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사 약정에 묶인 휴대전화 소비자들

▲ 침체에 빠진 모바일 시장의 대안으로 휴대전화 단말기 리스 제도가 주목받고 있다.[사진=뉴시스]
미국에서는 휴대전화 단말기도 ‘리스’할 수 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기존 단말기를 반납하고 새로 나온 단말기를 받는 형식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약정’에 묶여 단말기를 교체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스마트폰 리스제도, 우리나라 모바일 시장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는 이유다.

SK텔레콤ㆍKTㆍLG유플러스 이동통신3사의 영업이익이 급증했다. 지난해 이통3사 영업이익의 총합은 3조6332억원. 2014년보다 82%나 늘어났다. LTE 대중화로 가입자 평균 매출(ARPU)이 늘어난 데다 설비투자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투자 부담이 크게 줄어든 덕분이다. 마케팅 비용이 줄어든 것도 영업이익 급증에 한몫했다. 이통3사의 마케팅비는 2014년 8조8240억원에서 지난해 7조8669억원으로 9571억원이나 줄었다.

시민단체들은 이통3사의 마케팅비 감소의 원인을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에서 찾고 있다. 지난해 실적은 단통법이 1년 내내 적용된 첫번째 실적이라서다. 단통법이 도입되기 전까지 이통3사는 자사 고객을 지키는 동시에 경쟁사 가입자를 빼앗아 오기 위해 무분별한 보조금 경쟁을 펼쳤다. 덕분에 과열된 보조금 경쟁 과정에서 불법 리베이트 행위가 기승을 부렸다. 정보 습득이 빠른 일부 소비자에게만 이 보조금 혜택을 독식하는 일이 반복됐다.

정부는 2014년 10월 단통법이라는 칼을 빼들었다. 이 법으로 이통사가 소비자에게 줄 수 있는 단말기 보조금은 최대 33만원으로 제한됐다. 이통사 입장에서는 보조금 부담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 단통법이 이통사의 단말기 지원금을 제한해 소비자들이 예전보다 비싼 가격으로 단말기를 구입하게 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저가 요금제와 중ㆍ저가 단말기의 비중이 증가한 것도 보조금이 줄어든 탓에 소비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한 결과라는 거다. 결국 단통법은 ‘실효성 논란’이라는 의문 부호를 해결하지 못했다.

이 해묵은 과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단말기 리스 제도’가 침체에 빠진 모바일 시장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배은준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1월 ‘성숙기 스마트폰 3대 사업모델이 흔들린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는 미국 모바일 시장에서 주요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 잡은 단말기 리스 제도가 소개됐다. 사례로는 미국의 ‘만년 꼴찌’ 이동통신 사업자인 티모바일(T-Mo bile)의 성장 스토리를 꼽았다.

2013년 3월. 미국의 4위 이동통신 사업자 티모바일은 새로운 사업 모델을 제시했다. ‘언캐리어(Un-carrier)’라는 이름이 붙은 전략이다. 통상 하위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도발적인 가격 경쟁을 펼친다. 우리나라 알뜰폰 사업자들이 기존 통신사 대비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추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티모바일의 선택은 달랐다. 언캐리어 전략의 핵심은 ‘휴대전화 단말기 리스’였다.

줄어든 마케팅비만 9571억원

이 전략의 시작은 2년 약정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보조금도 없어졌지만 단말기 대금을 할부로 나눠서 납부할 수 있게 했다. 여기서 ‘JUMP’ 프로그램에 가입하면 파격적인 혜택을 줬다. 단말기 구입 12개월 이후에는 다른 단말기로 교체해주는 것이다. 사용하던 단말기를 반납하는 조건으로 말이다. 매년 최대 3회까지 단말기를 교체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JUMP on Demand’에 가입하면 매년 최대 3회까지 스마트폰을 교체할 수 있는데, 반납하는 중고 단말기가 사용 가능한 기준을 충족하기만 하면 된다.

이 전략은 놀라운 결과를 불렀다. 사업 추진 2년 만에 티모바일은 전체 가입자 수 기준 3위로 올라섰다. 이 기간 순증 가입자 수 기준으로는 1위에 올라섰다. 더불어 미국 모바일 시장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선두 기업들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버라이즌, AT&T 등은 올해 들어 앞다퉈 2년 약정과 단말기 보조금을 폐지하기 시작했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는 “미국 시장에서 보조금을 지원받아 판매되는 단말기 비중이 2013년 80% 수준에서 2016년에는 30%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볼 정도다.

배은준 연구위원은 미국 모바일 시장에서 단말기 리스 제도가 열풍을 얻는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완연한 성숙기에 접어든 미국 스마트폰 시장은 2016년 스마트폰 보급률이 70%를 넘어, 성장률은 4%에 불과하다. 이제 스마트폰의 기술적 매력만으로는 의미 있는 교체 수요를 창출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리스 모델을 통한 교체 주기 단축은 스마트폰 수요를 창출하는 새로운 사업모델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좋은 단말기를 저렴하게 구입하고 싶어 하는 건 우리나라 소비자도 마찬가지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들은 평균 1년 7개월마다 단말기를 교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스마트폰 사용자에 국한하면 평균 교체 기간이 평균 1년 2개월이다. 통상 약정기간이 2년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위약금을 불사하고 기기를 바꾸는 소비자가 많다는 얘기다. 단말기 리스는 빌려 쓰는 개념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이런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만큼 단말기 선택의 폭도 넓어지게 되는 것이다.

티모바일의 점유율 반란

그럼에도 우리나라 통신사들은 현재 단말기 리스 제도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수익성 감소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소비자의 해약을 막을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인 ‘약정 기간’을 포기해야 한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일부 통신사가 리스제도 검토했지만 수익성 문제를 이유로 폐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럼에도 단말기 리스제도에는 정체된 이통3사의 점유율 분산, 스마트폰 수요 증가, 가계 통신비 절감 등 순기능이 숨어 있다”며 “머지않아 미국 모바일 시장처럼, 우리나라 모바일 시장에도 단말기 리스 제도가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빌려쓰는 스마트폰이 곧 모바일 시장의 새로운 사업모델로 올라설 수 있다는 얘기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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