보통휘발유 가격 기준)과 정유사의 공급가격(세전)을 월별 평균 가격으로 비교했다. 그랬더니 국제 휘발유 가격과 국내 공급가격은 얼추 함께 오르고(인상기) 함께 내려갔다(하락기).

▲ 정부와 정유사, 두 고래싸움에 주유소업계의 등만 터졌다.[사진=뉴시스]
문제는 둘 간의 가격차다. 국제 휘발유 가격과 국내 휘발유 공급가의 가격 차이는 천차만별이었다. 일반적으로 L당 13.76원, 많게는 121.51원의 차이가 났다. 국제 휘발유 가격이 오르면 일정한 비율로 정유사의 공급가격이 상승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얘기다.

쉽게 말해, 정유사 맘대로 공급가격을 ‘올렸다 내렸다’ 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법적으로 정유사가 자율적으로 가격을 조정하도록 돼 있으니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정유사가 기름값을 통제한다는 걸 잘 보여주는 사례임에 틀림없다.

정부의 유류세는 어떨까. 흥미롭게도 유류세는 국제 휘발유 가격에 연동하지 않는다. 당연히 국제 유가가 떨어져도 유류세는 줄지 않는다. 그럼 유류세의 기준은 뭘까. 공교롭게도 정유사의 공급가격이다. 정유사가 가격을 전월 대비 10% 올리면 유류세는 1% 오르고, 가격을 10%로 내리면 유류세도 1%로 내려간다. 국제 유가가 떨어져도 국내 정유사들이 공급 가격을 낮추지 않으면 유류세는 내려가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유사가 엿장수 역할을 하면서 사실상 유류세액도 결정짓고 있다는 거다.

베일에 가려진 정유사 공급가

정유사는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으니 정부라도 유류세를 내려 기름값 괴리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윤원철 한양대(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정유사를 압박해 국제 휘발유 가격과 국내 공급가격 간 격차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름값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유류세를 낮추는 건 국제ㆍ국내 간 유가 괴리를 확 줄여준다는 점에서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유류세를 줄여준다고 가계에 혹은 내수에 당장 큰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경기 침체와 가계부채에 허덕이는 국민들에게 힘은 실어줄 수 있지 않겠는가”라면서 “더구나 유류세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있으니 충분히 실현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류세 인하를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라 어려운 시기에 정부가 유류세를 내려 국민을 보살피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겠냐는 의미있는 지적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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