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 (100)

석양 때가 되자 이순신이 크나큰 백달마白㺚馬를 타고 7척 장검을 허리에 차고 위풍 늠름하게 온다. 순신을 호위하여 오는 제장과 군사들도 무장을 엄숙하게 하여 기세가 삼엄하였다. 순신을 모셔오는 군사들은 무서운 장수를 모신 것을 기뻐하는 듯 기운차게 우쭐거리며 걸음을 걸어온다. 백성들은 이순신을 보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선조의 교지를 받은 이순신은 일각을 지체할 수 없었다. 국가사와 남방의 형세가 급했기 때문이다. 당일 출발을 하니, 군관이 9인, 아병牙兵이 6인뿐이었다. 하동 두치豆峙를 향하여 초경에 출발, 밤비를 맞으면서 쌍계동雙溪洞에 다다르니 험한 계곡 바위에 새로 온 비가 넘쳐 흘러 여울물 소리가 시끄러웠다.

그래서 물을 건너는 행인이 끊어졌다. 제장들은 며칠을 묵더라도 물이 빠지거든 건너가자고 주장했지만 순신은 듣지 아니하고 친히 말고삐를 몰아 물을 건넜다. 4일에 곡성谷城읍에 이르렀지만 관아와 어염이 텅 비어 있었다. 군관은 달아나고 백성은 피난을 간 탓이었다. 이튿날 옥과 지방에 당도하니 피난하는 백성이 길에 가득하였다. 어린 것을 등에 업는 등 정경이 참혹하였다.

이들은 이순신이 다시 통제사가 되어 온다는 말을 듣고 길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이순신을 본 백성들은 일제히 일어서 소리를 내어 통곡했다. 이순신은 말에서 내려 백성에게 이렇게 말했다. “피난을 가면 거기도 적병이 올지 모르고 또 깊은 산골짜기에는 도적과 맹수가 많을 수도 있으니 다들 집에 돌아가 생업에 전념하시오. 여러분 중 젊으신 이는 나랏일이 위급하니 나를 따라 종군 출전하기를 바라오.” 그 자리에서 장정 30여인이 이순신의 부하 되기를 자원하였다. 백성들은 순신의 말에 감화되어 “우리 장수가 오셨으니 우리는 다 살았다!”라며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 이순신을 모셔오는 군사들은 무서운 장수를 모신 것을 기뻐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순신이 옥과현에 들어가는 길에 이기남 부자父子를 만났다. 이기남의 부친은 순신의 장대한 풍채를 보고 100번이나 절을 하며 “사또는 천신이시며 참으로 대인이시오”라고 말했다. 옥과 사람인 이기남은 이순신의 날랜 장수였다. 용력이 절륜하여 이순신의 신뢰를 받았지만 원균에게는 축출을 당했다. 이기남은 다시 순신을 따라 나섰다.

8월 8일 순천 땅에 들어가니 전라병사 이복남이 적병이 온다는 소문을 듣고 창고에 불 지르고 달아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부하장졸들도 장군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뿔뿔이 흩어졌다. 
 
순신의 부하 되길 소망하다

순천에 도착한 이순신은 이복남이 군관 몇 명을 데리고 남원부로 달아났단 이야기를 듣고 분개하였다. 광양현감 구덕령具德齡, 나주판관 원종의元宗義는 병사 이복남과 함께 구치로 달아나고 있었다. 그러자 이순신은 전량을 보내 이복남 일행을 호출했다. 이복남이 끌려 오자 이순신은 호령했다. “나라의 신하인 너희들이 목숨을 던지고 나서는 것이 도리이거든 내가 온다는 말을 듣고 달아나는 것이 무슨 행동이냐?” 구덕령과 원종의는 군법으로 처단당할까 두려워하여 순신의 앞에 엎드려 사죄했다.

순천부에 들어가니 인적이 적적하다. 산승山僧 혜희惠凞가 와서 만났다. 순신은 혜희에게 의승장의 첩지를 주어 승군을 모집하였다. 순천성에는 관사, 창고, 군기 등이 여전히 있었다. 이복남이 이것을 처치하지 않고 조급증이 나서 달아난 것이었다. 순신은 군기고를 열고 부하 장졸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순신이 통제사 교지를 받았을 때 부하는 군관 9인, 아병 6인에 불과했지만 이젠 군관 160여인, 병졸은 500~600인에 달했다. 8월 9일에 순천을 떠나 낙안군에 다다랐다. 낙안의 400~500명 백성들은 영웅을 맞으려고 나와 환영한다. 늙은이, 부인, 아이들까지 이순신을 보기 위해 일찍부터 길에 몰려들었다. 이 백성들은 이순신이 전라도에 밀려드는 적군을 모두 처치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석양 때가 되자 8척이나 되는 큰 몸에 검소한 천익(철릭)을 입은 이순신이 크나큰 백달마白㺚馬를 타고 7척 장검을 허리에 차고 위풍이 늠름하게 온다. 순신을 호위하여 오는 제장과 군사들도 무장을 엄숙하게 하여 기세가 삼엄하였다. 순신을 모셔오는 군사들은 무서운 장수를 모신 것을 기뻐하는 듯 기운차게 우쭐거리며  걸어온다.

“통제사 대감이 오신다!” 군중 가운데서 누군가가 이렇게 외치자 길가에 또는 나무그늘 밑에 앉았던 백성들은 “어디, 어디?”라면서 모두 일어서 바라보았다. 장대한 체격에 길고도 풍성한 자색염姿色髥 구레나룻을 한 순신의 모습은 보통 사람과 크게 달랐다. 백성들 중에는 감격한 충정에서 우는 소리가 들렸다.

순신은 말에서 내려 노인의 앞에 서며 “어찌 이렇게들 나왔소?”라고 물었다. 노인은 “통제사 대감께서 오신다니까 아침부터 나와 기다리오”라면서 순신을 바라보았다. 순신의 눈에는 영채가 쏘아져 나갔다. 순신은 “군수는 어디 갔소?”라고 다시 물었다.

노인은 이렇게 답했다. “적병의 침략이 임박하였으니 창고를 불사르고 백성은 피난하라고 영을 내리시고 창고에 불 지르고 달아났소. 그러고 보니 백성들이 누구를 믿고 있겠소? 다들 노인들 모시고 아이들 업고 피난을 가려 하다가 대감께서 이 고을로 행차하신다 하기에 머물러 있는 것이오. 대감께서는 아무 죄도 없으신데 소인배들의 참소를 받으시어 옥중 고생을 많이 하시고 또 대부인의 상을 당하셨다 하오니 무어라고 여쭐 말씀이 없소.” 

와신상담하는 순신

순신은 노인의 말을 듣고 감개무량하였다. 노인은 곁에 선 젊은 사람을 불렀다. 노인의 아들인 듯했다. 젊은 사람은 노인이 손짓하는 대로 질그릇 술병과 백지에 싼 안주 한봉을 순신에게 올렸다. 노인은 “이것이 술이오. 대감께 드릴 것이 없어서 변변치 못한 촌주村酒와 거친 안주를 가지고 왔소”라며 허리를 굽혔다. 순신은 노인이 준 술과 안주를 받았다. 예로 줌에 예로 받음이었다. 이를 보는 여러 백성은 “나도, 나도”라면서 안주, 장 단지, 도시락, 찐 닭, 말린 생선, 말린 사슴고기 등의 물건을 순신에게 바쳤다. 이순신이 “까닭 없이 받을 수 없소”라고 사양하자 그들은 울면서 강권했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더스쿠프 발행인 겸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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