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국제시장 ❶

▲ 영화 ‘국제시장’에서 국민의례 장면은 단순히 웃고 넘기기 어렵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우리나라 영화시장에서 개봉한 지 한달도 되지 않아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그리 많지 않다. 개봉 28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국제시장’도 그중 하나다. 윤제균 감독은 이 영화를 ‘우리 아버지 세대에 바치는 헌사獻辭’라고 정리했다. 해외시장 배급용 영화의 영어제목은 아예 ‘Ode to My Fatjher(아버지 송가頌歌)’다. ‘국제시장’이 보여주는 연대기적 사건들이 ‘아버지 세대’의 대표성을 띠고 있는지, 우리와 ‘시대의 기억’을 공유하지 못한 해외관객들이 이 영화에 공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윤 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쫓아가며 담은 1950년부터 현재까지 아버지 세대의 연대기적 사건들은 대략 625 전란 중의 흥남 철수, 부산 국제시장의 피난살이, 1960~1970년대 파독 광부간호사와 파월 군인근로자들의 외화벌이를 통한 경제개발, 1980년대의 ‘이산가족 찾기’ 등이다. 험난했던 시절의 설움을 한데 섞어 녹인 거대한 ‘살풀이’ 의식처럼 보인다.

그리고 2010년. 80세 가까운 노인이 된 파독 광부월남 파견근로자 출신의 덕수(황정민)와 파독 간호사 출신인 그의 아내 영자(김윤진)는 부산 용두산쯤으로 보이는 산허리에서 부산항을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한다. “이만하면 열심히 잘 살았다.”

험난했던 ‘아버지 세대’에 대한 공감이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모양이다.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동원했으니 말이다. 어느 상영관에서는 입구에서 손수건을 나눠주는 이벤트도 벌였단다. 그러나 ‘도대체 어느 장면에서 울어야 하느냐?’는 젊은 관객들의 냉소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60년을 이어온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의 차이일지도 모르겠고, ‘국가의식’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공원에서의 국민의례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서독 탄광 막장에서 사선을 넘나들며 석탄을 캐 동생을 서울대에 보낸 덕수가 막내 동생 끝순이(김슬기)의 혼수를 장만하기 위해 월남 파견 근로자로 가겠다고 나서는 장면이다. 마누라는 안중에도 없는 듯 덕수가 무지막지한 아버지 역할을 강조하면서 고집을 피우자 아내 영자의 분노가 폭발한다.

격한 감정들이 정점을 향하는 순간 난데없이 애국가와 ‘국기에 대한 맹세’가 공원에 울려 퍼진다. 공원 사람들은 일제히 일어나 멀리 떨어진 어딘가의 국기를 향해 가슴에 손을 얹는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엄숙하다 못해 비장하다.

▲ 국민을 지켜주지 못한 국민에게 국가가 충성을 강요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덕수도 개인적 감정을 서둘러 수습하고 국기를 향해 부동자세를 취한다. 영자만이 ‘개인적’ 설움에 빠진 채 벤치에 퍼질러 앉아 ‘국민적’ 도리를 소홀히 한다. 누군가 그런 영자에게 못마땅한 눈총을 날린다. 국민의례 후 멱살잡이라도 할 기세다. 눈물범벅이 된 영자는 그 상황이 어이없고 기가 막히지만, 결국 반항적이고 무성의하게라도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를 향한다. 애국심을 둘러싼 한편의 ‘소극笑劇’같지만, 단순히 웃어넘길 장면은 아니다.

서구의 국가론은 로크(Locke), 홉스(Hobbes), 루소(Rousseau) 등 계몽주의 사상가들을 통해 국민과 국가 사이는 철저한 권리와 의무의 ‘계약관계’로 인식된다. 국민은 국가에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의무’가 있지만 국가 역시 ‘모든 국민의 생명과 재산, 권리를 지켜줄 의무’가 있다. 국가가 국민 보호에 충실했을 때 비로소 국민에게 애국과 충성을 요구할 권리가 생긴다는 거다.

그런 점에서 덕수와 대한민국의 관계는 어떨까. 덕수는 1950년 12월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서 아버지와 막내 여동생을 잃어버리고 10살에 가장이 됐다. 가족 부양을 위해 ‘교육의 권리’도 누리지 못한 채 서독 탄광 막장과 월남 전쟁터로 달려가야 했다. 그런 덕수와 국가 사이에 ‘계약관계’는 과연 유효한 걸까.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opo.ac.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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