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블랙홀에 빠진 정치권

▲ 한국경제가 위기에 처해 있는데도 정치권은 여전히 총선을 겨냥한 표 놀음이나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대 총선거가 50일 앞으로 다가왔다. 예년 같으면 여야 정당들이 립 서비스일망정 민생을 앞세운 경제 관련 공약으로 경쟁을 벌일 시기인데 이번 선거판은 어째 이상하다. 온통 안보 이슈와 공천 블랙홀에 빠져들어 유권자들에게 지지 정당과 후보에 대한 판단 근거를 제시할 정책 공방이 실종된 모습이다.

물론 주요 정당들이 경제 공약을 내놓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당들은 이번 총선의 화두가 흙수저·금수저론이 상징하는 격차해소라는 데 인식을 함께하고 나름 해법을 제시했다. 새누리당은 ‘경제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 더불어민주당은 ‘더불어성장론(포용적 성장)’, 국민의당은 ‘공정성장론’, 정의당은 ‘정의로운 경제론’을 각각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다. 이런 각 당의 정책기조와 이에 바탕을 둔 구체적인 개별 정책에 대한 실현 가능성과 허점 등을 놓고 갑론을박해야 할 텐데 현실은 딴 판이다.

이 땅의 ‘정치현실’이 ‘경제현실’을 선도하기는커녕 뒤치다꺼리도 못하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작금의 경제현실은 자못 엄중하다. 저유가와 중국 경제 불안으로 유럽·일본까지 휘청대며 금융위기 재발 가능성이 거론된다.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경기 둔화는 한국 경제를 떠받쳐온 수출 감소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1월 수출이 18.8% 줄어든 데 이어 2월에는 더 큰 폭으로 감소(10일까지 -27.2%)할 전망이다. 1월 청년실업률이 9.5%로 16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는데 졸업시즌 2월에는 더 높아질 것이다.
이런 판에 개성공단이 폐쇄되자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한국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을 경고하고 나섰다. “남북 화해의 마지막 상징이었던 개성공단 폐쇄가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높인다”며. 게다가 미국 의회는 환율조작국 제재법을 통과시켰다.

환율개입(의심) 국가에 대한 조사를 확대하고 통화가치가 저평가된 국가가 미국에 상품을 수출할 경우 수출보조금으로 간주하겠다는 내용의 법으로 2000년 이후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한 한국이 1차 조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 여기에 사드의 한반도 배치가 현실화하면 한중韓中관계가 틀어져 자유무역협정(FTA) 과실은커녕 경제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 경제 악재에 경제외적 악재까지 겹치면서 지난 17일에는 원-달러 환율이 하루 새 10.5원이나 폭등하기도 했다.

한국경제호號가 사면초가의 격랑에 휩싸여 있는데도 정치권은 여전히 총선을 겨냥한 표票 놀음이다. 경제정책을 입안하는 중심축인 집권 여당은 공천 룰을 둘러싸고 박근혜 대통령과 가까운 ‘친박(親박근혜)’과 비박(非박근혜) 진영 간 다툼이 점입가경이다.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서로 상대방을 공격하며 “용납하지 않겠다”고 맞섰다. 각자 앉은 책상 앞에 써 붙인 ‘경제 먼저’란 푯말이 무색하게시리.

경제부처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적기에 선제적 정책을 펴고 경제체질을 구조적으로 바꿔가야 할 텐데 임시방편 경기부양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3기 유일호 경제팀이 2월 초 내놓은 경기대응 방안이란 게 고작 1분기 재정 조기집행과 코리아 그랜드 세일, 승용차 개별소비세 인하 연장 등 인위적으로 내수를 자극하는 식의 전임 최경환팀이 써먹은 단기 부양책의 재탕삼탕에 불과했다.

박근혜 정부가 25일 출범 3주년을 맞는다. 출범 초기 제시한 474(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 달러 토대)는커녕 대통령 재임기간 성장률 3% 달성도 버거워 보인다.
‘경제위기론’ ‘안보위기론’을 들먹이며 국회에 관련 법안 통과를 압박하기에 앞서 원칙과 미래 비전을 지키면서도 상황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정부 정책이 먼저다. ‘정책절벽’이 ‘소비절벽’ ‘고용절벽’을 악화시켜 한국경제호를 더 깊은 소용돌이에 빠뜨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탄탄한 경제야말로 가장 확실한 안보 아니겠는가.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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