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신라 주가하락에 숨은 함의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 600만 시대의 수혜주로 꼽혔던 호텔신라의 주가가 맥을 못 추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13만원을 웃돌던 주가가 6개월 만에 6만6000원대로 급락했기 때문이다. 시장의 변화에 기민한 전문가들은 더 이상 면세점 사업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호텔신라 주가 하락에 숨은 함의를 살펴봐야 한다는 얘기다.

▲ 국내 면세점 사업 성장세의 한계를 우려하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대마불사大馬不死. 바둑용어지만 증권가에서도 종종 사용되는 사자성어다. ‘낙폭과대 대형주’를 대마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증권사에서 대마불사는 이런 의미로 사용된다. “대형주의 경우 거래량 대비 주가 변동성이 크지 않아 하락할 확률이 낮다.” 여기에는 주가 하락의 원인이 소멸되면 다시 회복된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문제는 어떤 경우에든 예외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최근 증권가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호텔신라도 대마불사를 빗나간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8일 호텔신라의 주가는 6만6200원을 기록했다. 지난 5일 7만2400원을 기록한 이후 6거래일 만에 반등에 성공했다. 시장에서는 하락세를 보이던 주가가 바닥을 찍었다는 의견과 여전히 ‘떨어지는 칼날’이라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이는 호텔신라의 주가 하락세가 심상치 않아서다. 지난해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 수혜주로 꼽히며 승승장구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실제로 2013년 3월 5만원대에 불과했던 호텔신라의 주가는 지난해 8월 5일 13만8000원을 찍을 때까지 꾸준한 상승세를 기록했다. 2년 6개월만에 2.5배가 넘게 상승한 것이다.

메르스가 한창이던 지난해 5~6월에도 주가는 견고한 모습을 보였다. 주가는 이후 다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고 시내면세점 사업자가 발표된 직후인 지난해 7월 13일 주가는 장중 한때 14만3000원이라는 신 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나타난 하락세는 ‘떨어지는 칼날’처럼 매서웠다. 지난 18일 기준 호텔신라 주가의 고점 대비 등락률은 -52%에 달한다. 그 사이 5조3000억원을 웃돌았던 시가총액은 2조6000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불과 6개월 사이에 절반 이상이 사라진 것이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의 매도세가 거셌다. 지난해 10월 21일부터 올해 2월 17일까지 80거래일 중 67거래일을 팔았다. 특히 올해 31거래일 중 매수에 나선 것은 단 4일에 불과하다. 그 결과, 40%에 달했던 외국인 투자자의 비중은 20%로 감소했다. 주가 하락세가 지속되자 호텔신라는 자사주 매입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호텔신라의 자기주식 매입 소식도 주가 하락세에 제동을 걸지는 못했다.

자기주식 매입소식에 잠깐 반등한 주가는 하루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그렇다면 호텔신라의 주가가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호텔신라 관계자는 “지난해 메르스 사태의 영향으로 유커가 크게 줄었다”며 “이에 따른 실적 부진이 하락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옳은 분석이다. 지난해 5월 발생한 메르스 사태의 영향으로 유커의 발걸음이 끊기면서 매출에 타격을 입었다.

끝 모르고 떨어지는 주가

박성호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6월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은 31만5000명으로 전년대비 45% 감소하면서 성장세 둔화를 겪었다”며 “고마진 상품 판매비중의 하락과 높은 공항면세점 임차료가 실적부진의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전했다. 메르스는 3분기 매출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메르스의 영향으로 최성수기였던 3분기(6월말~9월) 영업이 타격을 입으면서 면세점 매출액이 전년대비 9.7% 감소했기 때문이다. 호텔신라에서 매출의 90%를 차지하는 면세점 사업의 부진이 주가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메르스 탓’에 호텔신라 주가가 떨어졌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만약 이 분석이 100% 옳았다면 메르스가 회복된 지금은 주가가 상승세를 탔어야 한다. 하지만 언급했듯 호텔신라의 주가는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게 바로 이 부분이다. 메르스도 지나갔는데, 호텔신라의 주가가 왜 떨어졌느냐다. 이는 호텔신라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호텔신라의 주가가 유통업의 벤치마커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HDC신라면세점과 함께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권을 획득한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의 주가도 지난해 이후 계속해서 하락세를 그리고 있다.

▲ 승승장구하던 국내 면세점 사업이 중국발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시장은 면세점 기업의 주가하락의 원인으로 면세점 정책 불안과 경쟁 심화를 꼽고 있다. 또 다른 원인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면세점 사업이 더 이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커의 행동반경이 예전 같지 않다”면서 “유커가 빠져나간 자리를 면세업자들이 어떻게 채울지 지켜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는 먼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을 찾는 유커의 발걸음은 벌써 뜸해지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유커의 한국 재방문율과 체류기간은 뚜렷한 하락세를 그리고 있다. 게다가 한국만 방문하는 유커의 비율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한국관광공사의 조사에 따르면 2013년 ‘한국만 방문한다’고 답한 유커는 99.5%(복수응답)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비중은 2014년 98.2%로 하락했다. 한국을 방문하는 유커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체류기간ㆍ횟수ㆍ최종 목적지로 한국을 선택하는 유커의 비중이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것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이는 면세점 쇼핑으로만 유커를 끌어들이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유커의 방문율 또는 재방문율이 줄어드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더 심각한 건 중국시장에 ‘세계적인 면세점’이 둥지를 틀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4월 국무원 상무회의에서 ‘소비 진작’을 위한 수입관세ㆍ소비세 조정 등 5개 방안을 발표했다. 해외에서 소비되는 내수를 자국 내로 돌려 국부 유출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6월부터 일부 소비재의 수입관세를 대폭 인하했다. 또한 중국내 면세점을 증설하고 면세 품목을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게다가 지난 1일부터는 기존 8000위안(약 151만원)이었던 면세한도를 1만6000위안(약 302만원)으로 두배 상향했다.

2014년 9월 하이난海南島에 문을 연 면세점의 성장 속도도 위협적이다. 연면적이 7만2000㎡(약 2만1780평)에 달하는 세계 최대 시내 면세점으로 프라다‧조르지오 아르마니‧롤렉스‧샤넬 등의 명품 브랜드를 비롯해 300여개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하이난 면세점의 지난해 매출은 약 8억4200만 달러(약 1조381억원)에 달했다. 2014년 대비 28% 성장한 수치로 명품 소비를 중국내로 돌려 내수 진작을 꾀하겠다는 중국의 전략이 통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면세점 주가 하락에 숨은 함의

업계 관계자는 “유커가 한국을 방문하는 이유는 면세점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며 “하지만 중국 정부가 관세인하 정책을 지속하고, 세계적인 면세점을 키우면 굳이 한국을 찾을 이유가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면세점 관련 기업의 주가가 하락세를 보이는 것도 이런 분위기가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면세점 사업의 묻지마식 진출이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미 시장은 면세점의 리스크를 경고하고 있다. 그 경고 시그널이 호텔신라의 주가하락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면세점은 언젠가 고요한 무덤이 될지 모른다. 유커에 집착하고 면세점 시장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바라봐선 큰코다칠 수 있다는 얘기다. 호텔신라 주가하락에 숨은 불편한 진실이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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