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자리 새치기 않는다면…

▲ 아부는 경쟁자를 해코지하는 중상모략과 차원이 다르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배우 모건 프리먼이 열연한 영화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에 40년간 살아온 노부부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그려진다. 아내는 남편이 계단 오르내리기 힘들까봐 집을 팔고 새집으로 이사 가기를 원한다.

남편은 오랜 추억이 서려 있는 집을 떠나기가 썩 마음에 내키지 않지만 아내의 뜻에 따르기로 한다. 이들은 한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부간에 서로 배려한다. 수입이 빠듯한 은퇴자 남편 알렉스는 애완견 수술비용이 1만 달러가 드는데도 아내가 개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선뜻 치료비를 마련할 정도다.

아내의 뜻을 순종하던 남편 알렉스는 갑자기 주택 매매계약 취소를 선언하지만, 펄쩍 뛸 줄 알았던 아내는 선선히 남편의 뜻에 따른다.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에 나오는 은퇴한 노부부의 사랑비결은 한마디로 어떠한 경우에도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고 서로 서로 아부하는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로 84년째 해로한 미국 최장수 부부인 존 베타(104)와 앤 베타(100)가 오랜 기간 사랑을 이어온 비결을 말했다. 그들은 “상대방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며 “그럴 수도 없고,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말라”고 조언했다. 이들은 때론 배우자의 행동이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끊임없이 귀 기울이고 맞장구쳐 주었다고 답했다.

적절한 아부는 생활의 활력소이자, 사회의 윤활유다. 누군가에게 매력적이라는 칭찬을 해주면 실제로 그 사람은 훨씬 더 밝아지고, 매력적이 되는 것이 아부의 순기능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눈치를 보며 사는 것이 당연하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사람들을 미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반사회적인 일일지 모른다.

미국의 리처드 스텐걸은 아부는 거짓이 탄로 나도 처벌이 없는 무공해 웰빙푸드라고 지적한다. 그는 “칭찬과 동시에 부탁하지 말라” “본인이 없는 곳에서 칭찬하라(가장 효과만점이란다)” “그럴듯하게 칭찬하라” “누구나 아는 사실은 칭찬하지 말라”는 아부의 4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조직사회에서 승승장구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야말로 아부의 달인들이 적지 않다. 업무능력이 뛰어난 부하가 아부라는 무기까지 장착한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아부만 잘한다고 출세하는 것은 아니지만, 출세한 인물 중에 아부에 약한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들은 끊임없이 보스의 관심사항을 연구하고, 조직발전과 개인의 영달을 동시에 추구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어느 그룹 회장은 필자에게 “솔직히 아부인 줄 알면서도 내 비위를 맞춰주는 부하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 아니냐”고 말한다. 권력기관이나 재벌그룹에서 측근들이 발호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위대한 인물일수록 의외로 아부에 약하다. 이들은 자신에 대한 칭찬을 아부라고 여기지 않고, 그러한 평가를 해주는 상대방의 안목을 뛰어나다고 받아들인다. 자기애(self-love)만한 아첨꾼은 없는 셈이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측근이었던 지인은 정 명예회장이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아부 2가지를 회고한다.

정 명예회장의 아들에 대한 칭찬에 곁들여, 라이벌인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결단이라고 보고하면 뛸 뜻 기뻐했다고 한다.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의 참모였던 딕 모리스는 간드러진 목소리로 알랑거렸다. “각하는 링컨, 루스벨트, 윌슨, 워싱턴 같은 대통령보다는 순위가 좀 떨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쟁을 치러보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들 다음 순위는 확실합니다.”

‘아부헌법’ 제1조는 84년을 해로한 미국 부부처럼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맞장구를 쳐주는 거다. ‘언청간행言聽諫行’이란 말이 있다. 남이 말을 하면 경청하고, 간절히 청하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행하라는 얘기다. 제2조는 모진 말이나 비난보다는 밝은 표정으로 따뜻한 축복의 말을 선사하는 거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장 12절)’는 황금률(Golden rule)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부는 경쟁자를 해코지하는 중상모략과 차원이 다르다. 공동체 구성원을 배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동시에 자신의 이익까지 동시에 노리는 것이 참된 아부의 목표이다. 단 지나치게 비굴하거나, 남의 자리를 새치기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아부하는 말은 믿지 않지만, 아부하는 사람은 기억에 남는다”는 말을 기억하시라.
윤영걸 더스쿠프 부회장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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